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래블바이크뉴스] 김현성 내가 아시시를 찾은 이유는 간단하다. 중세 화가 조토가 그린 28점의 벽화를 보기 위해서다.
한국에서 아무리 큰 규모로 전시회를 열어도 성당 벽화를 떼어올 수는 없을 것이고, 이곳에 오지 않는 이상 역사상 가장 위대한 화가의 한 명인 조토의 벽화를 볼 수 있는 방법은 없는 것이다.
역사 상 가장 위대한 화가들 중 한 명인 조토의 작품을 찾아서
중세의 수도원이라고 하면 어딘가 투박하고 으스스한 느낌이 들 거라 생각했는데, 직접 보니 심플하고 고급스러웠다.
드디어 조우한 조토의 그림
한 시간 넘게 성당 안을 헤매다 그곳의 동양인 신부님에게 도움을 청한다.
“조토의 그림은 어디에 있나요?”
신부님은 유창한 이탈리아어로 계속 천장을 가리키며 업, 업, 하고 말했다. 천장이라는 건가? 고개를 들어보지만 눈에 익은 그림이 아니다.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돌아서는데 위쪽으로 이어진 계단이 보였다.
성 프란체스코 성당은 ‘아래 바실리카’와 ‘위 바실리카’로 나뉘어 있다. (지하에는 성 프란체스코의 무덤이 보존돼 있다. 그곳에서 사진을 찍는 사람은 없다. 모두들 경건하게 예를 갖춘다.) 업, 업, 하고 말했던 신부의 말은 Upper Basilica를 뜻하는 것이었다. 바로 그곳에 지오토의 벽화가 있다. (유레카!)
위층 바실리카는 벽화의 보존 문제로 사진을 찍는 것이 완전히 금지되어 있다. 거기서 사진기를 꺼내면 나라 망신이다. 나는 팸플릿을 구입해 설명을 읽으며 조토가 성 프란체스코의 생애에 대해 그린 28개의 벽화를 천천히 감상했다.
벽화는 감동적이다. 조토가 기술적으로, 인문학적으로 엄격한 훈련과 교육을 통해 완성된 화가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여기서는 길게 이야기할 수 없으니 간단히 두 가지 생각에 대해서만 언급하고 싶다.
하나는 조토의 그림만 본다면 적어도 성화에 있어서는 원근법의 발명은 큰 의미가 없는지도 모르겠다는 것이고(그만큼 성서의 메시지와 교훈을 전하는데 조금의 부족함도 없다.), 또 하나는 조토의 그림 속에 이미 르네상스의 이념이 싹트고 있던 것이 아닌가 하는 것이다.
조토는 예술사의 암흑기인 중세에 미술이란 단어를 새롭게 부활시킨 인물로 일컬어진다. 성 프란체스코의 교리는 조토의 회화의 이념적 바탕이었고, 그런 의미에서 이곳에 조토의 벽화가 그려진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인 듯싶다.
로마 시대 이래로 많은 세력들이 이곳을 점령하기 위해 전쟁을 벌였다. 이 작은 마을에는 그러한 세월을 견뎌낸 흔적들이 곳곳에 남아 있다.
언젠가 다시 아시시에 오게 된다면 그때는 조토의 그림을 보기 위해서만은 아닐 것이다. 언덕 아래 펼쳐지는 평온한 자연경관과 수도원의 적요한 거리를 걷는 것만으로 신의 축복을 받은 것처럼 마음이 치유되는 것을 느꼈다.
내게 아시시는 온갖 화려한 볼거리로 가득한 유럽여행의 가운데에 진정 특별한 휴식을 경험하게 해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