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속 여행지] (7)손탁 여사는 어디로 사라졌을까? 정명섭의 ‘손탁호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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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속 여행지] (7)손탁 여사는 어디로 사라졌을까? 정명섭의 ‘손탁호텔’
  • 임요희 기자
  • 승인 2018.07.19 10:1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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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탁호텔이 있던 이화학당, 고종황제의 거처였던 덕수궁을 둘러보는 정동여행
정명섭의 ‘손탁호텔’은 우리나라 근대기, 일제의 강점에 의한 아픈 역사를 배경으로 한다. 사진은 손탁호텔에 가장 근접한 모습의 배재학당. 사진/ 트래블바이크뉴스DB

[트래블바이크뉴스=임요희 기자] 정명섭의 ‘손탁호텔’은 일제강점기 우리나라 아픈 역사를 배경으로 한다. 정명섭 작가의 특기인 추리적 상상력을 바탕으로 하는 이 소설은 청소년소설이면서 역사소설이다.

이 책에서 영화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의 그림자가 느껴지는 것은 제목도 그렇지만 호텔 주인의 신변과 관련된 다양한 에피소드를 탐정극 형식으로 다루고 있어서일 것이다.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은 마담 D.의 유산을 노리는 양아들 ‘드미트리’와 그녀의 연인 ‘구스타브’ 그리고 구스타브의 수하이자 호텔 보이인 ‘제로’가 삼각축이 되어 극이 전개된다.

한편 ‘손탁호텔’은 갑자기 실종된 호텔 주인 손탁 여사를 둘러싸고 근대기 실존 인물들과 가상의 호텔보이 ‘배정근’이 중심이 되어 사건을 해결해 나간다.

'손탁호텔'은 호텔 주인의 신변과 관련된 다양한 에피소드를 탐정극 형식으로 다루고 있다. 사진은 덕수궁 옆 대한성공회 주교좌성당. 사진/ 트래블바이크뉴스DB

어느 날 손탁여사는 상해에 다녀오겠다는 쪽지만 남긴 채 연기처럼 사라진다. 때마침 손탁호텔에 ‘보이’로 취업한 소년 배정근은 알 수 없는 책임감에 여사의 행방을 찾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이화학당 학생인 이복림이 곁에서 탐정 조수 노릇을 한다.

소녀 이복림은 친일파 이완용의 질녀인바 주인공 배정근의 적이요, 보조자요, 풋사랑의 대상으로 등장하는데 그녀의 이러한 독특한 위상은 극의 흐름에 무리를 주지 않으면서 상당한 매력을 발휘한다.

청소년 도서의 특징일까. 작가는 친일대신 이완용, 반일활동가 헐버트, ‘대한매일신보’ 사장 베델의 입을 빌어 날것으로 역사 강의를 펼친다. 이건 뭔가 싶어 당황스러운 한편 슬며시 웃음이 나는 흥미진진 유쾌발랄 ‘손탁호텔’이다.

손탁여사는 상해에 다녀오겠다는 쪽지만 남긴 채 연기처럼 사라진다. 헐리기 전의 손탁호텔. 사진/ 서울시

손탁호텔(Sontag Hotel)은 1902년 대한제국 한성부 정동에 세워진 서양식 호텔로 고종이 친히 하사한 부지를 바탕으로 한다. 오늘날 이화여자고등학교 내에 자리 잡고 있었는데 지금은 깨끗하게 사라지고 표지석만 남아 있다.

2층 건물에 총 25개의 객실을 갖춘 손탁호텔의 운영자는 독일인 앙투아네트 손탁. 변변한 숙박시설이 없던 그 시절, 그녀는 이 호텔을 서울 시내에서 가장 핫한 장소로 성장시켰다. 호텔 1층에는 서울 1호 커피숍이 있어 서울에 체류하던 서양인의 아지트 역할을 하기도 했다.

손탁 여사는 한갓 호텔의 여주인이 아니었다. 사진은 기사 내용과 관계없음. 사진/ 트래블바이크뉴스DB

손탁 여사는 한갓 호텔의 여주인이 아니었다. 1885년 러시아 공사 베베르를 따라 서울을 방문한 그녀는 독일어, 프랑스어, 영어, 한국어를 능숙하게 구사하는 4개 국어 능통자였다.

대한제국 황실의 통역, 요리, 인테리어를 전담하며 황실의 신임을 얻은 그녀는 고종의 아관파천 이후 밀사 역할을 수행했으며 반일활동가 헐버트, ‘대한매일신보’ 사장 베델의 활동을 도왔다.

조선 침탈의 야욕을 품은 이토 이로부미도 이곳에 묶었으며, 러일전쟁 당시 영국 총리 윈스턴 처칠도 종군기자 신분으로 이곳에 숙박했다고 한다. 미국의 소설가 잭 런던도 종군기자로 한국을 방문했을 때 손탁호텔에 묵었다는 기록이 있다.

대한문 왼쪽, 현 던킨도너츠와 덕수궁 사잇길이 당대 공사관 거리였던 정동길 진입로이다. 사진/ 임요희 기자

한편 정동 일대는 손탁호텔이 있던 이화학당을 비롯해 고종황제의 거처였던 덕수궁, 옛 신아일보사 건물, 서울시립미술관, 이화학당, 배재학당, 정동교회, 구세군교회, 성공회교회 등 쟁쟁한 근대건축물들이 한 많은 세월을 증언하며 꿋꿋이 서 있다.

역사적 아픔은 시간의 결에 실려 희미해지고 녹음이 우거진 정동 거리는 고색창연한 빛으로 물들어 간다. 산책하기 좋은 여름밤, 외국인으로서 조선의 격변기를 살아낸 손탁 여사의 발자취를 더듬어보자.

1885년 미국 북감리교 목사인 아펜젤러가 한옥 예배실을 마련하면서 기초를 닦은 정동교회. 사진/ 트래블바이크뉴스DB

“여길 공사관거리나 외국인 거리라고 부른단다.”

황궁 시위대 참위 배유근는 손탁호텔 취업을 위해 상경한 동생 배유근에게 정동 일대를 구경시켜준다. 말하자면 정동 도보투어에 나선 것. 그가 가리키는 곳은 대한문 왼쪽, 현 던킨도너츠와 덕수궁 사잇길이다. 당대 공사관 거리였던 이곳이 바로 정동길 진입로이다. 배유근은 정동로터리에 접어들어 다시 벽돌 건물 하나를 가리킨다.

“아펜젤러 선교사가 세운 정동교회란다. 10년 전에 만들어졌을 때는 서양식 건물은 저거 하나밖에 없었는데 말이다.”

1885년 미국 북감리교 목사인 아펜젤러가 한옥 예배실을 마련하면서 기초를 닦은 정동교회는 여자 1인을 포함, 4명의 신자로 출발했다. 아펜젤러는 한옥이 있던 자리에 아치형 창이 달린 고딕풍 벽돌건물을 올렸다. 단순한 문화재가 아니라 지금까지 주일예배가 열리는 곳이다. 예배에 참여하는 교인 숫자 역시 꽤 된다.

산책하기 좋은 여름날, 외국인으로서 조선의 격변기를 살아낸 손탁 여사의 발자취를 더듬어보자. 사진/ 서울시

이어 배유근의 손가락이 정동교회보다 더 크고 긴 서양식 2층 건물을 향한다.

“스크랜턴 여사가 세운 학당이지. 저길 메인홀이라고 부른다. 저곳에서는 여자들만 교육을 받는단다.”

지금의 이화여자고등학교인 이화학당이다. 1902년 건축된 손탁호텔은 1917년 이화학당에 넘어갔다가 1922년 깨끗하게 헐린다.

손탁호텔의 쇠락은 1909년 손탁 여사가 한국을 떠나 파리행 열차에 몸을 실으면서 시작된다. 손탁 여사는 출국 전 팰리스호텔의 주인 J. 보에르에게 건물을 매각하는데 1914년 조선총독부 철도국의 직영호텔로서 64개 객실의 조선호텔(현 웨스틴조선호텔)이 완공되면서 손탁호텔은 심각한 경영난에 빠진다.

호텔로서 생명을 다한 손탁호텔은 5년가량 이화학당 여학생 기숙사로 활용되다가 이화학당 프라이홀 신축을 기해 벽돌 하나 남기지 않고 헐린다.

현 이화여자고등학교에는 이화박물관이 자리 잡고 있다. 사진/ 임요희 기자

현 이화여자고등학교 울타리 안에 이화박물관이 자리 잡고 있다. 일명 심슨기념관으로 불리는 이 건축물은 이화여자고등학교에서 가장 유서 깊은 곳으로 1915년 미국인 사라 J. 심슨의 기금이 바탕이 되었다.

전쟁 중에 붕괴되었던 것을 1961년 일단 복구했다가 2011년 사진 자료를 바탕으로 원형에 가깝게 복원하여 지금에 이르렀다.

박물관 내에는 한국 여성교육의 발상지인 이화학당의 역사와 교육자료, 이화 동창들의 기증품을 전시 중이며 유관순 열사의 교실을 재현해 놓은 유관순교실, 국내외 작가의 작품을 전시하는 갤러리를 포함하고 있다.

배재학당은 정동교회를 설립한 선교사 아펜젤러에 의해 개교했다. 사진/ 트래블바이크뉴스DB

정동을 이야기할 때 서울시립 미술관 뒤편에 있는 배재학당을 빠뜨릴 수 없다. 배재학당은 정동교회를 설립한 선교사 아펜젤러에 의해 개교했다. 한국 최초의 서양식 근대교육기관으로 설립 첫 해인 1885년부터 영어수업을 교과에 넣는 등 우리나라 교육 역사의 초석이 된 곳이다.

배재학당은 초대대통령 이승만, 시인 김소월, 국어학자 주시경, 영화감독 나도향 등 수많은 인재를 배출했다. 근대 지식의 요람이자 신문화의 기원을 이룬 배재학당 건축물은 현재 역사박물관으로 이용되고 있다.

구 대법원 건물이었던 서울시립미술관은 1920년대 건축양식을 잘 보여준다. 사진/ 임요희 기자

구 대법원 건물이었던 서울시립미술관은 1920년대 건축양식을 잘 보여준다. 서울시 소유의 이곳은 상설관 외에도 다양한 기획전을 통해 시민들에게 미술작품을 알리는 중이다.

서울시립미술관은 본관 외에 사당동 분관과 경희궁 분관을 운영 중이며, 작가의 창작 활동을 지원하는 난지창작스튜디오를 거느리고 있다. 사당동에 있는 남서울 분관의 경우 구 벨기에 영사관 건물을 리모델링한 것으로 이 역시 근대건축물로서 가치를 지닌 곳이다.

러시아공사관은 한국전쟁 중에 대부분 소실되고 현재 르네상스식 탑신만 남아 있다. 사진/ 임요희 기자

정동공원 내 구 러시아공사관은 1896년 2월, 고종이 일본을 견제하기 위한 목적으로 세자인 순종을 데리고 피신 가 있던 곳이다. 이후 대한제국 황제 고종은 일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러시아 공사관에 머무르면서 정사를 돌본다. 이를 아관파천이라 한다.

외세에 기대어 국가 권력을 유지하고자 했던 우리 역사의 부끄러운 모습을 보여주는 이 건축물은 예원학교 옆 정동공원에 위치한다.

러시아공사관은 한국전쟁 중에 대부분 소실되고 현재 르네상스식 탑신만 남아 있다. 완만한 경사길, 하얀색으로 빛나는 경비탑 일대에는 데이트 나온 커플들이 자주 눈에 띈다.

덕수궁의 별채로 1901년 황실도서관으로 사용할 목적으로 지어진 중명전. 사진/ 임요희 기자

덕수궁 뒤편에 있는 중명전은 덕수궁의 별채로 1901년 황실도서관으로 사용할 목적으로 지어졌다. 1904년 덕수궁 화재 시에는 고종의 임시 집무실 겸 외국사절을 접견하는 장소로 이용되기도 했다.

을사조약(1905)이 체결되는 등 슬픈 역사를 간직한 곳이자 1907년 고종이 헤이그에 밀사를 파견했던 기념비적인 장소다. 2007년 2월, 덕수궁의 일부로 인정받음으로 서울시유형문화재에서는 지정 해제되었다.

손탁호텔이 있던 이화학당을 비롯해 고종황제의 거처였던 덕수궁을 둘러보는 정동여행, 어때요? 사진/ 서울시

한편 서울시는 매년 봄가을 ‘정동야행’ 프로그램을 운영, 90분 탐방 코스 외에 연주회, 마임 등 다양한 야간행사를 준비해두고 있다.

특히 미국대사관저, 영국대사관저, 캐나다대사관저 등 3개 대사관을 일반인에게 개방하는 특별한 시간이 있어 예약을 통해 참여할 수 있다.

정동길은 단순히 잘 꾸며진 쾌적한 산책로가 아니다. 이국의 여성으로서 한국의 자주독립을 위해 동분서주했던 손탁 여사의 흔적이 깃든 역사적 장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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