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여행] 충청남도 서산 시골투어 (2) “가을 트레킹부터 역사ㆍ예술ㆍ체험 여행까지 한 번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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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여행] 충청남도 서산 시골투어 (2) “가을 트레킹부터 역사ㆍ예술ㆍ체험 여행까지 한 번에”
  • 김지수 기자
  • 승인 2018.09.05 2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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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류방택 천문기상과학관ㆍ마애여래삼존상ㆍ개심사ㆍ해미읍성ㆍ해미순교성지 등
충청남도 서산은 자연을 즐기며 체험하는 농촌체험농장, 교과과정을 농촌에서 직접 체험으로 배우는 농촌교육농장, 전통을 지키며 자연 그대로의 음식을 재현하는 농가 맛집까지 볼거리, 먹을거리, 즐길 거리가 풍성하다. 사진/ 김지수 기자

[트래블바이크뉴스=김지수 기자] 최근 맑은 날씨가 이어지는 가운데 기분 좋게 시원한 바람이 부는 가을이 성큼 다가왔다. 매년 가을이 되면 쾌청한 하늘과 울긋불긋한 단풍을 보기 위해 트레킹을 많이 하지만, 막상 어디로 가야 할지 고민이 앞선다면 충남 서산으로 발길을 돌려보자. 

충청남도 서산은 백제 시대부터 현재까지 역사와 예술, 경이롭고 눈이 부시도록 아름다운 자연이 살아 숨 쉬는 고장이다. 최근에는 자연을 즐기며 체험하는 농촌체험농장, 교과과정을 농촌에서 직접 체험으로 배우는 농촌교육농장, 전통을 지키며 자연 그대로의 음식을 재현하는 농가 맛집까지 볼거리, 먹을거리, 즐길 거리가 풍성하다.

온 우주를 품에 담다, ‘류방택 천문기상과학관’

우주 과학의 체험 중심 교육 장소로 설립된 ‘류방택 천문기상과학관’. 사진/ 김지수 기자

국보 제228호로 지정된 ‘천상열차분야지도’를 제작한 서산 출신의 고려말 천문학자 금헌 류방택 선생의 과학 정신을 계승하고, 우주 과학의 체험 중심 교육 장소로 설립된 과학관이다. 옛 유물 전시 관람과 더불어 천체를 직접 관측하고 입체영상과 함께 가상의 별자리를 체험하는 등 다양하게 천문ㆍ기상 과학을 체험할 수 있다. 

류방택 선생의 자(字)는 태보(兌甫)요, 호(號)는 금헌(琴軒)이다. 서산지역에 있는 가야산 개심사 아래 양리촌에서 출생한 선생은 어려서부터 성품이 온화하고, 덕이 있으며, 효도와 우애가 자극하였을 뿐 아니라 학문에 대진하였다. 특히 주역의 이치와 천체의 운행을 통달하여 큰선비로 칭송하였다고 전해진다.

국보 제228호로 지정된 ‘천상열차분야지도’를 제작한 서산 출신의 고려말 천문학자 금헌 류방택 선생의 과학 정신을 계승하고, 우주 과학의 체험 중심 교육 장소로 설립된 과학관이다. 사진/ 김지수 기자
옛 유물 전시 관람과 더불어 천체를 직접 관측하고 입체영상과 함께 가상의 별자리를 체험하는 등 다양하게 천문ㆍ기상 과학을 체험할 수 있다. 사진/ 김지수 기자

천상열차분야지도는 국보 제228호로 되었으며 고구려 석각 천문도의 탁본을 토대로 조선조 태조 4년(1395)에 류방택, 권근을 비롯한 서운관의 12명이 만든 석각 천문도로 전천 천문도로는 세계에서 두 번 째로 오래된 천문도이다. 둥근 원안에 1,467개의 별을 다양한 크기의 점으로 새겨 넣었으며 별의 밝기에 따라 크기를 다르게 표현했다. 

입체영상 체험은 약 20분 정도 걸렸으며 천체투영실 안의 의자가 뒤로 눕혀져 편안하게 영상을 시청할 수 있다. 특히 의자 앞에서는 우주 영상에 따라 바람이 불기도, 의자가 움직이기도 하여 실제 우주에 간듯한 느낌을 받았으나 이곳에서는 사진 촬영을 할 수 없었다. 

서산 최초의 ‘송곡서원'과 천연기념물 제553호 '향나무’ 

서산 류방택 천문기상과학관 앞에 있는 서산 최초의 ‘송곡서원'과 천연기념물 제553호 '향나무’ 사진/ 김지수 기자

송곡서원은 1694년 숙종 20년, 서산에 최초로 건립된 서원으로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다. 당시의 서원은 일종의 학교 구실을 하는 교육 기관이었으며, 유교의 성현에게 제사를 지내는 곳이었다.

1871년 고종 8년, 흥선대원군은 서원의 오랜 적폐를 제거하기 위하여 ‘서원철폐령’을 명하게 되면서 47개의 서원을 제외한 전국 수백여 곳에 세워진 서원을 정리하였으며 송곡서원도 이 때 철폐되었다가 1910년 유양목등 유림이 복원하였다.

송곡서원은 1694년 숙종 20년, 서산에 최초로 건립된 서원으로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다. 사진/ 김지수 기자

이 서원은 지방 교육의 일익을 담당하던 기능은 없어지고 지금 현재는 서산 정씨의 시조인 정신보를 비롯한 정인경, 류방택, 윤황, 류백유, 류백순, 류윤, 김적, 김위재 총 9분의 위패를 모시고 있으며, 1984년 5월 17일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207호로 지정되었다.

송곡서원의 주변으로는 한눈에 확 들어오는 향나무를 볼 수 있다. 송곡서원과 함께 오랜 세월을 함께한 이 두 그루의 향나무는 최근 천연기념물 제553호에 등재되었다.

충남 4대 사찰 중 하나, ‘개심사’ 사계절 아름다운 경관으로 인생샷 포인트

'개심사'는충남 4대 사찰 중 하나로 ‘개심사’ 사계절 아름다운 경관으로 인생샷 포인트로도 유명하다. 사진/ 김지수 기자

개심사는 충남의 4대 사찰 중 하나로 ‘마음을 여는 절’이라는 뜻을 품고 있으며 백제 의자왕 14년(654)에 혜감국사가 창건한 것으로 전해진다. 

경내에는 보물 143호로 지정된 대웅전을 비롯해 많은 문화재가 보존되어 있으며, 특히 가야산이 동쪽 장벽을 이루고 산속 중턱의 계류가 시작되는 협곡에 자리하여 사계절 내내 수려한 경관을 자랑한다.

개심사는 가야산이 동쪽 장벽을 이루고 산속 중턱의 계류가 시작되는 협곡에 자리하여 사계절 내내 수려한 경관을 자랑한다. 사진/ 김지수 기자
사찰 주변은 아름다운 나무와 꽃, 연못 등이 있어서 SNS 인생 사진을 찍기 좋은 곳이다. 사진/ 김지수 기자

이른 봄, 푸르게 터뜨려진 개심사의 청벚꽃은 꽃이 질 때 은은한 분홍빛으로 물들어 마당에 온통 꽃잎이불을 펼쳐내고, 여름에는 짙푸른 녹음과 어우러지는 분홍빛의 배롱나무꽃이, 가을에는 노랗고 붉게 물든 단풍으로 겨울에는 지붕 위의 수정고드름과 나무에 눈꽃이 피어 계절별로 색다른 정취를 선사한다. 

개심사까지 가는 길은 산속의 맑은 공기를 마시며 가벼운 트레킹으로 올라갈 수도 있고, 소형 자동차로도 올라가는 길이 있다. 사찰 주변은 아름다운 나무와 꽃, 연못 등이 있어서 SNS 인생 사진을 찍기 좋은 곳이다.   

 마애불 중 최고의 작품으로 손꼽히는 ‘마애여래삼존상’ 

백제인의 온화하면서도 낭만적인 기질을 엿볼 수 있는 ‘백제의 미소’를 엿볼 수 있는 ‘마애여래삼존상’. 사진/ 김지수 기자

마애여래삼존상은 1958년에 문화재 현장 조사를 하던중 지나가던 한 나무꾼이 ‘인(印)바위’ 라는 곳에 옛날 힘이 센 장사가 부처님을 만들었다는 말을 듣고 가보니 깊은 산중에 마애여래삼존상이 있었다고 전해진다. 

서산 운산면 용현리 마애여래삼존상은 우리나라에서 발견된 마애불 중 최고의 작품으로 손꼽힌다. 얼굴 가득히 자애로운 미소를 띠고 있어 당시 백제인의 온화하면서도 낭만적인 기질을 엿볼 수 있어 ‘백제의 미소’로 잘 알려져 있다. 빛이 비치는 방향에 따라 웃는 모습이 각기 다르게 보이는 특징이 있다.

서산 운산면 용현리 마애여래삼존상은 우리나라에서 발견된 마애불 중 최고의 작품으로 손꼽힌다. 사진/ 김지수 기자

중앙에 현세불을 의미하는 여래입상, 우측(중앙 여래입상 기준)에 과거불을 의미하는 제화갈라보살입상, 좌측에 미래볼을 의미하는 반가사유상이 삼세불로 조각되어 있다. 

마애여래삼존상이 있는 곳까지는 약 10분 정도 계단으로 만들어진 길을 따라가면 된다. 석가여래입상을 자세히 보면 둥글고 풍만한 얼굴 모양에 반원형의 눈썹, 얕고 넓은 코, 살구씨 모양의 눈을 크게 뜨고 미소를 짓고 있어 유쾌하면서도 자비로운 인상을 보여준다.   

시간이 멈춰버린 듯한 성벽, ‘해미읍성’ 

시간이 멈춰버린 듯한 성벽, ‘해미읍성’. 사진/ 김지수 기자

바다가 아름답다는 의미의 ‘해미(海美)’라는 지명은 조선 시대부터 사용되었으며 해미읍성은 성곽 둘레 1,800m, 높이 5m, 면적 약 20만㎡ 정도로 넓은 평지에 축조되었다. 

1416년 태종이 서산 도비산에서 ‘강무(講武)’를 하다가 해미에서 하루를 머물면서 지변지역을 둘러보게 됐는데, 당시 해안지방에 출몰하는 왜구를 효과적으로 방어하기에 적당한 장소라고 판단하여 덕산에 있던 충청병영을 옮기기 위한 대상지로 정해 1417년(태종 17년)부터 1421(세종 3년)까지 축성을 완료했다.

그 후 해미에 충청지역 육군의 최고 지휘 기관인 충청병영이 위치하며 병마절도사가 배치되어 육군을 총지휘하였고 1651년 청주로 충청병영을 이전하며 충청병마절도사의 병영성의 역할을 끝냈다. 이후 충청도 5진영중 하나인 호서좌영이 들어서게 되고 진영장으로 무장을 파견해 호서좌영장과 해미현감을 겸직하게 하면서 ‘읍성(邑城)’의 역할을 하게 되었다고 전해진다.

바다가 아름답다는 의미의 ‘해미(海美)’라는 지명은 조선 시대부터 사용되었으며 해미읍성은 성곽 둘레 1,800m, 높이 5m, 면적 약 20만㎡ 정도로 넓은 평지에 축조되었다. 사진/ 김지수 기자

해미읍성의 깃발을 자세히 보면 사신사상의 청룡, 백호, 주작, 현무로 꾸며져 있다. 해미읍성안은 넓은 공원처럼 잔디밭이 깔려 있었으며 사극에서 자주 등장하는 공성용 무기 대포, 투석기 등과 천주교 신자를 투옥했던 감옥 등이 눈길을 끈다. 최근 tvN의 인기 드라마 ‘미스터 션사인’ 촬영지로도 알려져 방문객도 늘고 있다.

천주교 신자의 아픔의 공간, ‘해미순교성지’ 

천주교 신자의 아픔의 공간, ‘해미순교성지’. 사진/ 김지수 기자

해미순교성지는 1866년부터 1872년까지 약 6년 동안 천주교 신자 천여 명이 생매장당했던 아픔의 공간이다. 예수 마리아를 부르며 기도하던 신자들의 외침을 주민들이 여수머리로 알아들어 여숫골이라 불려왔다. 

해미의 첫 순교자는 1797년 정사박해의 여파로 1800년 1월 9일에 순교한 인언민 마르티노와 이보현 프란치스코이다.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의 증조부 김진후 비오도 10년간의 옥고 끝에 1814년 10월 20일에 해미옥에서 옥사하였고, 이 세 명은 2014년 8월 15일 교황 프란치스코에 의해 윤지충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들과 함께 시복되었다.

그밖에 크고 작은 박해를 거치며 수많은 순교자가 순교하였으나 최근까지 밝혀진 해미의 순교자는 132명으로 아직도 수많은 순교자는 이름이 밝혀지지 않은 채로 남아있다.

해미순교성지는 1866년부터 1872년까지 약 6년 동안 천주교 신자 천여 명이 생매장당했던 아픔의 공간이다. 사진/ 김지수 기자

해미지역의 순교지는 1개의 유적지와 3개의 순교성지로 구분할 수 있다. 순교자들이 덕산, 예산, 삽교, 신창, 고덕, 신리, 등지에서 붙잡혀 압송되었던 한티고개 압송로 유적지와 신자들을 잡아 가두고 고문하며 때로는 교수형으로 사람을 처형하던 해미옥, 사형장으로 사용되었던 서문 밖 성지와 세계에서 유래를 찾아볼 수 없는 생매장터인 여숫골이다.

해미순교성지 안의 기념관에는 당시 천주교 신자들의 박해를 묘사한 그림과 조형물 등이 자세히 전시되어 있으며, 교황 프란치스코가 방문했던 사진도 보관되어 천주교 신자들의 아픔이 직접 느껴진다.

해미순교성지 안의 기념관에는 당시 천주교 신자들의 박해를 묘사한 그림과 조형물 등이 자세히 전시되어 있다. 사진/ 김지수 기자

한편, 해미 시내에는 순교자들이 걸으신 죽음의 길(해미읍성~여숫골)을 따라 시장, 농경지, 동네와 해미천 등 해미 곳곳을 지나는 십자가의 길이 지난 2011년 조성되었다. 

이 십자가의 길은 성지와 성지 인근을 아우르는 국내 유일의 십자가 길로, 이로 인해 시내 전역이 기도의 땅이 되었으며, 현재 전국의 본당과 신심 단체들이 순교자 유해를 모시고 기도에 임하고 있다.

해미 시내에는 순교자들이 걸으신 죽음의 길(해미읍성~여숫골)을 따라 시장, 농경지, 동네와 해미천 등 해미 곳곳을 지나는 십자가의 길이 지난 2011년 조성되었다. 사진/ 김지수 기자

현지취재 협조=주식회사 수요일, 시골투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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