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다리로 간다! 뚜벅이 유럽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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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다리로 간다! 뚜벅이 유럽여행
  • 임요희 기자
  • 승인 2016.04.21 18:3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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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0일간 유럽 13개국을 도보로 다녀온 이헌준 씨
아름답다고 소문난 슬로베니아 블래드 호수에서 한 컷! 사진 제공/ 이헌준

[트래블바이크뉴스] 집과 일터를 왕복하며 50년을 잘 살다가 난데없이 배낭 하나 메고 길을 떠난 남자. 이헌준(51) 씨를 만났다.

“다니던 회사가 문을 닫게 되었어요. 그 길로 비행기 표를 끊었죠.”

마치 회사가 문 닫기를 기다렸던 사람 같다. 겁도 나지 않았고 걱정도 되지 않았다. 영어를 할 줄 아는 것도 아니고 돈이 많은 것도 아니었다. 오로지 튼튼한 다리와, 미래에 대한 낙관만 갖고 떠난 여행길. 이헌준 씨가 340일간의 대장정을 마치고 지난 3월 고국의 품에 안겼다.

1년 동안 메고 다닌 30kg짜리 가방. 태극기는 잊지 않고 꽂는다! 나는야 민간 외교관. 사진 제공/ 이헌준

왜 떠났냐는 물음은 어리석다. 도보여행이 고생스럽지 않았냐는 질문에 이헌준 씨가 특유의 순박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즐거웠습니다. 터키에서 배탈 한 번 난 거 빼고 병치레 없이 건강하게 지내다 왔습니다. 현지 음식 먹는 것도 좋았고, 가는 곳마다 사람들이 환대해주어 힘들다거나 고생스럽다는 생각이 전혀 안 들었어요.”

정말 다 좋았을까. 30kg짜리 배낭을 짊어지는 일이 쉽지만은 않았을 것이다. 자전거, 오토바이, 버스, 기차 다 놔두고 그는 왜 사서 고생을 한 걸까.

자, 이제부터 산티아고 순례길 시작이다! 사진 제공/ 이헌준

“아무래도 탈것에 기대게 되면 여행에 제약이 따르잖아요. 계단을 오르기도 어렵고요. 하지만 두 발, 두 다리가 못 갈 곳은 없습니다. 고단하면 그 자리에 텐트 치고 쉬면 그만이고요.”

듣기엔 정말 쉬워 보인다. 하지만 정말 쉬운 일이 아니란 것을 안다. 도보여행이 그렇게 쉬운 거라면 왜 다들 안 떠나고 있겠는가.

“못 떠나는 거 아니겠습니까?”

실행력이 문제라는 거다. 그는 그렇게 ‘떠남’을 실행했고 이스탄불(터키까지는 그래도 비행기를 탔다!)에 도착한 뒤부터 줄곧 걸었다. 이스탄불에서 불가리아, 세르비아, 크로아티아, 슬로베니아, 이탈리아, 프랑스, 스페인에 이르기까지. 그 사이 신발 세 켤레가 닳아 없어졌다.

크로아티아 자그레브. 공연단 친구들과 함께. 사진 제공/ 이헌준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났어요. 음식을 대접하는 사람, 집에서 묵어가라고 붙잡는 사람, 자기 물건을 나누어주는 사람.”

여행 도중에 현지 언론에 실리는 일도 있었다.

“한번은 세르비아를 지나는데 누가 말을 걸더라고요. 기자라고 신분을 밝히더니 취재를 하고 싶다는 거예요. 동양인이 발칸으로 도보여행 온 거 처음 봤대요.”

그는 세르비아 어는 물론 영어 실력도 젬병이라고 했다. 과연 인터뷰가 가능했을까.

텐트 칠 곳을 찾는데 신문에서 봤다며 반갑게 인사하는 처자. 이웃집을 소개해주어 하루 신세지기도. 사진 제공/ 이헌준

“제가 아이디어를 냈죠. 당신이 페북 메신저로 질문을 보내오면 내가 구글 번역기로 해석을 해서 답글을 달겠다, 했더니 그도 좋은 생각이라며 동의했어요.”

두 사람은 주거니 받거니 문자로 대화를 나누었고 상대 나라의 언어를 전혀 할 줄 모르는 상태에서 인터뷰가 이루어졌다. 그의 기사는 온라인을 타고 발칸 전역으로 퍼졌다. 그 뒤로 길에서 알아보는 사람이 많았다. 자고 일어나니 유명인사가 되어 있었던 것.

덕분에 크로아티아에서 다시 한 번 언론에 실려야 했다고.

여러 차례 발칸 언론에 보도된 이헌준 씨. 덕분에 길에서 알아보는 사람이 아주 많았다. 사진 제공/ 이헌준

약 1년여 시간 동안 13개국을 걸은 이헌준 씨. 그만큼 많은 것을 보고 많은 일을 겪었을 텐데 어느 나라가 가장 인상 깊었을까.

“다 좋지만 크로아티아가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사람들이 워낙 친절해서 정말 마음 푸근하게 여행했어요. 그리고 불가리아는 우리나라와 지형이 아주 흡사해요. 굉장히 친숙한 느낌이었죠.”

또한 발칸 지역은 서유럽에 비할 수 없을 정도로 물가가 저렴하다고 한다.

“소고기 패티가 두툼하게 들어간 햄버거를 단돈 1,000원에 사 먹을 수 있는 곳이 세상에 어디 있겠습니까.”

세르비아의 추억을 이야기하며 그가 행복한 얼굴로 미소 짓는다.

신문에서 봤다면서 자고 가라고 청한 가족. 레스토랑에서 식사 대접까지. 사진 제공/ 이헌준

아무리 도보여행이라지만 길에서만 잘 수는 없는 일. 목욕이나 빨래를 위해 숙박시설을 이용할 때가 있는데 그것도 발칸에서는 만 원이면 해결 가능했다. 유고 연방이 해체된 지 얼마 되지 않아 아직 자본주의에 깊이 물들지 않은 탓이리라.

그에게 가장 아름다웠던 도시는 어디일까. 기자의 어리석은 질문에 그가 현명한 답을 주었다.

“제게 아름답지 않은 곳은 없습니다.”

그의 말이 맞다. 신이 만든 자연은 조화롭고, 인간이 꾸려가는 삶은 경이롭다. 중요한 것은 그런 사실을 깨달을 줄 아는 눈이다.

산티아고 순례길에 동행했던 폴란드 아주머니들과 함께. 사진 제공/ 이헌준

그의 페이스북은 여행지 사진으로 가득하다. 산과 강, 호수, 하늘, 성, 마을. 그러나 그보다 많은 것이 인물 사진이다. 길 떠나온 여행자, 카페 주인, 농부, 학생. 말이 안 통해도, 가진 것이 없어도 길에서는 쉽게 친구가 된다.

그의 도보 여정. 숙박한 곳마다 표시를 했다. 자료/ 이헌준

1년 도보여행에 비용이 얼마나 들었냐고 슬쩍 물었더니 그가 어렵지 않게 대답했다.

“1천만 원입니다.”

세상에! 항공료를 포함한 가격이 그랬다. 게다가 그 돈으로 그는 많은 것을 남기기까지 했다. 세계 각지의 친구와 소중한 기억들. 결코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 아닌가.

떠나고 싶지만 온갖 핑계가 우리의 발목을 잡는다. 정말로 자신에게 물어보자. 왜 못 떠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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