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 캐럴 ‘고요한 밤’의 선율을 찾아…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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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마스 캐럴 ‘고요한 밤’의 선율을 찾아…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
  • 김태형 기자
  • 승인 2020.12.15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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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캐럴이 365일 살아 숨 쉬는 ‘오베른도르프’
올해의 크리스마스가 부디 즐겁고 행복한 메시지를 전해주기를 기원하며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캐럴 ‘고요한 밤’ 탄생의 순간으로 초대한다. 사진/ 오스트리아관광청
올해의 크리스마스가 부디 즐겁고 행복한 메시지를 전해주기를 기원하며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캐럴 ‘고요한 밤’ 탄생의 순간으로 초대한다. 사진/ 오스트리아관광청

[트래블바이크뉴스=김태형 기자] 코로나19의 3차 대유행의 위기 속에서도 어김없이 크리스마스가 다가오고 있다. 전 세계는 이동의 제한과 함께 경제적인 위기에 빠져 있고, 사람마다 무기력과 우울함을 호소하고 있는 가운데 맞게 되는 크리스마스다. 올해의 크리스마스가 부디 즐겁고 행복한 메시지를 전해주기를 기원하며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캐럴 ‘고요한 밤’ 탄생의 순간으로 초대한다.

잘츠부르크 근교에 위치한 오베른도르프(Oberndorf). 성 니콜라우스 교회에서 오르간을 연주하는 교사 프란츠 크사버 그루버(Franz Xaver Gruber)와 당시 성당의 신부였던 요제프 모르(Josef Mohr)가 만난다. 요제프 신부는 성당에 부임할 당시 시를 완성해 둔 것이 있었는데, 훗날 ‘고요한 밤’의 가사로 쓰이게 된다. 1년 후, 그루버가 가사에 어울리는 감동적인 멜로디를 작곡하여 1818년 12월 24일 저녁, ‘고요한 밤 거룩한 밤’을 처음으로 선보인다. 바로 세계적으로 가장 사랑받는 크리스마스 캐럴이 탄생하는 순간이다.

처음 선보인 이후로부터 200년 남짓 흐른 현재에도 오스트리아 국민에게 ‘고요한 밤 거룩한 밤’은 매우 특별한 크리스마스 캐럴이다. 사진/ 오스트리아관광청
 ‘고요한 밤 거룩한 밤’이 처음 선보인 이후로부터 200년 남짓 흐른 현재에도 오스트리아 국민에게매우 특별한 크리스마스 캐럴이다. 사진/ 오스트리아관광청

당시 나폴레옹 전쟁으로 유럽 전역이 황폐해지고 국경은 나날이 바뀌고 있었다. 오베른도르프 역시 점령국이 여러 차례 바뀌었으며 시민들은 수년간 힘든 시기를 겪고 있었다. 이런 억압적인 분위기 속에서 요제프 신부와 그루버가 선사하고 싶었던 건 작은 희망이었다.

‘고요한 밤 거룩한 밤’은 오스트리아 국경을 넘어 급속도로 퍼져 나갔다. 특별한 전달 매체가 없던 시대였지만, 노래 자체의 힘과 노래를 좋아하는 상인들 덕분이었다. 상인들은 독일에서 열리는 여러 곳에서 캐럴 공연을 펼치는가 하면, 프로이센 왕궁에 이를 전하기도 했다. 1854년, 왕궁 음악 감독이 이 곡의 악보 사본을 요청했고, 이에 그루버가 캐럴의 탄생 경위를 기록한다. 이를 통해 1818년 크리스마스이브, 오베른도르프의 역사적인 날을 자세히 확인할 수 있다.

‘고요한 밤 거룩한 밤’의 탄생지, 오르벤도르프

1818년 12월 24일에 ‘고요한 밤 거룩한 밤’이 울려 퍼진 잘츠부르크 근교에 위치한 오베른도르프의 성 니콜라우스 교회. 사진/ 오스트리아관광청
1818년 12월 24일에 ‘고요한 밤 거룩한 밤’이 울려 퍼진 잘츠부르크 근교에 위치한 오베른도르프의 성 니콜라우스 교회. 사진/ 오스트리아관광청

‘고요한 밤 거룩한 밤’을 처음으로 공연한 오르벤도르프(Oberndorf)는 잘츠부르크 시내에서 자동차를 타고 북쪽으로 30분 정도 달리면 나오는 자그마한 마을이다. 1818년 12월 24일에 ‘고요한 밤 거룩한 밤’이 울려 퍼진 성 니콜라우스 교회는 현재 ‘고요한 밤 거룩한 밤 예배당’이라는 별칭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성 니콜라우스 교회는 1798년에 지어졌지만, 1897년과 1899년 홍수로 인해 수복 불가능할 정도로 파손되었고 1906년에는 완전히 헐리기도 했다. 그 후 1930년부터 1936년까지 건물을 새로이 지었고 오늘날의 ‘고요한 밤 거룩한 밤’이 완성되었다. 교회를 허물기 전에 쓰이던 가구들은 잘 보존되어 현재까지 예배당에서 쓰이고 있다.

‘고요한 밤 거룩한 밤’의 세계적 인기와 명성은 고장 난 오르간 덕분

1818년 12월 24일, 만약 성 니콜라우스 교회에 비치된 오르간이 고장 나지 않았다면 ‘고요한 밤 거룩한 밤’은 세계적인 크리스마스 캐럴로 거듭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사진/ 오스트리아관광청
1818년 12월 24일, 만약 성 니콜라우스 교회에 비치된 오르간이 고장 나지 않았다면 ‘고요한 밤 거룩한 밤’은 세계적인 크리스마스 캐럴로 거듭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사진/ 오스트리아관광청

1818년 12월 24일, 만약 성 니콜라우스 교회에 비치된 오르간이 고장 나지 않았다면 ‘고요한 밤 거룩한 밤’은 세계적인 크리스마스 캐럴로 거듭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망가진 오르간을 수리하러 온 사람은 티롤 지역의 오르간 제작 장인인 칼 마우라허(Carl Mauracher)였다. 오베른도르프에서 ‘고요한 밤 거룩한 밤’을 처음 들은 마우라허는 악보를 들고 고향인 칠러탈(Zillertal)의 휘겐(Fügen)으로 돌아갔다. 그가 연주한 ‘고요한 밤 거룩한 밤’은 순식간에 티롤 주민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당시 티롤에는 물건을 팔러 다니면서 연주하는 유랑악단이 많이 살고 있었고 ‘고요한 밤 거룩한 밤’은 유랑악단에 의해 국경을 넘어 널리 퍼져 나갔다.

오스트리아 국민의 크리스마스 정신을 지켜온 ‘고요한 밤 거룩한 밤’

오스트리아의 크리스마스 리스 장식에는 초가 필수다. ‘어드벤트 크란츠’의 초를 하나씩 켜며 크리스마스를 기다린다. 사진/ 오스트리아관광청
오스트리아의 크리스마스 리스 장식에는 초가 필수다. ‘어드벤트 크란츠’의 초를 하나씩 켜며 크리스마스를 기다린다. 사진/ 오스트리아관광청

처음 선보인 이후로부터 200년 남짓 흐른 현재에도 오스트리아 국민에게 ‘고요한 밤 거룩한 밤’은 매우 특별한 크리스마스 캐럴이다. 강림절은 크리스마스 4주 전 일요일부터 시작된다.

4주의 일요일에는 아드벤츠크란츠(Adventskranz, 전나무로 만든 월계관 위에 네 개의 초를 장식한 것)의 양초 하나에 불을 붙이면서 크리스마스 캐럴을 부르고 쿠키를 먹는데, 그때는 ‘고요한 밤 거룩한 밤’을 부르지 않는다. 이 노랫소리를 들을 수 있는 날은 강림절 행사 중 가장 중요한 크리스마스이브 미사 시간으로 교회에 모인 사람 모두가 합창을 한다. 또 미사가 끝난 후 귀가해서 크리스마스 선물을 개봉할 때도 가족이 모여 크리스마스와 관련된 노래들을 부른 뒤, 마무리로 꼭 ‘고요한 밤 거룩한 밤’을 부른다.

단순한 크리스마스 캐럴이라는 타이틀을 넘어 오스트리아 국민의 크리스마스 정신을 지켜온 ‘고요한 밤 거룩한 밤’ 올 크리스마스에는 독일 원어로 부르면서 그 울림을 가슴 깊이 새겨보자.

‘고요한 밤 거룩한 밤’의 역사를 짚어보는 유서 깊은 지역

잘츠부르크 할라인의 켈텐 박물관에는 [유명한 ‘고요한 밤 거룩한 밤’이 만들어진 진짜 이유]라는 제목의 서적이 보관되어 있다. 사진/ 오스트리아관광청
잘츠부르크 할라인의 켈텐 박물관에는 [유명한 ‘고요한 밤 거룩한 밤’이 만들어진 진짜 이유]라는 제목의 서적이 보관되어 있다. 사진/ 오스트리아관광청

‘고요한 밤 거룩한 밤’의 유래를 찾을 수 있는 지역은 아른스도르프(Arnsdorf), 할라인(Hallein), 마리아파르(Mariapfarr), 오베른도르프(Oberndorf), 잘츠부르크(Salzburg), 바그라인(Wagrain), 휘겐(Fügen) 등 잘츠부르크주와 티롤주, 오버외스터라이히주까지 널리 퍼져 있다. 특히, 고요한 밤 박물관은 오베른도르프에 위치해 있으며, ‘고요한 밤 거룩한 밤’의 보급과 발전의 역사를 주로 다루고 있다.

할라인의 켈텐 박물관 (Kelten Museum)에는 [유명한 ‘고요한 밤 거룩한 밤’이 만들어진 진짜 이유]라는 제목의 서적이 잘츠부르크 할라인에 위치한 켈텐 박물관 내 ‘고요한 밤 거룩한 밤 공문서관’에 보관되어 있다. 곡이 탄생한 밤에 관해 프란츠 그루버가 직접 적은 증언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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