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낭창낭창한 향토시인, 최영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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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낭창낭창한 향토시인, 최영욱
  • 조용식 기자
  • 승인 2015.09.23 0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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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사리 들판과 최참판댁의 모델 '토지'길을 만나다

[트래블바이크뉴스] 낭창낭창한 시인 최영욱. 지난 19일 경상남도 하동군 악양면 평사리 최참판댁에서 '명사와 함께하는 지역 이야기'의 주인공 향토시인 최영욱을 만났다.

박경리 대하소설 '토지'를 심층 깊게 읽었던 때가 40대 초반이었다는 최영욱 시인. 그와 박경리 선생의 인연은 15년 전부터 시작됐다. 박경리 문학의 정수, 소설 '토지'가 숨 쉬는 곳, 하동 평사리문학관 관장이기도 한 최영욱 시인.

"박경리 선생은 작가이기 전에 위대한 유기농 농부였다. 손이 작가의 손이 아니고, 농부의 손이었다."

40대 즈음에 끌린 대하소설 '토지'... 박경리 선생과의 인연이 시작되다

밝고, 명랑하며 구김살이 없는 최영욱 시인. 그를 주변 시인들은 경상도 사투리로 '낭창낭창한 시인'이라고 한다. 사진 / 조용식 기자

그가 토지를 심층 깊게 읽었을 무렵, 최참판댁이 만들어졌다. 마침 행정과 문학인 모두 최참판댁의 활용방안을 모색하고 있어서 서로 간의 궁합이 잘 맞아 떨어졌다고 회상한다. 행정은 활용방안을 찾았고, 문학인들은 이 공간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를 연구하고 있었던 것이다.

박경리 선생을 찾아 "최참판댁이 지어졌으니 '토지'를 기리는 문학제를 하고 싶다"고 했지만, 박경리 선생은 손사래를 치며 거절을 했다. 고집이 여간 센 것이 아니었다.

하지만 이대로 물러날 최영욱 시인이 아니었다. 최 시인은 그해 7번을 올라가 설득을 한 결과, 그 이듬해부터 '토지문학제'가 열리게 된 것이다.

최영욱 시인이 최참판댁에서 여행자들과 토지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모습. 사진 / 조용식 기자
황금 들녁으로 변하고 있는 '토지'길을 한 여행자가 자전거를 타고 지나가고 있다.

"한 해는 지하 서고에 물이 들었는데, 그 책을 박경리 선생이 직접 일일이 다 말리셨다. 약 170권을 말려서 준 책을 밑천 삼아 '평사리 문학관'을 만들게 됐다."

중학교 선생, 은행원, 반찬가게, 헌책방 등 다양한 직업을 하게 된 박경리 선생이 가장 행복한 시기는 '책을 한 권, 두 권 사서 들이는' 헌책방을 할 때라고. 그래서 박경리 선생의 지식 80% 이상은 남편의 서재와 헌책방을 할 때 습득을 했다고 한다.

최영욱 시인은 "그분이 살아왔던 것이 행복했다면, 과연 글을 썼겠느냐?"며 "결국, 문학은 불행을 이겨내는 가능성을 주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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