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로 떠나는 시간여행....반석 위에 도시 ‘페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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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로 떠나는 시간여행....반석 위에 도시 ‘페트라’
  • 최승언 기자
  • 승인 2016.11.15 1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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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애급 모세 가나안 가던 길... 갈라진 바위 길따라 ‘송수로’
이집트, 아라비아, 페니키아 대상들이 지나던 페트라는 협착한 골짜기를 따라서 극장, 목욕탕, 상수도 시설을 갖추며 현대 도시 못지않은 도시로 발전했다. 사진 출처/ 트래블바이크뉴스 DB

[트래블바이크뉴스=최승언 기자] 1812년 스위스 탐험가 부르크하르트가 사막 가운데 묻혀 있던 페트라라는 도시를 발견했다.

그는 여행기를 통해 사막 속에  수세기 동안 잠자던 바위 도시를 세상 밖으로 내보냈다. 페트라는 이집트의 피라미드처럼 고대 7대 불가사의란 이름을 얻으며 1985년에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페트라는 그리스어로 '바위'이고 셀라는 히브리어로 '바위'라는 뜻이다. 페트라가 있는 요르단 중남부 지역은 BC 1400~1200년 경 성경에 기록된 에돔과 모압의 접경이었다. 애굽을 탈출해 가나안 땅으로 향하던 모세와 히브리인들이 이용했던 통로로 알려지고 있다.

페트라는 106년에는 로마에 점령당한 후 6세기경 발생한 지진에 의해 도시 전체가 폐허화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사진 출처/ 트래블바이크뉴스 DB

그 후 이곳에 산악도시를 건설한 민족은 나바테아인이었다. 나바테아인은 BC 7세기부터 BC 2세기경까지 시리아와 아라비아반도 등지에서 활약했던 유목민이다.

모래땅 한 가운데 반석 위 도시를 건설해 정착지로 삼고 이 무역로를 확보함으로써 번영을 누렸다. 이집트, 아라비아, 페니키아 대상들이 지나던 이 교역로는 협착한 골짜기를 따라서 극장, 목욕탕, 상수도 시설을 갖추며 현대 도시 못지않은 도시로 발전했다.

바위산을 깎아 조성된 건물들은 완벽한 조화와 균형미를 갖추었다. 지진을 겪고도 끄떡없이 남아 있는 이유는 통바위를 파고 들어간 건축방식에 있다. 화강암처럼 단단하지 않아 파기가 쉽다고는 하지만 바위산을 파고 도시는 불가사의임에 틀림이 없다.

알카즈네와 모자이크. 시크협곡의 끝 지점에서 좁은 입구를 통해 보물창고를 만난 여행자는 탄성을 자아내게 된다.사진 출처/ 페트라관광청

페트라는 106년에는 로마에 점령당한 후 6세기경 발생한 지진에 의해 도시 전체가 폐허화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과거에는 페트라로 가는 접근로들이 있었다.

남쪽에서 접근하는 길은 아론 산을 둘러 페트라 평원을 지나는 길이었다. 또 하나의 길은 북쪽의 고원에서 접근하는 방법이었다.

스티븐 스필버그의 영화 ‘인디아나 존스 마지막 성배’의 로케이션으로 알려지면서 유럽여행자들이 많이 찾는 여행지가 되었다. 여행자들은 동쪽에서 시크 협곡을 따라 페트라에 진입하게 된다.

시크의 길은 약 1.2 킬로 정도로 이어지는데 빛에 따라 시시각각으로 변화하는 붉은 사암 색채가 환상적이다.사진 출처/ 페트라관광청

시크는 실제로 협곡이 아니다. 침식에 의한 물길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떤 물리적인 힘이 사암 산을 만들었고 이것이 반으로 쪼개지면서 깊고 좁은 길을 만든 것은 분명해 보인다. 나중에 간헐적으로 발생한 홍수가 협곡을 부드러운 곡선으로 만들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시크의 길은 약 1.2 킬로 정도로 이어지는데 빛에 따라 시시각각으로 변화하는 붉은 사암 색채가 환상적이다. 사암절벽 높이는 최대 150미터로 양쪽의 벽을 형성하고 있다. 시크협곡으로 난 길은 평균 3미터가 채 되지 않는다.

그러나 따뜻한 빛을 받아들이고 나무가 자랄 만큼 넓은 곳도 있다. 또 좁은 곳은 한 사람이 양쪽 벽을 양팔을 펼쳐 닿을 수 있을 정도다. 협곡을 따라 송수로의 흔적도 발견되었다. 이곳에서 물을 페트라의 중심까지 보냈을 것으로 추정되는 물길이다.

1800개의 촛불로 밝힌 협곡에서 앉은 채로 장밋빛 사암 바위벽을 조각해 만든 ‘파라오의 보물’ 알카즈나를 감상하는 페트라 바이 나이트. 사진 출처/ 페트라관광청

바위절벽에 작은 벽감들은 바위를 깎아 조성했다. 지상에서 높은 곳에 만든 이런 벽감들은 사다리를 놓고 만들었을 것으로 보인다. 시크 협곡에는 지하실도 건축되어 있다. 이 지하실이 어떤 기능을 했을 지는 확실치 않지만 페트라의 접근로에 지키는 위병소 역할을 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시크 협곡을 지나면 놀라운 유적을 마주하게 된다. 바로 알카즈네다. 시크협곡의 끝 지점에서 좁은 입구를 통해 보물창고를 만난 여행자는 탄성을 자아내게 된다. 이 보물창고는 원래는 왕의 묘로 지어졌다. 그러나 고대의 유물들을 간직하고 있어서 보물창고라는 이름을 얻었다.

한때 이 왕묘의 도굴품들이 2층의 바위창고에 속에 숨겨져 있을 것이라는 소문이 나자 현지 베두인 족들이 이 보물창고를 총으로 쏘아 보았지만 단단한 사암 덩어리라는 것을 확인했을 뿐이었다. 이 바위에는 사암 총탄 자국들이 나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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