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로베니아 류블랴나, 사랑의 도시에서 보낸 한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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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로베니아 류블랴나, 사랑의 도시에서 보낸 한 때
  • 임요희 기자
  • 승인 2016.06.15 15:4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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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어 슬로베니아' 김이듬 시인과 함께 떠나는 류블랴나 여행
수도인 류블라냐는 슬로베니아어로 ‘사랑스럽다’는 말이다. 국가 이름도, 수도 이름도 사랑 빼놓고는 말하지 못하는 나라가 세상에 또 있을까. 사진 출처/ 슬로베니아관광청 인스타그램

[트래블바이크뉴스=임요희 기자] 슬로베니아(Slovenia)를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건 나라 이름에 ‘love’가 들어간 유일한 국가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알프스 산지 동쪽 산록에 자리 잡은 슬로베니아는 서쪽으로는 이탈리아, 오스트리아와 닿아 있고 남쪽으로는 아드리아해를 끼고 있다. 헷갈리기 쉽지만 내륙 깊숙이 자리 잡은 슬로바키아와는 전혀 다른 나라다.

류블라냐 전경. 김이듬시인은 성의 작은 광장에 앉아 햇살 아래 고개를 들고 망루를 바라보는 것을 참 좋아했다. 사진 출처/ 슬로베니아관광청

여행 좀 했다고 하는 사람들이 꼽는 세계 최고의 여행지가 바로 ‘슬로베니아’라면 이 글을 읽는 사람들은 의아해 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는 거짓도 과장도 아니다. 슬로베니아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산과 바다를 가진 나라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사람들이 슬로베니아를 최고의 여행지로 꼽는 것은 아니다. 어쩌면 슬로베니아는 여행지라기보다는 눌러 앉고 싶은 나라라고 하는 게 옳을지도 모른다. 화사한 미소의 완벽한 미인보다는 우수 어린 눈빛의 수수한 미인에게 더 정이 가는 것처럼.

슬로베니아의 매력을 그늘이라고 불러도 좋고, 허무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슬로베니아는 부정할 수 없는 아름다움을 지녔다. 그러나 나 하나쯤 스며 들어도 어쩐지 폐가 안 될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류블라냐 어디서나 보이는 류블라냐 성은 여행자들에게는 필수 관광코스지만 지역민에게는 매력적인 산책코스다. 사진 제공/ 로고폴리스

“27번 버스를 타고 종점까지 가본다. 한국 버스의 두 배 정도 긴 버스 뒷자리 창가에 앉아 무심히 창밖을 보면 목적지도 목표도 없이 흘러가는 바람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내 심연에 존재하는 대책 없는 낙천성과 어디서 왔는지 알 수 없는 가볍고 허무한 감정이 어우러져 아득한 생을 관조하게 된다고 할까?”

- 김이듬 저 ‘디어 슬로베니아’(2016, 로고폴리스) 중에서

그녀가 애용하던 보트 바. 강변을 산책하다 들르던 곳이다. 사진 제공/ 로고폴리스

김이듬 시인은 한국예술문화위원회의 작가 레지던스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수도인 류블라냐에 92일 간 머물렀다. 현지 대학생에게 영어로 문학 강의를 하는 조건이 있었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을 만큼 게으른 시간을 보냈다.

그녀를 그렇게 만든 것은 슬로베니아였다. 강가의 작은 노천카페, 진종일 안개가 개지 않는 산책로, 짙은 라벤더 향이 감도는 온천. 그 모든 것이 그녀를 무장해제 시켰다.

슬로베니아는 아름다움만 가진 나라가 아니다. 여행자에게 ‘가볍고 허무한 감정’을 선사할 줄 아는 이 나라의 성숙함은 대체 어디서 온 걸까.

프레례센 광장에 서 있는 프레례센 동상. 그는 슬로베니아의 국민시인이다. 사진 제공/ 로고폴리스

수도인 류블라냐는 슬로베니아어로 ‘사랑스럽다’는 말이다. 국가 이름도, 수도 이름도 사랑 빼놓고는 말하지 못하는 나라가 세상에 또 있을까.

류블라냐 중심에 있는 프레셰렌 광장은 늘 사람들로 북적인다. 여느 광장처럼 누군가를 기다리거나 단체사진을 찍거나 다채로운 공연이 펼쳐지는 곳이지만 이곳을 다른 광장과 비교해서는 안 된다. 이곳은 프레셰렌 동상이 있어 특별하다.

프레례센은 슬로베니아를 대표하는 시인으로 슬로베니아인들은 그의 사망일인 2월 8일을 국경일로 정해놓았을 정도다. 이날에는 누구도 일하지 않으며 슬로베니아 전역에서는 온종일 시 낭송회와 콘서트가 열린다.

류블라냐의 명물인 용의 다리. 다리 입구에 용 조형물이 있어 많은 사람들이 약속장소로 잡곤 한다. 사진 제공/ 로고폴리스

이곳 젊은이들에게 프레례센은 사랑의 화신이기도 하다. 그의 동상은 한 건물을 바라보고 있는데 그의 시선이 닿는 곳에 일생일대의 사랑, 율리아의 집이 있다. 그녀의 집 앞에는 아름다운 율리아 상이 서 있어 여행자도 쉽게 찾을 수 있다.

류블라냐에 들른다면 늦은 밤 프레례센 광장 그의 동상 앞에서 시로 사랑을 고백하는 연인을 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

프레례센 광장에 섰다면 ‘프란체스코 수태고지 성당’을 찾아보자. 다홍과 초록의 어우러진 바로크양식의 이 건축물은 1660년에 완공되었다. 이 오래된 건물에서는 장엄함 대신 몽환적인 분위기가 느껴지는데 이는 류블랴나라는 도시의 느낌과 크게 다르지 않다.

김이듬 시인은 프레례센 광장에서 ‘류블랴나 성’까지 걸어 다녔다. 류블랴나 성벽 아래서 사랑을 속삭이는 연인들. 사진 제공/ 로고폴리스

김이듬 시인은 프레례센 광장에서 ‘류블랴나 성’까지 걸어 다녔다. 구시가지 골목길을 따라 걷다가 길모퉁이에 있는 작은 커피 바 츨레멘티나에서 왼쪽 길모퉁이에서 20분가량 올라가면 성이 나온다.

류블라냐 어디서나 보이는 류블라냐 성은 여행자들에게는 필수 관광코스지만 지역민에게는 매력적인 산책코스다. 성에는 슬로베니아의 역사를 보여주는 상설전시장이 있으며, 도서관도 있고, 기획전시관도 있다. 그녀가 가장 좋아했던 곳은 성안에 있는 작은 광장이다.

“성의 작은 광장에 앉아 햇살 아래 고개를 들고 망루를 바라보는 것을 참 좋아했다. 망루에 서서 도시를 내려다보는 사람들의 뒷모습은 왜 그리 아름답던지. 저 먼 옛날엔 적의 공격을 막아내던 탑과 화살 구멍이 난 높은 벽 위로 새가 날아가는 모습에 황홀감을 느끼기도 했다.”

류블랴나 골목을 거니는 연인들. 멀리 프란체스코 수태고지 성당이 보인다. 사진 제공/ 로고폴리스

그녀는 많은 날을 류블라냐 성에서 보냈다. 전시실을 둘러보거나 담쟁이 넝쿨 아래 벤치에서 책을 일었다. 어떤 날은 여러 갈래 길 중에서 어디로 갈까 고민하다가 노천시장 쪽으로 내려가 장을 봐오기도 했다.

저녁에는 저녁놀을 바라보는 척하며 성에서 데이트 하는 젊은 커플의 입맞춤을 훔쳐보기도 했다.

늘 긴축재정으로 살아야 했던 그녀는 마지막으로 성에 들른 날, 너무 고급스러워 바라보기만 했던 레스토랑 ‘고스틸나 나그라두’에서 식사를 했다. 강의를 하면서 인연을 맺은 류블라냐 대학 아시아학과 안드레이 베케스 교수의 배려였다.

안드레이 교수(좌)는 그녀가 귀국하여 ‘디어 슬로베니아’ 책을 내자 출판을 축하하기 위해 우리나라에 잠시 들렀다. 가운데가 김이듬 시인, 오른쪽은 한양대 도시대학원 교수인 블라쉬 크리쥬닉. 안드레이 교수의 지인이다. 서울숲에 들러 한 컷. 사진/ 임요희 기자

숙소를 제공받는 등 슬로베니아 거주 기간 동안 은혜를 입었던 이 노교수는 그녀가 귀국하여 ‘디어 슬로베니아’ 책을 내자 출판을 축하하기 위해 우리나라에 잠시 들르기도 했다. 기자도 영광의 자리에 합석하여 함께 식사를 했다는.

류블랴나 중앙역.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곳을 통해 류블랴나를 방문했을까. 사진 제공/ 로고폴리스

슬로베니아는 크로아티아, 보스니아, 코소보 등과 함께 사회주의 유고연방에 오래 묶여 있었다. 1991년 6월 27일 유고슬라비아 연방군이 독립을 막기 위해 이 나라를 침공했지만 인구의 90% 이상이 슬로베니아인으로 구성된 슬로베니아의 독립을 막을 수는 없었다.

슬로베니아의 무심한 듯 다정한 분위기 뒤에는 이런 역사적 배경이 있는지도 모르겠다.

슬로베니아는 물가가 싸다. 에스프레소 한 잔 가격이 1.1유로다. 진한 커피 한 잔과 담배 한 갑을 사는 데 5유로면 충분하다. 참고로 담배는 담배전문판매점이나 주유서 편의점에서 판다. 담배를 파는 바가 있기는 하지만 반드시 커피나 술을 주문해야 살 수 있다.

김이듬 시인, 그녀가 슬로베니아를 여행하고 온 뒤 기록을 남겼다. ‘디어 슬로베니아’(2016, 로고폴리스). 사진/ 임요희 기자

류블라냐 시내에서는 콜택시를 이용하는 게 바가지를 쓸 염려도 없고 편한데 반드시 하루 전에 불러야 하니 주의할 것.

한국에서 슬로베니아로 가기 위해서는 이스탄불을 경유해야 한다. 현재 터키항공이 발칸 전 지역 노선을 운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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