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야문명의 유적지, 멕시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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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야문명의 유적지, 멕시코
  • 김효설
  • 승인 2014.02.03 08:5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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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야 최대의 유적지 치첸이트사에 있는 피라미드 엘 카스 티요.
마야 최대의 유적지 치첸이트사에 있는 피라미드 엘 카스 티요.

[트래블바이크뉴스=멕시코] 김효설 기자  멕시코 동남 지역의 유카탄 반도는 위대하고도 찬란한 마야 문화의 중심지로, 이 지역에 위치한 4개의 고대 마야도시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어 있다.

마야 문명은 B.C. 600년경부터 B.C. 400년경 사이에 마야 남부 지역을 중심으로 거대한 궁전, 풍부하고 세밀한 벽화, 의식을 위한 제단, 도시 등을 건설했다. 또한, 고대 마야 문명은 뛰어난 수학을 바탕으로 오늘날에도 거의 완벽한 기능의 달력 체계를 갖추고 있는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5,125년을 주기로 하는 '마야 장기 달력'20121221일을 한 주기가 끝나고 새로운 번영의 시대가 시작되는 시점으로 예측하여, 세간의 관심을 끌고 있다.

마야 문명의 대표적인 유적지, 치첸이트사

세계7대 신 불가사의 중 하나라는 마야 유적지, 치첸이트사(Chichen Itza)는 후고전기에 가장 중요한 도시였다. AD 550년부터 이트사 족에 의해 건설된 치첸이트사는 유카탄 반도 중부에 있다.

유카탄 반도와 금이 대거로 발견된 중미남부지역을 관리했으며, 유카탄 북부지역에 있는 대부분의 도시들을 지배했다. 800년경 북쪽의 톨텍 족으로부터 공격을 받은바 있으며, 1200년경부터 쇠퇴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세노테는 스페인 정복 시대에도 여전히 순례지로 존속했으며, 1988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됐다.

치첸이트사건축물들은 천문학적 지식과 건축 기술이 조화를 이루는 마야 문명의 정수라 할 수 있다.

치첸이트사는 마야 족의 한 부족인 이트사 족의
"샘물(세노테)곁의 집"이라는 뜻으로 5세기 마야인 이트사 족이 살다 7세기 홀연히 사라지고 300년 뒤 다시 돌아왔는데 그때의 부족장은 '캐찰 새의 깃털 달린 뱀'의 신비한 모습으로 부족들 사이에 신으로 추앙 받았다.

그러다가 북부 아나우악 고원 지역에 톨텍 문명을 이루고 살던 톨텍 인들이 들어와 함께 정착 마야유적 위에 건축물 세우고 복합문화를 이루고 살았다. 13세기 중반 알 수 없는 이유로 폐허가 되고 1533년 에스파냐 정복자들에 의해 밀림 속에 숨어있던 유적이 발굴되었다.

치첸이트사는 천문학적 지식과 건축 기술이 한데 맞물린 마야 문명의 정수라고 한다. 쿠쿨칸의 피라마드는 9세기 초에 완성되었으며, 바닥의 둘레가 55m, 높이가 23m인 피라미드형 신전이다. 피라미드 정면에서 박수를 치면 마치 동물 울음소리 같은 반향을 들을 수 있다고 한다.

이 피라마드는 웅장한 건축물보다도 피라미드 자체가 달력으로 유명하다. 각각 91개로 되어 있는 4면의 계단에 정상의 1개 계단을 더하면 총 365개로서 1년의 날수를 의미한다고. 춘분과 추분이 되면 북쪽 계단에 드리워진 그림자가 마치 구불거리며 내려오는 뱀의 모습처럼 보인다고 한다.

때문에 마야 시대에는 그 시기에 맞춰 대규모의 제사 의식이 있었는데, 오늘날 축제로 재현되고 있다. 이날은 전 세계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이런 현상을 보기 위해 찾아온다.

멕시코의 유카탄 반도에 위치해 있는 툴룸은 유적지와 바다의 환상적인 조화를 이루는 마야의 유적지다.

카리브 해의 에메랄드 빛 바다가 펼쳐지는 마야 유적지 툴룸

멕시코의 아름다운 카리브 해안의 또 다른 마야 유적지 툴룸(Tulum)은 플라야 델 카르멘에서 1시간, 칸쿤에서 2시간이면 도착할 수 있는 곳으로 근처의 천연 워터파크인 셀하 등과 연계해서 여행사 투어로도 쉽게 갈수 있는 곳이다.

툴룸 유적지는 멕시코 코즈멜의 유카탄 반도에 위치한 마야문명 유적지 중의 한 곳이다. 툴룸은 마야어로 '', 또는 '폐쇄'를 뜻하는데, 벽으로 둘러싸인 마야의 작은 문명도시라는 특색을 그대로 표현하고 있다.

정글에 위치한 다른 마야 유적지와 달리 툴룸은 아름다운 카리브 해의 에메랄드 빛 바다를 볼 수 있는 독특한 유적지이다. 이 성곽은 바다 쪽을 제외한 3면이 5미터 두께의 돌벽으로 자 모양으로 둘러싸여 있고 입구의 문이 5개이다. 이 성곽은 다른 부족의 침입을 막기 위한 벽이기도 하고 캐리비안에 자주 출몰했던 해적을 막는 역할을 했다고 한다.

툴룸은 캐리비안의 무역항으로써 중요한 역할을 하고 학문도 매우 발달한 곳이었다. 툴룸의 뛰어난 수학과 천문학 등을 배우기 위해 캐리비안의 여러 왕국에서 툴룸으로 유학을 오는 경우도 많았다고 하니 경제와 문화가 발달했던 고대 도시의 모습이 어땠을지 궁금해진다.

채색 전사들의 도시, 회화의 신전으로 유명한 보남팍

보남팍(Bonampak)은 고대 마야 유적으로 야슈칠란 유적지의 남부, 우수마신타 강의 지류인 리오라사나 강 계곡에 위치해 있다. ’채색한 벽을 뜻하는 이름의 이 작은 유적지는 학자들에 따르면 야수칠란과 연관되는데 많은 비문이 보여주듯 두 도시는 고전기 초에 전성기였다.

한 비문의 내용에 따르면 두 도시는 746년 동맹을 맺은 것으로 돼 있다. 보남팍은 놀랄 만큼의 건축물 규모를 자랑하고 있지는 않지만 수많은 벽화들 특히 ‘Structure 1(The Temple of the Murals)’로 유명하다.

The Temple of the Murals의 세 개의 방의 벽을 뒤덮고 있는 벽화들은 8세기 마야 왕실의 생활과 전쟁의례를 보여주고 있다. 고전기 초(AD 580~800)부터 이 지역에 건축이 시작된 것으로 보여진다.

’채색한 벽’을 뜻하는 보남팍은 고대 마야 유적지로 야슈칠란 유적지의 남부, 리오라사나 강 계곡에 위치해 있다.

보남팍은 인근에 위치한 피에드라스 네그라스로 부터 지배를 받은바 있으며, ‘회화의 신전으로 유명하다. 회화의 신전 내부에 있는 인접한 세 방에는 탁월한 예술적 재능을 발휘해 역사적 장면들을 채색 프레스코 화법으로 그린 치장벽토 벽과 천장이 있다.

1호실 벽화들은 전쟁 준비 의식들을 중심테마로 다루고 있는데 왕이 귀부인, 신하, 악사들의 대규모 집단에 둘러 싸여 있다. 2호실 벽화들은 피비린내 나는 전투 끝에 거둔 승리라는 테마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벽화에서는 승리한 지배자가 많은 시종들을 거느리고 있다. 벽화들은 790년경 일어난 실제 사건을 기록한 것으로 승리의 순간에 묘사된 지배자는 찬무안일 수도 있다. 3호실에는 이 역사의 순간을 마무리하는 벽화들이 있다.

찬 무안이 호화로운 행사에서 가족과 신하들과 함께 승리를 축하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 제전은 신에게 인간을 산 제물로 바치는 희생제롤 포함하고 있다. 원래 건물을 정확하게 재현한 건물은 멕시코시티의 인류학 박물관과 미국 게인즈 빌의 플로리다 주립 박물관에서 볼 수 있다.

마야 고전기 후기의 건축적 균형미의 걸작, 욱스말

욱스말(Uxmal)은 유카탄 반도 북부 푸크 지방에 있는 마야 고전기 후기의 고대도시다. 욱스말은 마야 건축의 걸작으로 꼽힌다. 욱스말은 중앙 저지대의 많은 도시가 쇠퇴하기 시작한 고전기 말에 절정기에 도달했다.

팔렌케, 티칼, 코판 등 강력한 마야 도시국가들이 점차 황폐화될 때 북부 유카탄의 낮은 구릉지대인 푸욱에서는 또 다른 마야 중심지들이 번성했다. 욱스말은 푸욱 지역에서 정치적, 경제적으로 가장 크게 발전한 중심지이자 가장 잘 보존된 유적지이다.

농경지대의 중심지로서 교역이 발달했고 정치·경제의 중심지가 되었으나 12세기부터 쇠퇴하기 시작한다. 1996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됐다

멕시코의 고대도시 욱스말은 후기 고전주의 시기 건축양식인 푸크 양식으로 건설된 도시 중 가장 대표적인 곳이다.

욱스말 건축은 보통 광장이나 큰 안마당을 에워싸고 많은 방이 배치되는 긴 직사각형 평면을 갖기 때문에 사변형
()이라는 용어가 흔히 사용된다.

사변형 수녀원은 큰 안마당을 에워싸고 수많은 방이 배치된 것이 수녀원을 닮았기 때문에 붙은 이름이다. 가장 유명한 건물들은 거북의 집, 사변형 수녀원과 더 앞선 시기의 육중한 기단 위에 세운 총독의 궁전이다. 궁전의 중앙 출입구에서 바라보면 몇 마일 떨어져 있는 피라미드 꼭대기로 금성이 떠오르는 것을 볼 수 있다.

욱수말에는 고전기 마야 문화 전통의 일부인 피라미드 단지와 공놀이 운동장 이 있다. 하지만 가장 놀라운 신전은 타원형 기단에 쌓은 대 피라미드다. 이런 유형으로는 하나뿐인 이 건축은 마법사의 피라미드로도 알려져 있다. 욱스말은 장대하고 엄숙한 정글도시들과는 완전히 다른 세계를 이룬다.

푸욱 양식의 화려함은 욱스말에서 절정기에 이른다. 푸욱 양식의 전형적인 특징은 격자 무늬, 마름모꼴 무늬, 양식화된 동물, 정교한 직물 같은 프리즈를 형성하는 반기둥 모티프들을 돌조각으로 모자이크해 건물 파사드의 상부를 덮는다는 점이다. 코르벨 기법으로 만든 천장과 정사각형 주두를 가진 원기둥이 이 시기 건축의 또 다른 특징이다.

정글 속 신비로운 고대 마야유적지, 팔렌케

팔렌케(Palenque)는 불과 250년 전 스페인 선교사에 의해 발견되기 전까지 800년 가까운 세월 동안을 세상에서 잊혀진 채, 정글 속에서 잠들어 있던 고대 마야의 유적도시이다. 유적 내부로 들어서니 정글 속 고대 마야 유적이 비로소 그 신비스러운 모습을 드러낸다.

전성기 당시 이곳에는 15만평의 공간에 500개 이상의 건축물을 보유하고 있는 거대 도시였다고 한다. 하지만 현재 복원되어 있는 건물들이 많지 않아서 당시의 규모를 짐작하기는 쉽지 않다.

팔렌케는 800년 가까운 세월동안을 세상에서 잊혀진 채, 정글 속에서 잠들어 있던 고대 마야의 유적도시이다.

초입에서부터 웅장하게 우뚝 솟아 있는 피라미드가 이방인을 맞아준다
. 팔렌께 유적의 대표 피라미드인 '비문의 신전'은 신전의 내벽 대리석에 마야 문자가 빽빽이 새겨져 있어서 붙여진 이름이다.

팔렌케의 가장 오래된 건물들은 마야어로 방패를 뜻하는 이름을 지닌 파칼 왕의 명령으로 세워졌다. 파칼은 615년에서 683년까지 오랫동안 팔렌케를 지배했고 신전의 가장 오래된 곳들은 이 시기에 세워졌다.

팔렌케의 건축 및 조각 스타일은 마야 예술을 대표한다. 신전은 거대한 기단 위에 안마당들을 에워싸고 수많은 건물이 군집한 건축 단지였으며 내부에 다른 건물 두 채가 있었다. ‘신전이란 이름은 왕족의 집을 암시하지만 종교적, 문화적 의례용 건물이었다.

궁전 위로 솟은 거대한 4층 탑은 망루나 천문대였을 것이다. 신전 부근에 팔렌케에서 가장 인상적인 건축물인 비문의 신전이 있다. 비문의 신전은 건축적 아름다움 이상으로 중요하다.

멕시코의 고고학자 알베르토 루스는 이 신전 안에 숨겨진 큰 비밀을 발견했다. 피라미드 꼭대기 신전 바닥에 기단 아래로 이어진 긴 계단의 입구가 석판으로 감춰져 있던 것을 발견한 것이다. 신전 지하에는 높은 코르벨 천장을 갖춘 큰 지하실이 있다.

이 지하 방 안에는 큰 석판이 덮인 통돌 석관이 놓여 있다. 5톤이 넘는 석관은 부조와 비문들로 장식돼 있다. 석관에는 파칼 왕과 막대한 부장품이 함께 묻혀 있다.

팔렌케가 마야세계에서 주요 도시국가로 여겨질 수 있었던 것은 건축술과 마야 지역뿐 아니라 메소 아메리카까지 뻗어나간 어마어마한 무역 네트워크 때문일 것이다. 고대 팔렌케는 620에이커가 넘는 대지에 200개가 넘는 건물을 가지고 있었다.

사진/자료제공:Pictures by Ricardo Espinosa Orozco (REO)/Banco de imagenes, CP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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