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는 역사는 아주 작습니다, 유물에 얽힌 스토리를 찾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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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는 역사는 아주 작습니다, 유물에 얽힌 스토리를 찾아
  • 임요희 기자
  • 승인 2016.05.24 17:2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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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금동대향로를 따라 가는 우리 역사 기행
부여는 서기 660년 나당연합군에게 멸망하기까지 123년간 백제의 수도로서 찬란한 문화의 꽃을 피운 곳이다. 사진은 삼천궁녀가 몸을 던진 백마강. 사진 출처/ 부여군청 홈페이지

[트래블바이크뉴스] 역사는 앉아서 익히는 게 아니다. 구경하는 거다. 역사 에세이 ‘보이는 역사는 아주 작습니다’의 저자 이호석 씨는 말한다.

“동네 흔한 언덕배기 바위에도 전설 없는 곳이 없는데 금동대향로와 같은 보물에 어떻게 사연이 없을 수 있습니까?”

이호석 씨는 유물에 얽힌 사연을 낱낱이 파헤침으로 우리 유물과 독자와의 거리를 좁힌 장본인이다. 내일신문, 미디어 오늘의 기자였던 그는 역사는 과거가 아니라 진행형이라고 말한다. 유물을 단순히 대상으로 취급하기보다 살아 움직이는 스토리로 만나야 하는 이유다.

백제금동대향로가 소장된 국립부여박물관. 사진은 내부 전경. 사진 출처/ 국립부여박물관 홈페이지
비문의 글자가 닳아 없어진 충주 고구려비. 그 이유는? 사진 / 임요희 기자
비석의 돌받침이 국보가 된 단양 신라적성비. 사진 출처/ 문화재청

이에 오는 5월 28일 토요일 도서출판 ‘답’(대표: 손현욱)은 ‘보이는 역사는 아주 작습니다’의 저자 이호석 씨와 함께 ‘백제, 고구려, 신라, 고려로 떠나는 시간여행’ 기회를 마련했다.

구체적인 일정은 다음과 같다. 서울역에서 집합하여 부여의 정림사지, 국립부여박물관, 능산리사지를 돌아본 후 충주로 출발한다. 충주에서 고구려비 전시관을 탐방한 후 단양으로 출발, 신라적성비에 얽힌 스토리를 알아본 뒤 서울로 돌아온다.

서울에 도착해서는 국립중앙박물관에 전시된 경천사지석탑에 대해 알아보는 시간이 있다. 아침 7시 30분에 시작하여 저녁 7시 30분에 마치는 빡빡한 일정이다.

정임사지를 바라 보며 역사 여행 안내를 하고 있는 이호석 작가. 28일 '보이는 역사는 아주 작습니다'의 저자 이호석 씨를 포함 60여 명의 답사 인원이 부여로 출발했다. 사진/ 임요희 기자

시간여행의 첫 기착지는 부여. 부여는 서기 660년 나당연합군에게 멸망하기까지 123년간 백제의 수도로서 찬란한 문화의 꽃을 피운 곳이다.

백제의 원래 수도는 한성(위례성)이었다. 그러나 고구려 장수왕이 공격해옴에 따라 공주(웅진성)로 천도하게 되는데 여기서 더 밀려 부여(사비성)에 이른 것이다. 사비 천도를 단행한 백제 성왕은 백마강과 부소산에 둘러싸인 부여가 천혜의 요새로 백제 중흥의 기틀을 마련해 줄 것으로 기대했다.

시간이 흘러 당나라와 신라의 연합작전에 의해 부여는 적의 손에 떨어지고 백제 의자왕은 당나라에 볼모로 잡혀간다. 의자왕을 모시던 삼천궁녀는 낙화암 절벽에서 백마강으로 뛰어내렸다는 이야기.

현장에서 백제 멸망의 순간을 두 눈으로 지켜본 정림사지5층석탑. 사진 제공/ 이호석 작가

부여의 대표적인 유적은 정림사지5층석탑이다. 이호석 씨는 이 탑의 가치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정림사지5층석탑은 백제가 남긴 유일한 건축물입니다. 역사의 질곡 속에서 이 탑이 살아 남을 수 있었던 것은 소재가 돌이기 때문입니다.”

목재로 된 건축물은 전란 등을 통해 불에 타 없어지기 마련이다. 서양의 유적이 오랫동안 보존되어 온 것도 건축재료가 돌이었기 때문이다. 더 놀라운 것은 “이 탑이 바로 이 자리에서 부여가 함락 당하는 광경을 지켜보았다”는 책의 내용이다.

한 나라를 뺏고 빼앗기는 살육의 현장에 서 있었던 탑이라니!

그 말을 듣는 순간, 정림사지5층석탑이 체온과 감정을 가진 생물체처럼 느껴졌다. 듣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이럴진대 현장에서 탑과 마주하는 심정은 오죽하랴. 그래서 역사는 현장에서 보고 듣고 느껴야 한다는 것이다.

백제금동대향로는 1993년 국립부여박물관에서 부여 능산리절터를 발굴하던 도중 발견되었다. 사진 출처/ 충청남도 공식 블로그

그 다음 행선지는 백제금동대향로가 전시된 국립부여박물관이다.

백제금동대향로가 발견된 것은 비교적 최근의 일로 1993년 국립부여박물관에서 부여 능산리절터를 발굴하던 도중 발견되었다. 당시 출토에 관계했던 학자들은 깜짝 놀라고 말았는데 일찌기 이처럼 정형적으로 예술적으로 완벽한 유물이 없었기 때문이다.

백제금동대향로는 백제 장인의 기술과 예술혼을 다시 한 번 만방에 떨치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향로의 외형만큼 향로에 담긴 스토리 역시 감동적이다. 부여 함락 당시 백제 왕사의 스님들은 야차 같은 당나라 군사의 말발굽으로부터 이 보물을 지키기 위해 급히 땅을 팠다. 어떤 기록도 남기지 않았기에 이 보물은 1,500년을 땅속에서 잠을 잘 수밖에 없었다.

죽음으로써 지켰던 보물이라니 더 소중하고 가깝게 느껴질 뿐이다.

백제 왕사의 스님들은 야차 같은 당나라 군사의 말발굽으로부터 보물을 지키기 위해 향로를 땅에 묻었다. 사진 제공/ 도서출판 답
유물에 얽힌 사연을 낱낱이 파헤침으로 우리 유물과 독자와의 거리를 좁힌 역사 에세이. '보이는 역사는 아주 작습니다' 사진 제공/ 도서출판 답

충주 고구려비는 비문의 글자가 다 닳아 없어졌고 단양의 신라적성비는 비석의 돌받침이 국보가 되었다. 그 이유는 기행에 참여하면 알 수 있지만 안타깝게도 60명 정원이 찼다고 한다.

우리 유물에 담긴 스토리가 알고 싶다면 ‘보이는 역사는 아주 작습니다’를 펴자. 그리고 떠나자. 동서울터미널(강변역)에서 수시로 부여 가는 버스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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