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갯것할망당 ‘숨비소리’ 들리는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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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갯것할망당 ‘숨비소리’ 들리는 듯
  • 이혜진 기자
  • 승인 2019.07.23 1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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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가 허락한 곳, 해녀들 기도 켜켜이 쌓여
마을마다 있는 성소로 마을을 수호해 주는 신의 상주처이다. 신은 남성신과 여성신으로 나누어 하르방당(할아버지당), 할망당(할머니당)으로 구분하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는 할망당으로 통칭한다. 사진/ 이혜진 기자

[트래블바이크뉴스=이혜진 기자] 바람이 머리칼을 사정없이 흩날렸다. 걷다 보니 바닷가 쪽으로 돌을 쌓아올린 한 돌담이 보였다. 

지난 18일 제주시 구좌읍 세화리의 갯것할망당에 갔다. 지난해 12월 제주도청이 제주해녀박물관 일대에 조성한 ‘숨비소리길’ 코스에 있는 곳이다. 숨비소리는 해녀가 잠수하기 직전 숨을 크게 들이마신 후 물 속에서 들어가 해산물 등을 채취한 후 물 위로 올라왔을 때 허파에 압축됐던 공기가 입 밖으로 한꺼번에 새어나오면서 나는 소리다. 마치 휘파람 소리처럼 들리는 이 소리는 해녀의 고된 물질 작업과 강인한 정신력을 상징한다.

지난 18일 제주시 구좌읍 세화리의 갯것할망당에 갔다. 하얀 모래밭을 지나 중간에 할망당이 보인다. 지난해 12월 제주도청이 제주해녀박물관 일대에 조성한 ‘숨비소리길’ 코스에 있는 곳이다. 사진/ 이혜진 기자

원래 갯것할망당은 밀물 때 바닷물로 막혀 섬 속의 섬이 된다. 하지만 이날 도착했을 땐 다행히 썰물이라 하얀 모래밭을 지나 할망당으로 건너갈 수 있었다. 갯것할망당은 정성스럽게 돌담으로 둘러쳐진 형태였다. 

그렇다면 ‘갯것’이라는 단어의 뜻은 뭘까. 제주말로 ‘갯가에 있는 것’이라는 뜻이다. 즉 ‘갯것할망당’은 바닷물이 드나드는 곳의 물가에서 해녀들의 안전과 어민들의 풍어를 비는 ‘해신당(해변이나 도서의 어촌에서 어업과 그 종사자들을 수호하는 신을 모신 신당)’을 뜻한다. 

갯것할망당은 자연석을 쌓아 만들었다. 돌 틈새에는 시멘트를 발라 제장(제사를 드리는 곳)을 두르고, 그 안에 제단과 궤를 마련하였다. 궤(나무로 네모나게 만든 그릇) 안에는 제사에 알맞은 물건을 넣는다. 사진/ 이혜진 기자

제주발전연구원이 2009년 펴낸 『제주여성 문화유적100』에 따르면, 이 당은 원래 평대리 갯마리와 세화리 통항동 어부들이 공동으로 사용하던 당이었다. 그러나 포구를 넓히면서 현재의 정순이빌레로 옮겼다. 따라서 ‘여신’의 명칭은 ‘정순이빌레할마님’이 됐다. 위쪽에 생수가 솟는 초(아래아)물통이라는 물통이 있어서 ‘초(아래아)물통알당’ 또는 ‘찬물통알당’이라고도 불리고 있다.

해마다 구정이 되면 해녀와 어부들은 갯것할망당에서 ‘요왕맞이(영등굿)’를 한다. 1991년 한국정신문화연구원(현 한국학중앙연구원)에서 발간한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 따르면, 이 굿은 바다에 빠져 익사한 이들 가운데 시신을 찾지 못한 이들의 혼령을 위한 제의다. 망자의 혼을 저승으로 천도하길 바라는 간절함을 담아 바다의 신 요왕(용왕)께 올리는 의례다. 물론 이는 어부와 해녀의 해상 안전과 풍요를 빌기 위한 행위다. 

할망당 근처에 있는 아끈다랑쉬 오름. 작은길을 따라 10분 정도면 쉽게 오를 수 있다. 산 정상에 둥그렇게 패어있는 원형 분화구(둘레: 약600m)가 마치 경기장을 연상하게 한다. 사진/ 이혜진 기자

그래서일까. 평생 물질을 해온 나이든 해녀들은 지금도 할망당에 예를 갖추며 파도 속에 몸을 던진다고 한다. 보통 한 달에 한 번 꼴이다. 돌담에 섬 사람들의 기원이 켜켜이 쌓여 있는 셈. 그들의 태왁 안에 가득 찬 것은 해산물이 뿐만이 아니다. 질긴 삶의 에너지가 담겨져 있다. 

인근의 ‘아끈다랑쉬(작은다랑쉬)오름’에도 올랐다. 다랑쉬오름 동남쪽에 이웃해 있다. 멀리서 보면 야구장처럼 보이며 높이가 낮아 가족단위의 소풍으로 오기 제격일 듯하다. 

들판에 불룩 솟았으되, 바람이 빠진 것처럼 윗부분이 평평한 아끈다랑쉬 오름 정상에 올랐다. 밑으로 땅 모양새에 따라 구획한 밭의 경계와 주변 오름 그리고 마을의 전경이 한 눈에 펼쳐진다. 사진/ 이혜진 기자

정상(198m)에 오르는 데는 걸어서 10분이면 충분했다. 정상에선 동쪽 제주의 진경이 한 눈에 펼쳐졌다. 땅의 모양에 따라 구획한 밭의 경계와 다랑쉬오름을 비롯한 주변 오름들, 그리고 마을의 전경이 보인다. 이날 내린 장맛비만 아니면 푸른 바다까지 눈에 담을 수 있을 듯 했다. 

아쉬운 점은 또 있었다. 아직 여름이라 가을에 피는 억새풀은 보지 못했기 때문. 봄이면 이곳 오름 앞엔 유채꽃이 흐드러지게 핀다고 한다. 사진촬영을 위해 키운 유채와 달리 자연스럽게 조성한 것으로 전해졌다. 억새도, 유채꽃도 없는 이날 오름의 모습은 그저 섬 처녀처럼 수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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