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나마, 1달러의 행복을 느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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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나마, 1달러의 행복을 느끼다!
  • 박민성
  • 승인 2016.01.08 20:3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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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중 유일하게 찾아간 파나마 운하
남미와 북미 가운데 위치해 남북아메리카의 탯줄과 같은 곳인 파나마는 파나마 운하로 유명하다. 사진/트래블바이크뉴스 DB

[트래블바이크뉴스] 머무를 여행지에 대해 전혀 모른 채 그 나라에 발을 들인다는 것은 ‘어떤 꼴을 당해도 내 탓’이라는 각오를 하고 시작하는 일이기는 하지만 이런 경우를 생각지는 못했다.

여느 나라와 마찬가지로 약간의 흥분과 장시간의 비행으로 피곤한 기색이 역력한 사람들이 가득한 파나마 공항 입국심사 대에서 우리 차례가 왔을 때만 해도 우리는 당장 숙소를 어디로 정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만 얘기하고 있었다.

공항 직원이 우리의 여권을 꼼꼼히 보더니 질문을 쏟아낸다. “파나마에 왜 왔으며, 어디에서 얼마나 머물 것이며, 아는 사람은 있느냐”고.

파나마운하는 태평양에서 대서양으로 건너가는 배들을 통과시키는, 전세계 해상 교역량의 5%를 차지하는 운하다. 사진/정준연작가

도대체 왜 이런 질문들을 하나 생각하며 대답을 하고 있을 때 그는 다시 물었다. “돈을 지금 나한테 보여 달라고!” 직원에게 보여주려고 주섬주섬 복대를 열어 우리가 가진 돈 600달러를 보여주면서 나는, 이런 창피를 당하고 있는 것에 화가 났고 그 이유를 알고 싶어 답답했다.

그때 눈에 들어온 건 직원 책상에 붙어있던 Note National Immigration(입국 주의국가)의 제일 위에 적힌 North Korea. 이 직원은 남한과 북한의 차이를 잘 모르고 있었다.

삼성은 알아도 한국은 잘 모르는 외국인들. 그들은, 그들이 만날 수 있는 Korean은 거의 남한 사람뿐이라는 것을 알지 못하며 북한과 남한의 차이 역시 거의 모른다.

그러니 그의 행동은 어쩌면 당연했을 수도 있다. 파나마 공항 직원에게 남한과 북한은 다르며 우리는 ‘입국주의국가’ 국민이 아니라는 사실을 부족한 영어로 진이 빠지게 설명하고 나서야 우리는 공항을 빠져나올 수 있었다(우리의 경험이 일반적이지는 않을 것이다).

파나마시티에서 가장 가까운 미라플로레스갑문에는 관광객을 위한 전망대 및 박물관, HD급 상영관이 365일 운영되고 있다.사진/정준연작가

예상치 못한 일을 겪고 나자 ‘파나마에서는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다.’라는 생각이 ‘파나마에서는 격렬하게 아무것도 하지 않겠다.’라는 결심으로 바뀌었다.

파나마는 북미와 남미의 경계에 있는 나라이다.

세계지도를 떠올려보면 북미와 남미가 만나는 지점에 가느다랗게 연결된 부분이 바로 파나마다. 파나마는 왼쪽으로는 태평양을, 오른쪽으로는 대서양을 접하고 있다.

우리가 세계사 시간에 배운 파나마 운하는(내가 파나마에 도착했을 때 파나마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은 파나마 운하뿐이었다) 태평양에서 대서양을 거쳐 가려는 배들을 위해 만들어졌다.

파나마운하 보호를 위한 방파제로서 설계한 것이 제방도로변으로 산책길과 각종 음식점이 들어서면서 현재는 파나마시티의 관광명소가 된 아마도르 코스웨이. 사진/정준연작가

파나마운하를 거치지 않고 남미 대륙을 돌아서 유럽이나 아프리카로 가려면 배들은 1만 5천Km를 더 운항해야 한다. 파나마 운하는 많은 선박, 특히 미국 선박들에 안전한 지름길이며 파나마에는 나라 재정의 절반을 감당해주는 귀한 시설이 아닐 수 없다.

파나마 운하는 자국에서는 관광지가 아니었기 때문에 사람들로 북적이지는 않았지만, 대서양과 태평양을 오가는, 어마어마한 짐을 싣고 가는 큰 배들을 보는 것만으로도 볼만한 구경거리였다. 운하는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던 우리가 구경한 유일한 관광지이기도 했다.

맛있는 것을 열심히 찾아다니다 보니 파나마는 맛집의 천국이었다.

일반적인 쇼핑센터 식당가에서도 15달러만 내면 육즙이 뚝뚝 떨어지는 환상적인 비주얼을 자랑하는, 남자 팔뚝만 한 스테이크와 각종 남미 향신료를 잔뜩 얹어 감칠맛을 내는 수북한 쌀밥, 삶은 당근을 으깨 넣어 색깔까지 예쁜 매시포테이토가 어마어마한 사이즈의 철판에 지글지글 소리를 내며 나온다.

아마도르 코스웨이에서 바라본 파나마시티의 전경. 사진/정준연 작가

이 모든 것에 더불어 남미에서 물값보다 싼 콜라를 마시며 남산만 한 배를 두드리면서 식당을 나오면 길거리 가판대들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그 작은 가판대에는 그 모든 것들이 다 올라가 있다는 게 신기할 정도로 많은 소시지와 빵이 쌓여있다.

아무리 배가 불러도 이 유혹을 절대 거부할 수 없는 이유는 가판대마다 그 맛있는 소시지를 끼운 빵이 ‘1달러’라고 큼지막하게 붙여 놨기 때문이다.

거대한 배를 쓰다듬으며 눈은 가판대를 훑고 있다. 후식으로 빵을 먹자고 가판대 앞에서 승강이를 벌이는 우리를 바라보던 아저씨가 눈을 초승달 모양으로 만들며 우리에게 어서 오라고 손짓한다.

파나마시티 옛 정착촌인 카사 비에조는 스페인과 프랑스 식민지양식의 다양한 건축물이 공존하고 있어, 1997년 UNESCO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사진/트래블바이크뉴스DB

아저씨는 마치 익숙한 공연을 하는 사람처럼 긴 빵의 중간을 척 갈라 양쪽으로 나누고 땅콩 소스를 싹싹 바른다. 빵 양 끝으로 튀어나오는 기다란 소시지는 보기만 해도 마음이 푸근해진다.

여기에 잘게 자른 양파와 오이 피클을 넣은 소스와 양상추를 소시지 양쪽으로 꾸역꾸역 속이 미어지게 넣고, 소시지 위로 머스터드와 케첩을 바른다. 그날 이후로 우리의 일정은 하나가 추가됐다. 맛집 갔다가 후식으로 소시지 빵 먹기.

늘어날 대로 늘어나 원치 않게 섹시해진 티셔츠와 유럽 각국의 흙을 고루 묻혀 길에 놔두어도 아무도 가져가지 않을 것이 확실한 거지 같은 가방을 메고 파나마를 돌아다니면서도 하루의 마지막 일정은 늘 소시지 아저씨 가판대였다.

단돈 1달러로 포만감은 물론 아저씨의 후덕한 인심으로 행복함을 느꼈던 파나마는 진정 식도락의 천국이었다. 사진/정준연 작가

아저씨는 “나는 다른 나라를 가 본 적이 없지만 얼마 전에 온 미국 커플이 그러는 데 페루 좋다더라”면서, “우리 아이들은 공부도 많이 하고 여행도 많이 하면 좋겠어.

핫도그를 팔아서 아이들을 열심히 공부시키는 중이니까 아마 그렇게 될 거야. 우리 아이들이 세계 여러 나라를 여행하는 게 내 꿈이야.”

웃음 때문인지, 파나마의 뜨거운 햇살 탓인지, 삶의 무게 탓인지, 알 수 없는 수많은 눈가 주름들을 만들어내며 아저씨는 인심 좋게 웃었다.

전 재산을 털어 세계여행을 떠난다는 딸의 말에 아빠는 엄마 몰래 꿍쳐 놓았던 모든 돈이었을 300만 원을 쥐여주시면서 혹시 돈 떨어지면 전화하라고, 힘들면 언제든 돌아오라고 몇 번이나 얘기했었다.

태평양과 카리브 해에 접하고 있는 파나마는 북미 대륙과 남미 대륙을 연결하는 세계의 교통 요충지로 자리잡고 있다.사진/정준연작가

어디 붙어있는지도 모를 나라로 간다는 딸을 보며 아빠는 다른 나라라고는 가본 적 없는 자신의 젊은 시절을 떠올렸을까? 자신은 이루지 못한 꿈을 딸이 이루어주는 중이라고 기뻐하셨을까? 아빠는 이런 꿈을 꾸며 그 고된 젊음을 견뎌내신 걸까?

지구 반대편의 이름도 생소한 파나마라는 곳에서 나는 젊은 아버지를 떠올린다. 전쟁으로 폐허가 된 나라를 세계 11위의 무역대국으로 만들기 위해, 그래서 그 자식들은 자유롭게 세계여행을 하는 세상에 살게 하려고 가난하고 고된 시간을 몸으로 살아낸 젊은 아버지를.

핫도그를 꾸역꾸역 씹으며 파나마 아버지의 삶의 무게가 그 아이들에게는 희망으로 피어나기를 기도했다. 오늘은 유난히 아빠가 보고 싶다. 전화를 드려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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