슬로베니아 ‘크란’에서 국민 영웅의 숨결을 느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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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로베니아 ‘크란’에서 국민 영웅의 숨결을 느끼다
  • 임요희 기자
  • 승인 2016.09.07 03:1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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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블랴나 북쪽 소도시, 알프스를 지붕 삼은 곳
크란은 국민 영웅 프레셰렌이 눈을 감은 곳으로 슬로베니아인의 마음의 고향과 같은 곳이다. 알프스 산 그늘, 사바 강 유역에 자리 잡은 크란. 사진/ 임요희 기자

[트래블바이크뉴스=슬로베니아/임요희 기자] 류블랴나 북쪽, 알프스를 지붕 삼아 안락하게 자리 잡은 크란(Kranj)은 인구 3만 명의 소도시지만 슬로베니아에서 차지하는 위상은 결코 작지 않다.

크란은 국민 영웅 프레셰렌이 눈을 감은 곳으로 슬로베니아인의 마음의 고향과 같은 곳이다. 시인일 뿐인 프레셰렌(1800~1849)이 국민 영웅 칭호를 받게 된 것은 그가 슬로베니아 낭만주의 시학의 전범일 뿐만 아니라 저항적인 시어로 슬로베니아인의 자부심을 고양시켰기 때문이다.

하늘의 천둥이 악한 적을 물리칠 것이며 슬로베니아인은 과거 번성했던 시절의 영광을 되찾을 것이라는 예언적 시는 어떤 총이나 칼보다도 국민에게 큰 힘이 되었다. 그의 시 ‘축배’는 슬로베니아의 국가이기도 하다.

프레셰렌 박물관, 크란 시청사, 크란 대성당 등 주요 건물이 모여 있는 크란 중심가. 사진/ 임요희 기자

크란 시내에는 프레셰렌이 세상을 뜨기 4년 전부터 거주하던 집이 있다. 현재 프레셰렌 박물관이 된 이곳은 크란 시청사, 크란 대성당과 함께 도시의 구심점 역할을 수행 중이다.

프레셰렌 박물관 1층에는 그의 흉상과 자필 원고 등이 진열되어 있는데 평소에는 갤러리 용도로 개방해 크란 시민들이 자주 방문할 수 있도록 해놓았다.

프레셰렌 박물관 2층에는 침실이 있어 그가 눈을 감은 침대를 진열해두고 있다. 프레셰렌은 마흔아홉이라는 아까운 나이에 숨을 거두었다. 사인은 췌장암이었다고 한다. 젖혀진 커튼 사이로 희미한 빛이 들어오는 그의 침실에 서서 시인이 겪어야 했을 육체적 고통과 외로움을 생각해보았다.

프레셰렌이 세상을 뜨기 4년 전부터 거주하던 집은 현재 프레셰렌 박물관이 되었다. 24시간 슬로베니아 국기가 나부끼는 프레셰렌 박물관. 사진/ 임요희 기자

슬로베니아는 그의 사망일인 2월 8일을 국경일로 지정, 전국적으로 문화행사를 갖고 있다. 크란 내에서의 추모의식은 물론 수도 류블랴나의 프레셰렌 광장에서도 그의 시를 낭독하는 행사를 갖는다.

보통 위인의 탄생일을 기념하는 경우는 흔해도 기일을 국경일로까지 지키는 경우는 드물다. 그만큼 슬로베니아가 그의 죽음을 안타까워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크란 대성당을 돌아서자마자 바로 프레셰렌 동상이 서 있는 작은 광장이 나온다. 사진/ 임요희 기자

프레셰렌 박물관 외에도 크란 곳곳에는 그를 추억할 수 있는 다양한 장소가 있다. 도시 북쪽 주택가에는 ‘프레셰렌 작은 숲’ 공원이 있어 그의 두상과 기도실 등을 배치해두었다.

시민들이 공원을 산책하거나 벤치에 앉아 담소를 나누는 모습을 보니 무력보다 시의 힘을 믿었던 슬로베니아인의 선량함이 가슴 깊이 다가왔다.

크란에 왔다면 프레셰렌 박물관 뒤쪽, 생전에 그가 자주 거닐던 산책로를 걸어봐야 한다. 꽃으로 치장된 아름다운 집들과 고풍스런 성당, 아기자기한 카페가 어우러진 골목을 걷다 보면 대단한 시적 영감이 아니더라도 삶의 지혜 하나쯤 번득이며 다가올 것만 같다.

크란 시는 망루가 있던 자리를 보수, 코크라 강을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도록 전망대를 설치해 두었다. 이전 망루의 흔적을 엿볼 수 있는 유리 발판. 사진/ 임요희 기자

프레셰렌의 산책로를 따라가다 보면 중세시대 망루였던 곳이 나오는데 지금은 다 허물어져 그 잔재만 남아 있다. 크란 시는 망루가 있던 자리를 보수, 사바 강의 지류인 코크라 강을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도록 전망대를 설치해 두었다.

놀라운 것은 전망대 발판의 일부를 유리로 덮어 과거의 흔적을 더듬을 수 있도록 해놓은 것이다. 과거에는 자갈이 많이 섞인 벽돌을 사용해 망루를 지었음을 알 수 있다.

크란에서 가장 오래된 식당은 스타리 마이르(Stari mayr)로 60년 됐다고 한다. 이곳에서 슬로베니아 전통요리를 맛볼 수 있다. 슬로베니아 음식은 항상 풍성하게 나오는데 우리나라 떡갈비와 유사한 ‘체바치치’는 고춧가루를 듬뿍 넣은 매운 소스와 함께 먹어야 제맛이다.

크란의 가장 오래된 식당인 스타리 마이르에서 맛본 슬로베니아 전통 요리. 우리나라 떡갈비와 유사한 '체바치치'는 고춧가루 소스와 함께 먹어야 제맛이다. 메인 접시에 4개 담겨 나온 체바치치. 사진/ 임요희 기자

크란은 사랑을 찬미하고 유머를 잃지 않은 프레셰렌의 숨결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곳으로 슬로베니아 여행자라면 한번쯤 꼭 들러야 하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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