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강점기 2만 관중 운집’…경평 축구전의 모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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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2만 관중 운집’…경평 축구전의 모든 것
  • 김지현 기자
  • 승인 2018.03.07 22:2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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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축구> 발간 개항~현재 서울 속 축구의 역사 소개
1876년 개항 이후 오늘날까지 서울에서 축구의 역사가 어떻게 전개되었는지를 쉽고 재미있게 서술한 <서울의 축구>가 발간됐다. 사진/ 서울역사편찬원

[트래블바이크뉴스=김지현 기자] 서울역사편찬원은 1876년 개항 이후 오늘날까지 서울이라는 공간 안에서 축구의 역사가 어떻게 전개되었는지를 쉽고 재미있게 서술한 <서울의 축구>를 발간했다고 밝혔다.

이 책은 서울의 문화를 알기 쉽게 서술하는 <서울문화마당> 시리즈 제12권으로, 스포츠 평론가이자 축구 전문가로 잘 알려진 정윤수 성공회대 교수가 저술했다.(243페이지 분량)

<서울의 축구>는 총 6장(①서울, 축구의 기원 ②일제강점기 서울의 축구문화 ③서울의 학원축구 ④서울의 실업축구 ⑤서울의 프로축구 ⑥서울 축구, 그 장소성의 의미들)으로 구성돼있으며, 다양한 참고 사진이 함께 수록돼있다.

서울역사편찬원에서 발간한 <서울의 축구>에는 일제강점기에 2만 명의 관중이 운집했던 경평 축구전의 모든 것이 수록되었다. 사진은 경평축구단. 사진/ 서울역사편찬원

이 책에 따르면, ‘제1회 경성·평양 축구 대항전’은 당시 조선일보사 운동부 기자 이원용과 경성의 변호사 최정연이 두 도시 축구단의 라이벌 관계를 이용해서 경평전을 하면 어떻겠느냐고 의사를 타진한 것이 발단이 돼 시작됐다.

일제강점기 경성에서는 과거 여러 차례 우승을 차지한 불교청년회를 주축으로 한 조선축구단, 신생 경성축구단이 생겨나 라이벌 구도를 형성했고, 평양에서는 평양축구단이 창단했다. 기존 무오축구단을 토대로 평양 대성학교, 숭실중학, 숭실전문 출신들이 주축이 되어 생겨난 평양축구단은 경성의 조선축구단과 큰 대회마다 결승에서 맞붙었다.

당시 ‘경평전’은 경성-평양 축구팀 간 라이벌전으로서 유럽 축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홈 앤 어웨이’를 전제로 한 더비전 방식으로 치러졌다.

당시 ‘경평전’은 경성-평양 축구팀 간 라이벌전으로서 유럽 축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홈 앤 어웨이’를 전제로 한 더비전 방식으로 치러졌다. 사진은 효창운동장 개장식(1960). 사진/ 서울역사편찬원

이밖에도, 서울 축구의 기원과 의미, 일제강점기 학원축구의 강자들, 실업‧프로축구와 서울의 여성축구단, FC서울의 시작과 라이벌들, 2002년 한일월드컵의 역사적 장소인 서울월드컵경기장과 광장문화 등에 대해서도 다루고 있다.

개항 이후 축구를 주도한 학교들은 일제강점기를 거쳐 해방 이후에도 여전히 명문 축구구단으로 자리매김했으며 지금까지도 대부분의 축구 명문학교는 서울에 있다.

1946년 창단한 서울시청 축구팀은 6‧25전쟁으로 해체됐다가 1976년 박종환 감독을 중심으로 재창단해 최고의 실업팀으로 자리매김했다.

아울러, 동대문운동장 → 효창운동장 → 잠실종합운동장 → 상암월드컵경기장으로 이어지는 서울 내 축구경기장 건립 역사, 빈곤한 여성축구계에 생겨난 서울시청 여성축구단 아마조네스, 여러 차례 부침을 거쳐 FC서울로 자리잡은 서울지역 프로축구단의 변천사 등도 확인할 수 있다.

<서울의 축구>는 서울시내 각 도서관과 서울역사편찬원 홈페이지에서 e-book으로 읽을 수 있으며, 시민청 서울책방에서 구매(1만원)할 수 있다.

한편, 서울역사편찬원은 1949년 설치된 ‘서울특별시 시사편찬위원회’의 행정 및 연구 기능을 발전적으로 계승해 '15년 출범한 서울시 소속 기구로, 서울시 역사자료의 수집, 조사와 연구, 편찬과 관련한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김우철 서울역사편찬원장은 “익숙하고 가볍게만 즐겨왔던 축구가 서울이라는 공간에서 축구의 역사가 어떻게 전개되었는지 쉽고 재미있게 확인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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