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문학기행, 박인환의 「목마와 숙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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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문학기행, 박인환의 「목마와 숙녀」
  • 김효설 기자
  • 승인 2022.07.08 0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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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던한 리얼리즘의 시 세계를 펼치다
2022년 서울문학기행이 시작됐다. 지난 6월 11일 박인환의 「목마와 숙녀」로 시작해 오는 11월 19일 이육사의 「광야」로 대장정의 막을 내린다. 사진/ 김효설 기자
2022년 서울문학기행이 시작됐다. 지난 6월 11일 박인환의 「목마와 숙녀」로 시작해 오는 11월 19일 이육사의 「광야」로 대장정의 막을 내린다. 사진/ 김효설 기자

[트래블바이크뉴스=김효설 기자] 2022년 서울문학기행이 시작됐다. 2020년에 이어 올해 다시 시작한 서울문학기행은 지난 6월 11일 박인환의 「목마와 숙녀」로 시작해 오는 11월 19일 이육사의 「광야」로 대장정의 막을 내린다.

서울문학기행은 1920~1960년대에 출간된 문학작품의 현장 탐방을 통해 참가자들에게 문학을 누릴 기회를 제공하는 한편, 서울과 서울 사람의 삶을 묘사한 작품 속 현장과 작가들의 체취를 작가, 문학평론가, 전문해설가의 설명을 통해서 찾아보는 문학탐방 프로그램이다.

박인환 시인의 「목마와 숙녀」의 해설은 시인이자 문학평론가인 안양대 국문과 맹문재 교수가 진행했다. 사진/ 김효설 기자
박인환 시인의 「목마와 숙녀」의 해설은 시인이자 문학평론가인 안양대 국문과 맹문재 교수가 진행했다. 사진/ 김효설 기자

박인환 시인의 「목마와 숙녀」의 해설은 시인이자 문학평론가인 안양대 국문과 맹문재 교수가 진행했다. 전태일문학상, 윤상원문학상, 고산문학상을 수상한 바 있는 맹 교수는 「박인환 전집」, 「박인환 깊이 읽기」 등을 편저하면서 박인환 시인에 대해서 집중적으로 탐구했다. 특히 맹 교수는 박인환 시인과 친구이자 라이벌 관계를 형성했던 고 김수영 시인의 부인 김현경 씨와의 대담집을 집필하면서 박인환 시인의 작품세계를 재조명하고 있다.

한국전쟁에 대한 허무 의식과 현대 문명에 대한 비판 의식 담긴 박인환의 대표작, 「목마와 숙녀」

가수 박인희의 낭송으로 우리에게 익숙한 박인환의 「목마와 숙녀」는 1955년 ‘박인환 시 선집’에 실린 박인환의 대표작으로 꼽힌다. 사진/ 박인환문학관
가수 박인희의 낭송으로 우리에게 익숙한 박인환의 「목마와 숙녀」는 1955년 ‘박인환 시 선집’에 실린 박인환의 대표작으로 꼽힌다. 사진/ 박인환문학관

가수 박인희의 낭송으로 우리에게 익숙한 박인환의 「목마와 숙녀」는 1955년 ‘박인환 시 선집’에 실린 박인환의 대표작으로 꼽힌다. 한국전쟁에 대한 허무 의식과 현대 문명에 대한 비판 의식이 담겨 있는 시의 주요 메시지는 “인생은 외롭지도 않고 잡지의 표지처럼 통속하거늘 한탄할 그 무엇이 무서워서 우리는 떠나는 것일까?”라는 부분이다.

시의 정조 자체는 떠남과 소멸로 이루어지고, ‘떠나다/부서지다/보이지 않다/작별하다/목메어 울다’라는 행위 어에 의해 뒷받침되고 있다. 가치의 상실과 그로 인한 비애로 현실을 인식하는 시인에게 목마와 숙녀의 세계는 비논리의 신화적 세계이다. 목마와 숙녀는 시인이 찾고자 했던 별, 사랑, 문학, 인생 등 삶의 다양한 의미 범주를 포괄하는 은유이다.

지상의 공간을 떠난 목마와 숙녀는 지상에 남은 사람들에게 희미한 의식으로 잔해를 남길 뿐이고, 가치를 상실한 시인의 비애는 원죄의 운명과 미끈미끈한 실존을 지닌 뱀으로 표상된다. 천상의 공간에서 방울 소리를 울리는 목마와 지상의 공간에서 무거운 실존을 자궁으로 기어 다니는 뱀은 허무주의와 센티멘털리즘에 빠진 시인의 의식을 극명하게 드러내는 대립 항이다.

박인환의 허무주의는 전쟁을 통해, 죽음에 대한 강박관념으로 집요하게 나타났다. 그러나 그의 허무주의는 깊은 성찰을 통해 작품으로 형상화되지 못하고 죽음에의 평범한 두려움으로 나타난다. 그의 모더니즘적 가치는 상식선을 넘지 못하고 어휘의 빈곤, 이미지의 분산, 경박한 겉멋으로 귀결되는 경향이 있다.

그의 시에 등장하는 버지니아 울프나 그녀의 작품 「등대로」는 그의 서구적 취향을 반영하고 있는데 시의 전체적 맥락에 연결되지 못하는 낯섦을 준다. 또한 음이나 리듬의 감미로움이 읽는 이에게 편안함을 주긴 하지만 유창하게 반복하는 경향, 연설조의 문장, 영탄조의 표현, 일인칭 어의 빈번한 사용, 독백체의 어투 등은 서정시의 기본 전제인 미적 긴장을 방해하는 장애물이기도 하다.

박인환, 모던한 리얼리즘의 시 세계를 펼치다

1949년에는 김경린, 김수영, 임호권, 양병식과 함께 합동 시집 「새로운 도시와 시민들의 합창」을 발간하는 한편, 김경린, 김규동, 조항, 김차영, 임호권, 이봉래 등과 ‘후반기’ 동인을 결성했다. 사진/ 조병화문학관
1949년에는 김경린, 김수영, 임호권, 양병식과 함께 합동 시집 「새로운 도시와 시민들의 합창」을 발간하는 한편, 김경린, 김규동, 조항, 김차영, 임호권, 이봉래 등과 ‘후반기’ 동인을 결성했다. 사진/ 조병화문학관

시인 박인환은 1926년 8월 15일 강원도 인제에서 태어나 1956년 3월 20일 31살의 나이로 타계하기까지 남긴 작품 수는 총 173편으로 혼란한 정국과 한국전쟁 등 상황을 감안하면 결코 적지않은 성과라고 평가된다.   

1945년 8월 15일 해방이 되자 박인환은 평양에서 다니던 의과대학을 그만두고 상경해 ‘마리서사’를 개업하고 본격적으로 시인 활동을 한다. 1948년 김경린, 김경희, 김병욱, 임호권과 동인지 「신시론」을 발간했다. 1949년에는 김경린, 김수영, 임호권, 양병식과 함께 합동 시집 「새로운 도시와 시민들의 합창」을 발간하는 한편, 김경린, 김규동, 조항, 김차영, 임호권, 이봉래 등과 ‘후반기’ 동인을 결성했다.

박인환은 문단에 나온 1946년부터 1950년 6월 한국전쟁이 일어나기 전까지 시 13편과 산문 13편 등 총 26편의 작품을 발표했다. 작품을 발표한 시기는 1948년이 가장 많고, 주요 발표 지면은 「신천지」, 「민성」이었다. 「인천항」, 「남풍」, 「지하실」, 「인도네시아 인민에게 주는 시」는 합동 시집 「새로운 도시와 시민들의 합창」에도 수록했다.

한국전쟁 기간(1950.6~1953.7)에는 산문 15편과 시 9편 등 총 24편의 글을 발표했다. 육군소속 종군 작가단에 가입해 전쟁의 상황을 알리기도 한 그는 「경향신문」과 공군 정훈부에서 발간한 「창궁」을 통해서 전쟁의 체험을 담은 작품들을 발표했다.

이 시기에 발표한 산문은 「서울 돌입」, 「서울탈환 명령 고대 6185부대 한강 연대기」, 「서울에서 남대문까지」 등 전쟁의 상황을 알리는 것이 대부분이었으나, 「현대 시의 불행한 단면」은 ‘후반기’ 동인의 특집으로 게재된 것으로 모더니즘 상황을 알려주고 있다.

박인환은 한국전쟁이 끝난 뒤부터 타계할 때까지 시 54편, 산문 44편 등 총 98편의 작품을 발표했다. 1955년 10월 15일 첫 시집이자 마지막 시집이 된 「선시집」을 발간했다.

한국전쟁은 박인환에게 일제 강점기의 억압과 해방기의 혼란한 상황을 경험한 그였지만, 전쟁의 충격에 함몰되지 않고 시인다운 세계 인식을 하려고 했다. “시를 쓴다는 것은 내가 사회를 살아가는데 있어서 가장 지지할 수 있는 마지막 것”이라는 의식으로 휴머니즘을 추구한 것이다.

박인환의 「목마와 숙녀」 문학기행 코스의 시작은 명동 은성주점

영화배우 최불암 씨의 어머니 이명숙 여사가 운영했던 명동 은성주점은 술과 음식을 파는 주점을 넘어 당대 예술인들의 휴식처이자 사랑방이었다. 사진/ 김효설 기자
영화배우 최불암 씨의 어머니 이명숙 여사가 운영했던 명동 은성주점은 술과 음식을 파는 주점을 넘어 당대 예술인들의 휴식처이자 사랑방이었다. 사진/ 김효설 기자

박인환의 「목마와 숙녀」 문학여행 코스는 명동 은성주점터→교보 앞 처가 터→낙원동 마리서사 터→원서동 집터로 이어졌다.

명동 은성주점은 없어진 지 오래고 ‘탑10’ 매장 옆에 터를 알리는 표지석이 설치돼 있다. 영화배우 최불암 씨의 어머니 이명숙 여사가 운영했던 이곳은 술과 음식을 파는 주점을 넘어 당대 예술인들의 휴식처이자 사랑방이었다.

은성주점에는 문화예술인들이 모여들었는데 박인환, 김수영, 변영로, 전혜린, 오상순, 천상병 같은 이들이었다. 이곳은 외상값을 대신해서 박인환이 즉석에서 써 내려간 ‘세월이 가면’이 처음으로 불렸던 곳으로 1970년대 낭랑한 목소리로 심금을 울린 통기타 가수 박인희의 노래로 더욱 유명하다. 특히, 이 여사는 가난한 문인들을 위해서 외상장부에 문인들의 실명이 아닌 별명으로 기록할 정도로 그들을 배려하고 사랑했다고 전해진다.

‘교보 앞 처가 터’는 세종로 135번지, 그가 결혼 후, 1948년부터 1956년에 생을 마감할 때까지 박인환이 거주하며 창작활동을 하던 세종로 집터다. 사진/ 김효설 기자
‘교보 앞 처가 터’는 세종로 135번지, 그가 결혼 후, 1948년부터 1956년에 생을 마감할 때까지 박인환이 거주하며 창작활동을 하던 세종로 집터다. 사진/ 김효설 기자

교보 앞 처가 터’는 세종로 135번지, 그가 결혼 후, 1948년부터 1956년에 생을 마감할 때까지 박인환이 거주하며 창작활동을 하던 세종로 집터다. 지금의 광화문 교보빌딩 주차장 자리에 있던 집터의 표석마저 주변 공사로 이전해 볼 수 없었다. 원서동 시댁에서 밤마다 친정이 그리워 우는 아내를 위해 처가살이를 한 박인환의 아내 이정숙의 친정집이었다. 이곳에서 큰아들 세형과 딸 세화을 얻었다.

인제에서 상경해 덕수초등학교 4학년으로 편입해 다녔던 그는 덕수초등학교를 나와 경기중학교에 입학할 정도로 공부를 잘했으나, 책과 영화와 음악을 좋아해 성적이 떨어지자 황해도 재령의 명진중학교로 전학을 간다. 박인환은 중학교를 졸업하고, 평양 의학전문대에 입학한다. 일제강점기인 당시 의과, 농과, 이과 등은 학도병에 징집이 되어도 전방으로 가지 않아 부친의 권고로 의과를 선택했다고 한다. 의과 입학 1년 후 해방을 맞아 서울로 상경해 서점 ‘마리서사’를 열게 된다.

한국 모더니즘 시운동의 발상지, ‘마리서사(茉莉書舍)’는 박인환이 20세가 되던 1945년 해방 후, 지금의 낙원동 ‘송해거리’ 입구 ‘대한보청기’ 자리에 문을 연 서점이다. 사진/ 김효설 기자
한국 모더니즘 시운동의 발상지, ‘마리서사(茉莉書舍)’는 박인환이 20세가 되던 1945년 해방 후, 지금의 낙원동 ‘송해거리’ 입구 ‘대한보청기’ 자리에 문을 연 서점이다. 사진/ 김효설 기자

한국 모더니즘 시운동의 발상지, ‘마리서사(茉莉書舍)’는 박인환이 20세가 되던 1945년 해방 후 평양 의학전문학교를 그만두고 상경해 아버지를 설득하여 3만 원을 얻고 작은이모에게 2만 원을 빌려서 종로 3가 2번지. 지금의 낙원동 ‘송해거리’ 입구 ‘대한보청기’ 자리에 문을 연 서점이다. 초현실주의 화가 박일영의 도움으로 세련된 분위기의 인테리어를 하고 문을 연 ‘마리서사’는 책을 좋아하고 예술가들의 교류 장소를 만들고 싶어 했던 박인환의 꿈이 실현된 곳으로 새로운 문물에 대한 욕구와 정열이 한창인 때에 예술인들의 작은 캠퍼스였다.

‘마리서사’라는 이름을 얻게 된 것은 당시 일본 초현실주의 시인, 안자이 후유에(安西冬衛)의 ‘군함 말리(軍艦茉莉)’에서, 프랑스의 화가이자 시인인 마리 로랑생의 이름을 붙인 것이라는 두 가지 설이 있지만, 후자의 것을 더 인정하고 있다. ‘마리서사’에서는 앙드레 브르통, 장 콕도 등 여러 문인의 작품과 문예지, 화집 등 주로 문학, 예분야의 서적들을 취급하였다. 이곳에서 김광균, 김기림, 김수영, 임호권 등 문인, 예술인 등과 교류하였다.

‘원서동 집터’는 원서동 134-8번지로 1926년 강원 인제에서 태어난 박인환이 사업차 상경한 아버지를 따라와 살았던 곳이다. 그 자리에는 주차장과 창고와 공터뿐이다. 수년째 표지 하나 없는 창고 위 공터로 남아 있는 집터가 을씨년스럽다. 사진/ 김효설 기자
‘원서동 집터’는 원서동 134-8번지로 1926년 강원 인제에서 태어난 박인환이 사업차 상경한 아버지를 따라와 살았던 곳이다. 그 자리에는 주차장과 창고와 공터뿐이다. 수년째 표지 하나 없는 창고 위 공터로 남아 있는 집터가 을씨년스럽다. 사진/ 김효설 기자

고 김수영 시인의 부인 김현경 여사의 증언에 따르면 ‘마리서사’는 장사가 잘됐으나, 몇 년을 버티지 못하고 문을 닫았다고 한다. 박인환은 이곳에서 손님으로 왔던 문학소녀 이정숙과 만나 결혼하게 된 곳으로 ‘마리서사’의 폐점을 아쉬워하지 않았다고 한다. 은행원 아버지를 둔 그녀는 무남독녀로 유복하게 살았다. 특히, 이정숙 여사는 늘씬한 키로 진명여고를 다닐 때 농구부에서 선수 생활을 한 바 있다. 진명여고 한 반 동급생이었던 김현경 여사는 이정숙 여사는 붓글씨를 잘 써서 유명했으며, 졸업 후 한때는 방송국에도 다녔다고 기억한다.

원서동 집터’는 원서동 134-8번지로 1926년 강원 인제에서 태어난 박인환이 사업차 상경한 아버지를 따라와 살았던 곳이다. 안국역에서 내려 계동을 지나 창덕궁 담을 끼고 돌아 골목으로 들어가면 어린 박인환이 살던 곳인데, 그 자리에는 주차장과 창고와 공터뿐이다. 수년째 표지 하나 없는 창고 위 공터로 남아 있는 집터가 을씨년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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