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년 비법의 만두…정서에 잠든 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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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년 비법의 만두…정서에 잠든 맛
  • 이혜진 기자
  • 승인 2019.06.03 1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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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김이 모락모락, 바삭함과 부드러움이 동시에
지난 28일 서울 용산구 남영동 숙대입구역 근처의 ㄱ만두를 찾았다. 사진/ 이혜진 기자

[트래블바이크뉴스=이혜진 기자] “맛은 화학적 실체라기보다는 정서적 현상이다…그의 모든 시간 속에서 맛은 그리움으로 변해서 사람들의 뼈와 살과 정서의 깊은 곳에서 태아처럼 잠들어 있다”(김훈, ‘라면을 끓이며’, 문학동네) 

자장면 곱빼기와 먹던 만두의 ‘질감’ 그리고 간장 종지 ‘냄새’. 이 또한 사람들의 몸에 각인된 ‘정서적 현상’이다. 지난달 28일 시큼한 땀 냄새와 함께 서울 용산구 남영동 숙대입구역 근처의 ㄱ만두를 찾았다. ‘정서의 깊은 곳에 잠든’ 맛을 찾기 위해서다. 

ㄱ만두의 샤오롱바오를 주문했다. 육즙이 많아 만두가 각각 다른 그릇에 담겨져 나온다. 대표 메뉴와 함께 ㄱ만두의 인기 메뉴다. 사진/ 이혜진 기자

ㄱ만두는 중국 장쑤성 출신인 쨩만(54‧한국 이름 김윤경) 대표가 한국인 남편과 운영한다. 국내 화교의 다수가 서해에서 가까운 산둥성 출신인 것을 생각하면 다소 특이하다. 이 곳은 지난 2017년부터 미쉐린가이드가 뽑은 ‘가성비 좋은 식당’에 오른 유명 식당이다. ‘수요미식회’ ‘생활의 달인’ ‘밥블레스유’ ‘생생정보’ 등 다수 방송에도 소개됐다.

ㄱ만두의 대표 메뉴는 ‘구복전통만두(5000원)’. 밑은 튀기듯 지지고 위는 쪄서 나오는 수제만두다. 하지만 많은 중국집들이 더 이상 만두를 튀기지 않는다. 수지타산이 안 맞아서다. 언젠가부터 ‘중국집 만두는 서비스’라는 인식이 퍼져서 그렇기도 하다. 모양이 바르고 예쁘면 냉동만두로 의심하는 사람들의 인식도 한몫했다. 

지난 28일 찾은 ㄱ만두 가게 내부엔 2017년부터 미슐랭가이드에 선정됐음을 증명하는 표식이 걸려 있다. 사진/ 이혜진 기자

ㄱ만두의 만두는 남다르다. 우선 다른 식당은 만두에 돼지고기를 많이 넣어 고소하고 달콤한 맛을 끌어내는 반면, 이곳은 고기 반, 채소 반이다. 하지만 소에 들어가는 재료는 16가지에 달한다. 

만두피도 비범하다. ㄱ만두의 피는 밀가루에 콩가루를 섞은 후 곱게 간 연근을 넣어 만든다. 이후 쑥 향을 입히기 위해 피를 찜기에 넣고 훈연한다. 이렇게 훈연한 만두피는 식어도 맛있는 만두의 비밀이다. 식사 후 속도 편안하다.

만두를 지질 때 사용하는 육수도 특별하다. 우선 마른 목이버섯을 물에 불려 팬에 넣어 볶아준 후, 물을 부어 푹 끓여내면 버섯의 향이 잘 우러난 육수가 만들어진다. 그 다음 ‘200년 비법’ 옥수수 전분을 섞으면 이른바 ‘빙화수’가 완성된다. 이 전분은 옥수수의 위아래에 양배추를 덮고 그 위에 천을 덮어준 뒤 물을 조금씩 부어가며 30분간 쪄내 만든다. 

ㄱ만두에서 원산지 표시 사항을 안내하고 있다. 사진/ 이혜진 기자

이 물을 프라이팬에 부어 준 후 뚜껑을 덮고, 20분 동안 튀기듯 지져내면 물과 만두에서 뿜어 나오는 수증기로 윗부분이 쪄진다. 훈김이 모락모락 나는 만두를 먹어보니 만두의 아래는 바삭하고 위는 부드럽다. 만두 하나에서 어릴 때 배달 음식으로 먹던 튀긴 만두와 어머니가 해주던 찐만두의 식감을 모두 느낄 수 있다. ‘정서의 깊은 곳에 잠든’ 맛을 찾기에 제격이다.

이 만두는 전분물이 튀겨진 모습이 마치 눈꽃의 결정처럼 생겨 일명 ‘눈꽃만두’로도 불린다. 정식 명칭은 ‘셩지엔’이다. ‘샤오롱바오’와 함께 중국 장쑤성, 상하이 등지를 대표하는 음식이다. 

ㄱ만두는 샤오롱바오(7000원)도 판매한다. 따뜻한 육수를 잔뜩 머금었다. 피를 살짝 뜯어 한소끔 식힌 뒤, 생강채를 올리고 간장을 찍어 먹는 것이 정석이다. 입가에 흐르는 육수를 슥 닦다보면, 어느새 만두 한 판이 사라진다. 

ㄱ만두의 대표 메뉴인 '구복전통만두'. 사진/ 이혜진 기자

ㄱ만두는 소셜미디어에서 인기다. 특히 인스타그램에서 그렇다. 3일 오후 현재 인스타그램에서 ㄱ만두의 해시태그를 입력하면 약 9000여 건의 게시물이 검색된다. 이는 대만 유명 프랜차이즈 ㄷ타이펑, 이태원 ㅈ덤플링, 동대구역 ㄷ딤섬, 부산 차이나타운 ㅅ발원에 이어 국내 중국만두 전문점 중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게시물 수다. 특히 별다른 홍보를 하지 않았음에도 일본인 관광객들의 후기가 많다. ㄱ만두의 인기는 인스타그램에서 부는 복고적 분식집 유행과도 무관하지 않다. 

그러나 ㄱ만두의 인기 요인에는 더 중요한 사실이 있다. 국내 중국만두 전문점 중 가장 노동집약적인 음식을 판다는 점이다. 관련 식당이 넘쳐나는 홍콩에서조차 기술을 익히기 어렵고 힘이 많이 든다는 이유로 중국 만두 만들기를 배우려는 사람이 부족한데, ㄱ만두는 이런 만두를 꾀부리지 않고 옛 시절처럼 탐스럽게 만든다. 다른 전문점보다 더 수고스럽게.  

그래서 ㄱ만두의 만두에선 ‘정서의 깊은 곳에 잠든’ 맛을 더 느낄 수 있다. 화교들은 짜장면보다 훨씬 자주 먹었던 고향의 정서를 느낄 것이다. 한국인들은 짜장면과 곁들여 먹었던 기억과 함께 어머니의 정성을 떠올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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