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문학기행의 첫 여행지, ‘정지용 시인의 녹번리’를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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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문학기행의 첫 여행지, ‘정지용 시인의 녹번리’를 찾아서
  • 김효설 기자
  • 승인 2020.07.17 20:3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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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 시 ‘향수’로 친근한 정지용 시인의 문학 세계 탐방
서울시와 서울도시문화연구원이 주최한 2020 제1회 서울문학기행이 7월 11일 ‘정지용의 녹번리’를 테마로 진행됐다. 사진/ 김효설 기자
서울시와 서울도시문화연구원이 주최한 2020 제1회 서울문학기행이 7월 11일 ‘정지용의 녹번리’를 테마로 진행됐다. 사진/ 김효설 기자

[트래블바이크뉴스=김효설 기자] 2020 제1회 서울문학기행이 7월 11일 열렸다. 서울시와 서울도시문화연구원이 주최한 이번 기행은 ‘정지용의 녹번리’를 테마로 진행됐다.

이번 기행은 정지용 산수시 연구로 고려대학교에서 문학박사 학위를 취득한 박미산 시인의 해설로, 녹번 산골마을에서 시작해 정지용 시벽, 생태다리, 백련산 전망대, 응암 산골마을, 정지용길, 정지용 집터를 답사하고 양천리누리터 어린이공원에서 국악공연을 감상하는 일정으로 진행됐다.

초여름 무더위가 시작된 지난 11일 토요일 오후 3시, 녹번역에서 집결한 참가자들은 녹번산골마을에 있는 정지용 시벽으로 향했다. 골목길을 따라서 언덕을 한참 올라 도착한 정지용 시벽에는 녹번리가 새겨 있다.

녹번산골마을의 골목길을 따라서 언덕을 한참 올라 도착한 정지용 시벽에는 녹번리가 새겨 있다. 사진/ 김효설 기자
녹번산골마을의 골목길을 따라서 언덕을 한참 올라 도착한 정지용 시벽에는 녹번리가 새겨 있다. 사진/ 김효설 기자

시 ‘녹번리에서’는 한밤중 술을 마시고 택시기사에게 녹번리에 가자고 한다. 그 당시 녹번리는 경기도 고양군 은평면에 있는 시내에서 한참 떨어진 곳이다. 택시기사가 깊은 밤이라 녹번리까지는 갈 수 없다며 중간에 내려줘 황망하게 서 있는데, 18세쯤 보이는 아이가 말을 건넨다. 소년감화원으로 가는 아이 같아 그 아이가 돌변할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앞선다. 고갯마루를 넘는데 상엿집처럼 보이는 조그만 불빛이 보인다. 녹번리까지는 탄탄대로인데도 머리털이 쭈뼛 곤두선다. “인생 한번 가고 못 오면 만수장림에 운무로다……” 마지막 두 연은 수심가에 나오는 노랫가락이다. 인생 한번 죽으면 만수장림에 구름과 이슬이라고 인생무상을 말하고 있다. 이 시기에 정지용 시인은 해방이 되었는데도 일본 강점기 때와 마찬가지로 좌우대립과 국내외 정세로 불안하고 암울한 마음의 상태를 토로했다.

녹번 산골마을과 응암 산골마을을 이어주는 생태다리는 백련산 줄기 은평구 녹번동 산 1-18번지 일대에 설치된 길이 55m 폭 13.6m의 생태연결로로 동물의 이동을 도와주고 단절됐던 백련산과 북한산을 연결하여 은평 둘레길로도 갈 수 있다. 사진/ 김효설 기자
녹번 산골마을과 응암 산골마을을 이어주는 생태다리는 백련산 줄기 은평구 녹번동 산 1-18번지 일대에 설치된 길이 55m 폭 13.6m의 생태연결로로 동물의 이동을 도와주고 단절됐던 백련산과 북한산을 연결하여 은평 둘레길로도 갈 수 있다. 사진/ 김효설 기자

정지용 시벽을 뒤로하고 가파른 언덕을 오르다 보니, 나무로 만든 생태다리가 보인다. 녹번 산골마을과 응암 산골마을을 이어주는 이 다리는 백련산 줄기 은평구 녹번동 산 1-18번지 일대에 설치된 길이 55m 폭 13.6m의 생태연결로로 동물의 이동을 도와주고 단절됐던 백련산과 북한산을 연결하여 은평 둘레길로도 갈 수 있다. 백련산 정자 휴게소에서 북한산을 연결하는 520m의 데크로드 산책로 주변에는 정자와 울창한 나무숲이 펼쳐진다.

생태다리를 건너 도착한 백련산 전망대에서는 녹번동, 홍은동, 불광동 등 은평구 일대가 한눈에 보인다. 이곳 전망대에서 해설자로 나선 박미산 시인은 한 시간가량 정지용 시인의 일대기와 그의 시에 대해 강의를 했다. 사진/ 김효설 기자
생태다리를 건너 도착한 백련산 전망대에서는 녹번동, 홍은동, 불광동 등 은평구 일대가 한눈에 보인다. 이곳 전망대에서 해설자로 나선 박미산 시인은 정지용 시인의 일대기와 그의 시에 대해 강의를 했다. 사진/ 김효설 기자

생태다리를 건너 도착한 백련산 전망대에서는 녹번동, 홍은동, 불광동 등 은평구 일대가 한눈에 보인다. 이곳 전망대에서 해설자로 나선 박미산 시인은 한 시간가량 정지용 시인의 일대기와 그의 시에 대해 강의를 했다. 박미산 시인은 “1902년 충북 옥천에서 태어난 정지용 시인은 ‘현대 시의 아버지’로 순수시를 주창했다. 초창기에는 서양 모더니즘의 시를 쓰다가 일제강점기에는 산수 속에서 창작활동을 해왔다. 이 시기인 1948년 녹번동에 6칸 초당을 짓고 은거하며 작품활동을 했다. 그 후 조선문학가 동맹에 가입해 납북된 정지용 시인이 우리에게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1988년 해금 이후다. 현재는 석박사 논문 700여 편이 나올 정도로 정지용 시인에 대한 연구가 활발하다”라고 설명했다.

정지용 초당터라는 표지판이 보인다. 은평구 녹번동 126-10 이곳에서 1948년부터 1950년 납북되기 전까지 정지용 시인이 살던 ‘ㄱ’자 형태의 6칸 초가 정지용 초당터는 간데없고 다가구 주택이 서 있다. 사진/ 김효설 기자
정지용 초당터라는 표지판이 보인다. 은평구 녹번동 126-10 이곳에서 1948년부터 1950년 납북되기 전까지 정지용 시인이 살던 ‘ㄱ’자 형태의 6칸 초가 정지용 초당터는 간데없고 다가구 주택이 서 있다. 사진/ 김효설 기자

백련산 전망대에서 내려와 응암 산골마을을 지나 정지용 길로 들어섰다. 정지용 길은 찾기가힘들 정도로 구불구불한 골목길에 조그만 이정표만 있을 뿐, 표지판이 없다. 정지용 길을 따라서 가다 보니, 정지용 초당터라는 표지판이 보인다. 은평구 녹번동 126-10 이곳에서 1948년부터 1950년 납북되기 전까지 정지용 시인이 살던 ‘ㄱ’자 형태의 6칸 초가 정지용 초당터는 간데없고 다가구 주택이 서 있다. 이곳이 ‘정지용 초당터’라는 짤막한 소개 글이 쓰인 동으로 만든 표지판이 벽 한 켠에 옹색하게 몸을 기대고 있다.

코로나19로 실내에서 공연할 수 없어서 양천리누리터 어린이공원에서 열린 국악공연은 김종환의 대금 연주에 이어 김명남 명창과 조풍류 고수의 판소리가 뜨거운 뙤약볕 아래 펼쳐졌다. 사진/ 김효설 기자
코로나19로 실내에서 공연할 수 없어서 양천리누리터 어린이공원에서 열린 국악공연은 김종환의 대금 연주에 이어 김명남 명창과 조풍류 고수의 판소리가 뜨거운 뙤약볕 아래 펼쳐졌다. 사진/ 김효설 기자

초당터에서의 아쉬움을 뒤로하고 국악공연을 보기 위해서 찾아간 곳은 양천리누리터 어린이공원이다. 코로나19로 실내에서 공연할 수 없어서 야외공연을 준비했다고 한다. 김종환의 대금 연주에 이어 김명남 명창과 조풍류 고수의 판소리가 뜨거운 뙤약볕 아래 펼쳐졌다. 고 노무현 대통령의 노제에서 불렀던 ‘추억’이라는 단가를 끝으로 서울문학기행의 첫 여행지, ‘정지용 시인의 녹번리’ 기행을 성황리에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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