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래블바이크뉴스 =최승언기자] 네팔 남동부 테라이(Terai) 평원의 룸비니는 고타마 싯타르타가 탄생한 곳이다. 중생구제의 뜻을 펼친 싯타르타를 낳은 땅이기에 보드가야, 녹야원, 쿠쉬나가르 등과 함께 사대 불교 성지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기원전 623년 지금으로부터 2천 6백년 전 싯타르타는 왕자로 세상에 태어났다. 아버지 숫도다나 왕과 왕비 마야 부인을 부모로 둔 귀한 신분이었으나, 생로병사의 여정을 반복하는 인생의 문제를 해결하겠다며 왕자의 삶을 버렸던 인물이다.
마야부인이 룸비니에서 왕자를 출산한 것은 아기를 낳기 위해 고향 데바다하(Devadaha)으로 가던 중에 진통이 왔기 때문이다.
룸비니의 자연을 보고 감명을 받은 왕비 마야데비는 늘어진 사라수 가지를 잡고 장차 부처가 될 아이를 선 채로 낳았다.
석가모니의 탄생 장면을 묘사한 벽화를 이곳 마야데비 사원에서 만날 수 있다. 11세기에 창건된 사원은 1943년에 재건되어 오늘날의 모습으로 남았다. 이 사원에 있는 연못에서 마야부인이 출산 전 목욕을 했고 아기도 이 물에 씻었다고 알려진다.
마야데비 사원 남쪽에 푸스카르니(Puskarni) 연못이 바로 부처의 몸을 씻은 곳이다. 룸비니는 기록에 아름다운 동산으로 묘사된 지역이다.
동산이 푸르고 그늘진 사라수로 가득했다고 적고 있다. 룸비니의 자연은 그때처럼 여전히 아름답다. 아소카 석주 옆으로 올이라는 이름의 강이 남동쪽으로 흐른다. 룸비니는 오늘날에도 불교 성지 순례자들의 발길을 반긴다..
싯타르타의 열반 이후에 많은 이들이 이 성지를 순례해 왔다. 룸비니가 기원전부터 불교 성지역할을 담당했던 셈이다.
249년 독실한 불교도였던 인도 마우리아의 세 번째 통치자 아소카 왕도 이곳을 찾았다. 왕의 스승 우파굽타(Upagupta)와 함께 온 아소카 왕은 자신의 방문을 기념하기 위하여 돌기둥을 세웠다.
중국의 현장(玄奘)도 이곳을 찾았다. 삼장법사로도 알려진 현장은 손오공이 나오는 소설 서유기 에도 등장하는 고승이다. 현장은 방문한 사원과 불탑, 다른 건물들을 자세히 묘사했다.
룸비니는 이 후에도 15세기까지 불교도들이 순례하는 성지였다. 그러나 15세기 이후 룸비니에는 순례자들이 찾지 않는다. 다만 룸비니 거주민들만 마야데비 상을 힌두교의 어머니 신으로 모시며 명맥을 유지했을 뿐이다.
룸비니가 세상에 알려진 것은 독일 고고학자 포이러가 아소카 석주를 발견하면서부터이다. 1896년에 포이러 박사와 당시 팔파의 총독이던 카드가 삼셔가 아소카 석주를 발견했을 때는 이 불교 유덕은 파괴되어 폐허로 있었다.
그러나 부러진 이 돌 기둥의 발견으로 룸비니가 싯다르타가 탄생한 곳임을 밝혀냈다. 돌기둥에는 아소카왕이 재위 20년에 이곳을 찾았다는 내용이 쓰여있다.
오늘날 룸비니를 방문하는 여행자는 마우리아 왕조와 쿠샨 왕조의 동전에서부터 각종 종교 서적과 조각품을 만나게 된다.
룸비니 박물관에서는 룸비니와 석가모니 부처를 묘사한 각국 우표도 전시되어 있다. 종교, 철학, 예술, 건축에 관련한 1만 2천 권의 서적을 소장한 룸비니 국제연구소도 이곳에서 만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