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 빌딩 숲 사이, 솔숲 울창한 ‘선정릉’ 거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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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 빌딩 숲 사이, 솔숲 울창한 ‘선정릉’ 거닐다
  • 이혜진 기자
  • 승인 2019.07.24 1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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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심 속 세계유산 선릉과 정릉
강남에도 왕릉이 있다. 성종의 능인 선릉과 정현왕후의 능, 중종의 능인 정릉이 모인 선정릉이 그 주인공. 다만 능과 주변을 둘러싼 석상의 모양이 데칼코마니처럼 매우 유사해 위치와 크기, 표식으로 구별해야 한다. 사진/ 이혜진 기자

[트래블바이크뉴스=이혜진 기자] 바람이 무심하게 숲길을 스쳤다. 강남 한복판에서 솔숲 울창한 왕릉을 걸으니 푸른 숨이 나왔다. 고층 빌딩 사이에서 공기 청정기 역할을 하는 이곳은 마치 뉴욕의 센트럴 파크 같다. 23일 오후 삼성동에 위치한 선정릉(사적 제199호)에 갔다.

선정릉의 산책 코스는 입구에서 시계 방향으로 돌면서 성종~정현왕후~중종을 순서대로 만나는 게 일반적이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인 선정릉의 이름은 선릉과 정릉을 합쳐 만들어졌다. 선릉은 조선 제9대 왕(1457~1494)인 성종과 그의 세 번째 왕비인 정현왕후(1462~1530)를, 정릉은 제11대 왕인 중종(1488~1544)을 모신 곳이다. 쉽게 말해 선정릉은 왕과 왕비의 무덤이다. 

23일 오후 선정릉에 갔다. 선정릉의 기능은 다양하다. 학생들에게는 역사체험 장소, 주민에게는 산소 같은 휴식을 제공하는 산책 장소다. 매표소를 지나 능 안으로 들어서면 자연과 역사의 향기에 취하게 된다. 사진/ 이혜진 기자

하지만 선정릉엔 이들의 유해가 없다. 임진왜란 때 왜군이 이곳의 무덤을 도굴하고 관을 불태웠기 때문. 나중에 중종의 시신을 찾았다는 말이 나왔지만, 결국 사실이 아니라는 결론이 났다. 지금 선릉엔 선종의 옷을 태운 재가 안장되어 있을 뿐이다. 

성종은 20여년에 걸쳐 조선을 대표하는 법전인 <경국대전>과 <여지승람> <동국통감> <동문선> <악학궤범> 등을 편찬했다. 조선 전기의 문물제도를 완성하려 했던 것이다. 정치적으로는 훈구파와 사림파 두 세력의 균형을 맞춘 왕으로 기록됐다. 그러나 사적으로는 폐비 윤씨 사건, 어우동 스캔들 등 여성 편력으로 자자했다. 아들인 연산군 폐위 사건은 현대 사극의 단골 소재다.

선정릉 안에 있는 정현왕후의 능. 선릉과의 차이는 묘 아래에 묘를 감싼 석조물이 없다는 것과 뒤로 호텔 건물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 정도다. 크기도 다르지만 두 묘가 가까이에 나란히 있지 않아 구별이 어렵다. 사진/ 이혜진 기자

성종을 만난 뒤 작은 언덕을 올랐다. 그러자 굽은 소나무숲 사이로 정현왕후가 잠든 능이 나왔다. 두 능이 만나는 곳 사이엔 벤치가 적당한 거리를 두고 놓여 있다. 숲, 맨땅, 솔바람 그리고 고요. 낮잠 한 숨 자기 좋은 조건이다. 

정현왕후와 헤어져 언덕을 넘으니 정릉이 나왔다. 태조의 두 번째 왕비 신덕왕후가 묻힌 서울 성북구의 정릉과 음이 같으나 한자는 다르다. 

선정릉의 T자 모양 돌길엔 왼쪽에 살짝 솟은 부분이 있다. 이는 신로라고 해서 영혼들이 걷는 길이다. 오른쪽은 제사를 지내는 왕이 걷는 길이다. 비록 옛 예법이지만 가급적 밟지 않아야 한다. 사진/ 이혜진 기자

중종은 원래 장경왕후가 잠든 경기도 고양시 희릉에 묻혀있었다. 하지만 중종과 묻히고 싶어 했던 셋째부인 문정왕후가 봉은사 주지 보우와 의논해 현재의 자리로 옮겼다. 그러나 당시 이곳은 지대가 낮아 매년 여름 홍수 때마다 강물이 능 앞에까지 들어왔다. 재실(제사를 지내기 위해 지은 건물)의 침수도 잦았다. 결국 문정왕후는 서울시 노원구에 위치한 태릉에 홀로 잠들었다. 

선정릉을 걸을 땐 한 가지 주의할 점이 있다. 선정릉엔 ‘丁(정)’자 모양을 하고 있어 ‘정자각’이라고 불리는 제향 공간이 있다. 그리고 이 정자 모양의 돌길 왼쪽엔 살짝 솟은 부분이 있다. 걸려 넘어지지 말라는 얘기가 아니다. 이곳은 예부터 ‘신로’라고 해서 영혼들이 걷는 길로 알려져 있다. 또 오른쪽은 제사를 지내는 왕이 걷는 길이라고 전해진다. 물론 옛 예법일 뿐이다. 하지만 밟지 않는 것이 이곳을 관람하는 매너다.

선정릉에 벤치가 놓여 있다. 이곳엔 숲과 솔바람 그리고 고요가 있어 도심 속 휴식을 즐기기에 더없이 적합한 공간이다. 사진/ 이혜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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