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사람도 모르는 서울명소 (2)보물 위에 서다 ‘살곶이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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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사람도 모르는 서울명소 (2)보물 위에 서다 ‘살곶이다리’
  • 임요희 기자
  • 승인 2018.12.03 18:0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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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시대 만들어져 1973년 재건된 우리나라 보물
성동구 행당동에 자리 잡은 ‘살곶이다리’는 세종대왕이 상왕 태종의 나들이를 위해 건설한 다리였다. 사진/ 서울시

[트래블바이크뉴스=임요희 기자] 지금까지 남아있는 조선시대 다리 가운데 가장 긴 다리 이름을 아는가. 성동구 행당동에 자리 잡은 ‘살곶이다리’는 세종대왕이 상왕 태종의 나들이를 위해 건설한 다리였다.

살곶이다리라는 이름은 이곳 지명이 살곶이벌이었기 때문이다. 살곶이벌에는 하나의 전설이 전해 내려온다. 태조 이성계는 태생이 무관으로 꿩사냥을 즐겼다. 하루는 살곶이다리 근처 응봉을 찾았는데 꿩이 날아오르는 것을 보고 활시위를 당겼다.

제반교는 교폭 6m, 길이 78m의 위풍당당한 모양새를 하고 있다. 사진/ 문화유산채널

태조의 화살은 정확히 날아오르는 꿩을 맞추었고 그의 놀라운 활솜씨를 지켜본 사람들이 꿩이 떨어진 곳을 두고 살곶이벌이라 불렀다.

조선 세종 2년(1420년)에 착공에 들어간 살곶이다리는 성종 14년(1483년)에야 완성을 보았고 제반교라는 정식 명칭을 얻었다.

제반(濟盤)이란 ‘가로지르는 바위’라는 뜻이다. 명칭 그대로 제반교는 교폭 6m(20척), 길이 78m(258척)의 위풍당당한 모양새를 하고 있다.

살곶이다리 아래를 살펴보면 포석, 기둥, 정 자국 등 옛 교각 건축술을 좀 더 면밀히 관찰할 수 있다. 사진/ 문화재청

청계천과 중랑천이 만나 한강으로 흘러드는 이곳에 조선시대 최장교가 있을 줄 짐작이나 했으랴. 살곶이다리는 한양대학교 동쪽에 있는데 다리 옆으로 갈대밭과 하천변에 이르는 샛길이 있다.

그 샛길을 따라 가면 살곶이다리 아래로 포석, 기둥, 정 자국 등 옛 교각 건축술을 좀 더 면밀히 관찰할 수 있다.

살곶이다리는 교각을 횡렬로 4열, 종렬로 22열을 배치한 후 3장의 장대로 건너질렀다. 그다음 동틀돌로써 청판돌을 받친 후 좌우 교안을 장대석으로 쌓았다.

흥선대원군이 살곶이다리가 센 물살에도 무너지지 않는 것을 보고 이 다리의 반을 뜯어다 경복궁 중건에 사용했다고 한다. 사진/ 문화재청

기둥돌 아래는 네모난 주초가 있는데 그것은 물밑 받침돌로 지탱되었으며 기둥은 물살의 저항을 줄이기 위해 마름모꼴로 제작되었다.

조선 말기 흥선대원군이 살곶이다리가 센 물살에도 무너지지 않는 것을 보고 이 다리의 반을 뜯어다 경복궁 중건에 사용했다고 한다. 근 100년 동안 다리가 폐쇄되었던 이유이다.

그러던 1973년 본격적인 복원에 들어갔고 현재의 모습을 갖게 되었다. 살곶이다리가 헌 다리 절반, 새 다리 절반을 갖게 된 사연이다.

청계천과 중랑천이 만나 한강으로 흘러드는 이곳에 조선시대 최장교가 있을 줄 짐작이나 했으랴. 사진/ 서울시

웃플 수도 있는 사연의 살곶이다리지만 성동구 주민들은 이 다리를 보물처럼 아낀다. 실제로 살곶이다리는 보물 제 1783호로 지정되어 있다. 조선의 임금들이 선정릉을 방문하기 위해 건너던 다리를 지금은 산책족, 데이트족, 자전거 라이더들이 건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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