잉카 제국의 숨결이 살아 있는 페루, 리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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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카 제국의 숨결이 살아 있는 페루, 리마
  • 박민성(여행작가)
  • 승인 2016.03.15 01:1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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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민지 시대의 문화와 근대 문화 공존해
중남미의 공통적인 특징은 도시의 중심이 되는 광장의 이름이 "아르마스 광장'이라는 것. 스페인어로 "무기 광장"이라는 뜻으로. 과거 스페인 식민 시대에 스페인 사람들이 광장에서 무기를 만들거나 재정비했다고 하여 무기 광장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사진 출처/페루관광청

[트래블바이크뉴스] 나는 1988년에 서울올림픽을 보면서 굴렁쇠 굴리는 소년에게 반했을 만큼 옛날 사람인지라, 나의 대학 시절에는 부모 잘 만나 유학 가는 친구는 있어도 해외여행 가는 친구는 많지 않았다.

종종 워킹홀리데이 비자를 받아 호주나 뉴질랜드 같은 곳을 가는 친구가 있었지만 갔다 온 얘기를 들어보면 농장에서 10시간씩 브로콜리를 따거나 온종일 접시 닦는 일을 하면서 지내느라 여행다운 여행은 해보지 못했다고들 했다. 그 시절 해외여행은 참 먼 나라 얘기였다. 아, 응답하라 1990년대여!

산 마르틴 광장은 이색적인 바와 카페가 즐비해 리마 역사지구의 밤을 즐기기에 완벽한 곳이다. 사진 출처/페루관광청

여행을 떠나는 사람들이 꿈꾸는 로망 중 하나가 여행에서 만나는 극적인 사랑이나 달콤한 로맨스가 아닐까? 실제로 여행지에서 만난 사람과 사랑에 빠지는 경우는 생각보다 많다. 한국에서는 만날 수 없던 짝이 굳이 해외에서 만나지는 건 여행이 주는 판타지 때문일 것이다.

한국에서는 구질구질 해 보이던 찢어진 가방이 왠지 보헤미안 같고, 자기주장만 줄곧 내세우던 선생도 여행지에서 보면 왠지 추진력 있어 보이고, 누구나 한 번쯤은 연습해 봤다던 기타 기본코드로 불러대는 쉬운 노래들도 석양 지는 게스트하우스 옥상에서 듣다 보면 그렇게 멋질 수가 없다.

18세기에 지어진 식민시대 건축물 중 하나인 토레 타글레 궁전. 당시에는 흔치 않았던 아랍풍의 발코니가 이색적이다. 사진 출처/페루관광청

이때 알코올까지 곁들여진다면 십중팔구 그들은 여행지 커플이 된다. 하지만 여행지에서 아직 불같은 사랑을 만나지 못했다면, 페루 리마의 ‘사랑의 공원’은 피하는 것이 좋다. 애인이 생기기 전에 이곳 온다면 남들의 연애질에 열 받아서 당장 여행을 때려치우고 싶을지도 모른다.

리마의 해안절벽을 따라 걷다 보면 태평양을 바라보며 지는 해를 온몸으로 맞을 수 있는 명당자리가 나온다. 그곳에 세워진 Parque de Amor(사랑의 공원). 이 공원에서 마땅히 해야 할 일을 알려주려는 듯이 공원입구에는 붙들고 키스하는 남녀의 거대한 동상이 세워져 있다. 20년 전 밸런타인데이에 건립된 공원이라고 하니 정말 딱 맞는 동상이긴 하다.

미라플로레스는 방문객들에게 인기있는 신도시로 다양한 호텔, 쇼핑센터, 훌륭한 음식점들이 있다. 사진 출처 /페루관광청

사랑의 공원이기 때문인 걸까? 설레는 첫 데이트를 하는, 약간은 어색해 보이는 커플부터 완전 러브모드인 커플까지. 공원 어디서든 살을 비비고 있는 연인들의 모습을 볼 수 있다. 페루 전체 인구의 30%가 리마에 살고 있다는데 리마 인구 중 사랑에 빠진 연인들은 전부 이 공원에 와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이 들 정도다.

사랑이 얼마나 달콤한지 알려주려는 듯 색색의 타일 조각을 붙여 만들어진 공원 의자에 앉으면 태평양 바다가 내려다보이고 시원한 바람이 불어 낮 동안 여행하면서 마신 온갖 매연 냄새를 씻어 내줄 것만 같다. 리마 사랑의 공원. 이곳은 리마의 다른 곳과는 전혀 다른 공기가 흐르는 듯했다.

리마에서 가장 로맨틱한 공간인 사랑의 공원. 사진/정준연

사랑의 감정에 흠뻑 취하고 시원한 공기로 폐를 정화한 후 어제와 마찬가지로 느릿느릿 거리를 걷는다. 이곳저곳을 기웃거리며 숙소로 돌아가는 길에 귀를 확 잡아당기는 한국말이 들린다.

요즘은 남미로 가는 항공편이 다양해지고 ‘꽃보다 청춘’에 남미가 소개되어 페루에 오는여행자들이 꽤 많다지만 내가 여행할 때만 해도 한국사람 만나기가 쉽지 않았다.

한국말이 반가워 무조건 친한 척을 하면서 통성명을 하고 보니 그들은 우리처럼 여행 온 사람들이 아니라 ‘코이카’ 단원들이란다. 그중 한 명은 에콰도르에서 봉사 중이었는데 우리가 그 친구를 정말 부러워했던 이유는 봉사자에게 나온 에콰도르 주민증 때문이었다.

사랑이 얼마나 달콤한지 알려주려는 듯 색색의 타일 조각을 붙여 만들어진 공원 의자에 앉으면 태평양 바다가 내려다보이고 시원한 바람이 불어 상쾌함을 더해준다. 사진/ 정준연

사실 우리가 남미에서 꼭 가고 싶던 곳이 에콰도르의 갈라파고스 제도였다. 다른 곳에서는 볼 수 없는 희귀한 동물들이 있고 자연이 그대로 보존 된 청정지역인 갈라파고스.

그 섬을 잘 보려면 최소한 4일 정도의 여행 일정이 필요한데 1일 여행경비가 12만 원. 즉 4일간 우리 둘이 같이 여행을 하려면 100만 원을 써야 했기 때문에, 남미에서 한 달 생활비를 4일간 써버릴 것인가를 고민하다가 결국 포기했었다. 그런데 에콰도르 주민에게는 4일간 여행비가 10만 원이란다. 아, 정말 부럽다.

어린 나이에 코이카에 지원해 남미까지 올 수 있었는지 묻자 그 친구 중 한 명이 대답했다. 본인의 어릴 적 꿈이 봉사였다고. 중학생 때부터 남을 위해 살고 싶다고 생각했었고 그래서 대학도 사회복지학과로 진학했다고.

요즘은 남미로 가는 항공편이 다양해지고 ‘꽃보다 청춘’에 남미가 소개되어 페루에 오는여행자들이 많아졌다. 사진/ 정준연

그는 이 먼 나라에서 자신의 꿈을 위해 땀을 흘리고 있다. 그의 젊음이, 그의 신념이, 그의 추진력이 정말 부러웠다.

뭐라도 먹으면서 좀 더 얘기하고 싶었으나 우리가 연장자인지라 돈을 내야 할 것이 분명하므로 우리는 결국 눈치만 보다가 그들과 아쉽게 헤어졌다. 어린 친구들에게 뜨신 밥 한 끼 먹이고 힘내라고 용돈도 주고 싶었지만 내 형편은 그 와중에도 여섯 명이나 되는 사람의 밥값을 내면 오늘 써야 할 경비가 너무 많다는 걸 계산해야 하는 처지였다.

여행하다 보면 체력은 정말 좋은데 돈이 없어서 늘 많은 것을 포기해야 하는 나이 어린 여행자를 만나기도 하고, 돈은 좀 더 여유가 있지만, 체력이 받쳐주질 못해서 모험하는 것이 버거운 사람들을 만나기도 한다. 우리는 그 중간 어디쯤에서 어중간한 체력과 여행경비로 여행 중이었다.

리마 베르데 곶에서는 패러글라이딩을 통해서 이 지역의 놀라운 경관을 즐길 수 있다. 사진 출처/페루관광청

결국, 입에서만 달싹이던 말을 용기 있게 내뱉지 못하고 그들과 작별을 해버린 우리는 무거운 마음으로 술을 마셨다.

취해서 몸을 가눌 수 없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남편과 사랑의 공원에서 봤던 연인들 같은 자세로 서로의 몸에 기대어 걸어가면서 생각했다.

나보다 더 어린 사람들을 편견 없이 바라보는 시각과 그들에게 따스한 온정을 베풀 만큼의 경제적인 여유와 그 행동에 보상을 바라는 마음이 없는 멋진 어른으로 늙어간다는 것은, 그러므로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하지만....... 우리에겐 아직 시간이 있다고, 밤은 부드럽고 관대하게 펼쳐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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