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서울을 대표하는 천년 전통주 '삼해소주' 명인의 술과 삶,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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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서울을 대표하는 천년 전통주 '삼해소주' 명인의 술과 삶, 사람
  • 권라희 기자
  • 승인 2018.02.02 18:2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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돼지 날에 세 번 덧술해 100일간 빚는 명주, 삼해소주가 김택상 명인
술 빚는 삶, '술장이'로 37년. 삼해주는 곧 김택상 명인의 삶이다. 사진/ 권라희 기자

[트래블바이크뉴스=권라희 기자] 술 빚는 삶, '술장이'로 37년. 삼해주는 곧 김택상 명인의 삶이다. 술이 익는 동안 그의 삶도 깊어졌다. 김택상 명인은 농림축산식품부 전통식품명인 제69호, 삼해주는 서울시 무형문화재 제8호다. 삼해주의 술맛만큼 깊은 삶의 철학이 배어나는 김택상 명인을 만났다.

삼해소주, 느려도 깊고 맑게 빚는 술

김택상 명인은 농림축산식품부 전통식품명인 제69호, 삼해주는 서울시 무형문화재 제8호다. 사진/ 삼해소주가.

한양의 이름난 문인들이 사랑했던 술, 삼해주는 서울의 오늘을 대표하는 술이다. 삼해주는 음력 정월 첫 돼지일(亥日, 돼지 날) 해시에 밑술을 담근 뒤 돌아오는 돼지일 12일/36일 주기마다 세 번 덧술을 쳐 저온에서 발효시킨다. 삼해주는 18도 약주(삼해주)와 45도 소주(삼해소주)로 나뉜다.

김택상 명인이 매일같이 하는 첫 번째 일은 수십 개의 술항아리를 열어보는 일이다. 색, 냄새, 맛을 본다. 한 두 방울씩 맛봐도 수십 방울이다. 서두르지 않고 차분하고 경건하게 술의 말을 듣는다.

삼해주에는 석 삼(三)자와 돼지 해(亥)자가 들어있다. "돼지는 곧 술이고, 말은 곧 장(醬)입니다. 돼지의 피는 맑고, 말의 피는 걸죽합니다. 술은 돼지의 피처럼 맑게 담궈야 한다는 뜻이예요. "

더불어 12간지 중 마지막인 돼지의 때가 돌아올 때까지 느리게 깊게 술을 담궈야 한다는 의미도 있다고 한다. 

김택상 명인, 운명 같이 다가온 술 빚는 삶

김택상 명인이 매일같이 하는 첫 번째 일은 수십 개의 술항아리를 열어보는 일이다. 색, 냄새, 맛을 본다. 사진/ 권라희 기자.

김택상 명인의 어린 시절, 집안에는 늘 술 익는 향기가 감돌았다. 술도가를 운영하시던 부모님은 그에게 술에 관해 강조하진 않았다. 어머니가 술을 빚을 때 작은 일을 도왔을 뿐, 자신도 술을 빚을 거라고는 생각지 않았다.

집안 대대로 내려오는 술 빚는 법이 어머니 대에서 끊길 위기에 처했으나 형제자매 중 누구도 나서지 않았다. 슬쩍 지나가듯 말해도 제법 손맛을 잘 내던 그에게 어머니는 가양주인 삼해소주의 대를 이었으면 좋겠다는 뜻을 내비치셨다.

평범하게 대학 졸업 후 대기업에 다니던 그는 본격적으로 삼해소주에 발을 담갔다. 어머니 이동복 여사가 1993년 무형문화재로 지정되고 자신도 수제자로서 술 빚는 시간을 쌓아갔다.

김택상 명인의 어린 시절, 집안에는 늘 술 익는 향기가 감돌았다. 사진/ 권라희 기자

삼해소주만 바라보고 사니 가끔 집안에서 싫은 소리가 들릴 때도 있었다. "생활이 어려워져 남의 신세를 져야 할 때, 가장으로서 책임을 다하지 못한다고 생각해 괴로운 날도 있었지요."

그래도 삼해소주를 향한 마음이 변하거나 흔들리진 않았다. "고민에 빠져 잠을 이루지 못하는 밤에 이렇게 앉아있으면 술 익는 소리가 들려요. 술항아리를 열어보고 마음을 다잡았지요."

김택상 명인은 "가족이 술 빚는 자신을 이해하고 나아가 인정해줄 때 가장 기쁘다"고 말한다. 지금은 자식들과 며느리까지 삼해소주를 빚는 법을 배운다.

내 술을 알아주는 사람들, 술로 만나고 술로 나누고

자신이 만든 술을 통해 사람들이 서로 소통하고 교류하기를 꿈꾼다. 사진/ 권라희 기자

술은 사람과 사람, 마음을 잇는다. 김택상 명인은 "제자들과 함께 빚은 술의 맛이 훌륭하게 나왔을 때, 가장 보람되다"고 한다. 37년 '술장이'로 살아오는 동안 그에게서 술 빚는 법을 배운 수제자들은 백 명도 훨씬 넘는다. 김택상 명인에게는 "내 술을 알아주는 사람, 나와 함께 술을 만드는 사람 모두"가 참으로 소중하다.

한국의 술을 알고 싶다며 이 곳 삼해소주가의 시음과 강의에 외국인들도 많이 찾아온다. "그 말이 기억에 남아요. '꽃봉오리를 삼켰더니, 뱃속에 들어가 그 꽃이 활짝 피었다' 고 어느 외국인 수강생이 평하더군요." 김택상 명인은 늘 귀를 열어둔다. 외국인 수강생들의 평을 귀담아 듣고 세계 각국의 술에 견주어 삼해소주가 더 깊은 술맛을 낼 수 있도록 늘 공부하고 연구한다.

한양의 이름난 문인들이 사랑했던 술, 삼해주는 서울의 오늘을 대표하는 술이다. 사진/ 권라희 기자.

"젊은 친구들이 우리 술에 대해 알고 싶어하면 제가 힘들어도 기꺼이 도와줍니다." 김택상 명인은 한국의 술문화는 젊은 세대가 바꾸고 이끌어갈 수 있다고 믿는다. "젊은 친구들이 좋은 술을 느끼고 나누고 서로에게 전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김택상 명인은 자기 자신과 함께 하는 사람들이 더불어 행복해지는 내일의 술문화를 바라본다. 자신이 만든 술을 통해 사람들이 서로 소통하고 교류하기를 꿈꾼다.

삼해소주는 사랑

김택상 명인은 "가족이 술 빚는 자신을 이해하고 나아가 인정해줄 때 가장 기쁘다"고 말한다. 사진/ 권라희 기자.

"좋은 사람들과 함께 모였을 때, 삼해소주를 들고 제가 건배사를 대신해 선창을 합니다. "'천만번 더 들어도 기분 좋은 말, 다같이, 사.랑.해' 삼해소주는 사랑입니다."

김택상 명인은 이토록 마음을 쏟는 삼해소주가 앞으로도 더욱 '훌륭한 명주로, 나라를 대표하는 국주로' 거듭나기를 희망한다.

'술을 사랑하고 술 빚는 사람들을 사랑하면 좋은 술이 나온다' 는 게 그의 말이다. "지금까지도 술을 사랑해왔고 앞으로도 사랑할 겁니다."

김택상 명인의 삼해소주는 삶과 사람과 사랑이 담겨 깊은 맛을 내는 술로 빚어진다. 술 한 잔에 인생이 오롯이 담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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