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객선 운임 할인해주는 국내 섬 여행 ‘바다로’ (4)전남 완도 ‘보길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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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객선 운임 할인해주는 국내 섬 여행 ‘바다로’ (4)전남 완도 ‘보길도’
  • 임요희 기자
  • 승인 2019.06.28 12:4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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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산 윤선도가 ‘어부사시사’ ‘오우가’를 완성한 곳! 낙서재, 세연정 등 유적 즐비해
조선 중기 학자이자 시인 고산 윤선도가 당쟁에 휩쓸려 20여년의 유배생활을 했던 전남 완도 보길도. 사진/ 한국관광공사

[트래블바이크뉴스=임요희 기자] 해양수산부의 ‘바다로’ 프로그램을 이용하면 주중에는 50%, 주말에는 20% 할인된 가격으로 여객선을 이용할 수 있다. 단 34세 이하 내외국인 청년을 대상으로 한다. 안타깝지만 중년 여행객은 다 내고 타자.

전남 완도 보길도는 워낙 유명한 섬이라 다른 설명이 필요 없을 정도이다. 조선 중기 학자이자 시인 고산 윤선도가 당쟁에 휩쓸려 20여년의 유배생활을 했던 곳으로 어쩌면 어지러운 세상을 피해 유유자적 시작과 학문에 열중할 수 있는 좋은 기회지였다.

판석보는 일종의 제방으로 세연지의 수량을 조정하는 역할을 했다. 사진/ 한국관광공사

윤선도는 이곳에서 ‘어부사시사’ ‘오우가’ 등 조선 가사문학의 대표작을 완성했다. 그가 보길도까지 흘러든 것은 우연이었다. 오랜 유배생활에 지친 윤선도는 잠시 세상과 떨어져 있고자 스스로 제주도로 향하는데 도중에 풍랑을 만나게 됐다.

풍랑을 피해 잠시 머물게 된 곳이 보길도였다. 그러나 윤선도가 누구인가. 섬의 가치를 알아버리고 정착을 결심한다. 윤선도는 보길도에 자기만의 유토피아를 건설한다. 세연정, 동천석실, 낙서재를 짓고 행복하게 지내다가 보길도에서 생을 마감한다.

보길도 동천석실은 부용동 정원유적을 한눈에 굽어 볼 수 있는 보길도 최고의 명당에 위치해 있다. 사진/ 한국관광공사

고산 윤선도는 1587년, 종3품을 지낸 윤유심의 차남으로 태어나 광해군 4년 진사시에 급제, 가뿐하게 정계에 진출한다. 천문, 지리, 문학 등 여러 분야의 천재였던 그는 왕자의 선생이었다. 잘 나가던 그였지만 집권당의 난정을 고발하다가 세 차례나 유배지를 떠돌게 된다.

보길도 동천석실은 신선이 산다는 선계 세상을 뜻하는 이름으로 부용동 정원유적을 한눈에 굽어 볼 수 있는 보길도 최고의 명당에 위치해 있다. 어른 걸음으로 20분에 불과할 만큼 도로에 면해 있건만 커다란 바위 위에 덩그마니 세워져 있어 올라가기가 쉽지 않다.

세연정 앞에는 세연지가 있어 배를 띄울 수 있었으니 상상만 해도 그림이 따로 없다. 사진/ 한국관광공사

매듭지어진 밧줄을 잡고 한발한발 올라서면 신선이 살기에는 너무 작고 수수한 정자가 등장한다. 하지만 동천석실에서 내려다 본 부용동 계곡의 탁 트인 전경은 약간의 고생 정도는 얼마든 감내할 가치가 있음을 가르쳐준다.

세연정은 계담과 방지방도 사이에 지어진 비밀정원으로 이름처럼 물에 씻은 듯 깨끗하고 단정한 느낌을 전달한다.

고산의 5대손인 윤위가 1748년 작성한 ‘보길도지’에 의하면 윤선도가 세연지에서 제자들과 함께 ‘어부사시사’를 노래하며 뱃놀이를 했다고 적혀 있다.

흑약암은 ‘펄쩍 뛸 듯한 바위’라는 뜻으로 그 형상이 큰 황소를 방불케 한다. 사진/ 한국관광공사

고산은 “하루라도 음악이 없으면 성정을 수양하며 세간의 걱정을 잊을 수 없다”며 이곳에서 춤과 연주, 노래를 즐겼다. 세연정 앞에는 세연지가 있어 배를 띄울 수 있었으니 상상만 해도 그림이 따로 없다.

세연정에는 윤선도가 직접 이름 붙인 칠암(七岩)이 있다. 돌 하나하나에도 이름을 붙이는 그의 남다른 감수성이 여행자의 발걸음을 숙연하게 만든다. 7개 바위 가운데 하나인 흑약암은 ‘뛰는 형상의 바위’라는 뜻으로 그 모습이 황소를 방불케 한다.

윤선도는 겨울에도 세연정에 나왔는데 난방을 위해 바닥을 온돌로 만든 지혜가 엿보인다. 판석보는 일종의 제방으로 세연지의 수량을 조정하는 역할을 했다. 일명 굴뚝다리라고도 불린다.

낙서재는 윤선도의 보길도 생활 시작과 끝을 함께한 곳이다. 사진/ 한국관광공사

무희들이 노닐었다는 동대와 서대 역시 세심하게 설계되었다. 특히 서대는 나선형으로 되어 있어 무희들이 춤을 추면서 이동하면 꼭대기에 닿게 되었다.

낙서재는 윤선도의 보길도 생활 시작과 끝을 함께한 곳이다. 책을 읽기 좋은 곳이란 뜻의 이름으로 윤선도가 보길도에 정착해 가장 먼저 지은 살림집이었다.

낙서재에 오르면 마을 산세와 논밭이 한눈에 들여다보인다. 낙서재에서 책 읽기를 즐겨하던 윤선도는 1671년 책에 둘러싸여 숨을 거둔다.

윤선도 유적지로 알려진 곳은 아니지만 예송리해변 역시 간과할 수 없는 경관을 간직하고 있다. 작은 고깃배가 저 멀리 바다 위를 둥둥 떠다니고 해변에는 검고 납작한 돌들이 끝도 없이 깔려 있다.

작은 고깃배가 저 멀리 바다 위를 둥둥 떠다니고 해변에는 검고 납작한 돌들이 끝도 없이 깔려 있는 예송리해변. 사진/ 한국관광공사

가끔은 윤선도도 낙서재와 세연정을 벗어나 예송리해변을 산책하며 사색에 잠기지 않았을까. 보길도를 두고 빼어난 절경을 지녔다고 하기는 어렵다. 이보다 아름다운 섬은 우리나라에 얼마든지 있다.

하지만 꼭 매력녀가 미인이 아니듯이 한 시인의 마음을 빼앗기에 보길도는 충분한 매력을 지녔다. 윤선도 스스로 가꾸고 애정을 주면서 자신의 유토피아로 만들었던 섬 보길도. 보길도의 진짜 가치는 저마다 그것을 발견하는 데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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