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양의 진주’ 스리랑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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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양의 진주’ 스리랑카
  • 김효설
  • 승인 2014.03.14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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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누라다푸라를 되찾은 후 스님들께 감사의 표시로 5개의 석굴사원을 지었는데, 그중의 하나인 담불라 골든템플.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으로 지정돼 있다.
아누라다푸라를 되찾은 후 스님들께 감사의 표시로 5개의 석굴사원을 지었는데, 그중의 하나인 담불라 골든템플.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으로 지정돼 있다.

스리랑카를 두고 탐험가 마르코 폴로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섬’이라 기록했다. 그런 이유로 BBC가 선정한 죽기 전에 꼭 가봐야 할 여행지 50곳 중에 하나로, 세계적인 여행 가이드 북 ‘론리 플래닛’ 이 선정한 2013년 방문해야 할 첫 번째 여행지로 스리랑카가 꼽혔다.

인도양의 석양과 고대 유적, 때 묻지 않은 자연경관이 매력

스리랑카는 남부 아시아 인도의 남쪽 인도양에 있는 작은 섬나라이지만 천혜의 자연경관과 풍부한 문화유산, 이색적인 축제와 전통음식 등 여행자들에게 스리랑카의 매력은 다양하다.

다양한 민족과 문화로 구성된 스리랑카는 지리적으로는 유럽과 아시아를 연결하는 매우 중요한 위치에 있으며, 세계유네스코에 등록되어 있는 유물과 유적도 많다. 아름다운 인도양의 석양과 바닷가를 바라보고 있으면 저절로 감탄사가 터져 나오는 곳이기도 하다.

아직도 때가 묻지 않은 현지인의 순수함과 자연경관들 역시 매력적이다. “인도양의 진주” 그리고 “인도의 눈물”이라 불리는 스리랑카는 서남아시아의 마지막 보루라고 생각한다. 인도양의 석양과 고대 유적 그리고 여전히 세상의 때가 묻지 않은 자연경관이 여행자들에게 큰 추억을 선사한다

스리랑카는18세기 말부터 영국 식민지로 지내다 1948년 영국연방 자치령으로 독립한 후, 1972년 국명을 실론에서 스리랑카공화국으로 바꾸고 영국연방에서 완전히 독립하였다.

1985년 수도가 이전되어 콜롬보 외에 정치적 역할을 하는 수도로 스리자야 와르데네푸라코테가 있다. 유럽과 아시아를 잇는 해상의 요지를 차지하며, 인구는 섬의 남서부에 집중해 있다.

스리랑카의 경제중심지, 콜롬보

도시와 유적은 역사의 흔적이자 자화상이기도 하다. 콜롬보는 최근까지 스리랑카의 수도로서, 활력이 넘치는 경제도시일 뿐만 아니라 현재와 과거가 융해되는 도시이다.

► 2000년 역사를 갖고있는 스리랑카 싱할라 왕조의 두 번째 수도인 폴론나루와의 왕궁 옆에 자리한 사각의 사원, 쿼드랭글.

콜롬보는 국제공항에서 34km 거리에 있고, 수 세기 동안 번성한 항구도시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했다. 오늘날에는 항구의 분주함이 상업, 금융, 쇼핑 지구와 잘 융화되어 있다. 식민지 무역을 주도해오던 포르투갈, 네덜란드, 영국인들이 오늘날의 종교, 관습, 심지어 식사와 언어에 이르기까지 스리랑카의 전통을 변화시키는 데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시골 어촌 마을이었던 콜롬보는 보석과 향신료를 취급하는 아랍 상인들에 의해 자그만 항구로 개척되었다. 그러던 것이 포르투갈, 네덜란드, 영국 등 서구 열강들의 주목을 받으며 차츰 아시아의 중요한 거점 항구도시로 발전하게 되었다.

콜롬보는 식민지 시절의 흔적을 간직한 포트 지역을 중심으로 크게 내륙 쪽의 상점구역(페타 지구)과 인도양이 시원스레 펼쳐진 해변 쪽 신시가지로 나뉜다.

볼거리로는 불교사원과 힌두사원, 이슬람사원, 기독교 교회당과 같은 사원부터 국회의사당 건물, 공원, 동물원, 박물관과 미술 갤러리 등이 있다. 보통 한나절 여행을 하면 불교사원과 힌두사원 그리고 동물관과 거주지역을 볼 수 있다.

밀림 속에 잠자고 있던 고대왕국의 수도, 아누라다푸라

스리랑카 중심부에는 역사적으로 뛰어난 문화, 건축, 예술, 종교 등의 발전을 이루어낸 도시들이 몰려 있다. 이 문화 삼각지에 해당하는 지역이 아누라다푸라, 폴로나루와, 캔디, 시기리아, 담불라로 이들 도시 모두 유네스코가 정한 세계문화유산 지역이다.

아누라다푸라는 북인도 벵골 지방의 싱할라족이 스리랑카 섬으로 건너와 처음 세운 왕국의 수도였다. 전체 도시면적은 25㎢에 달하고, 50,000여 명이 넘는 승려를 위한 시설 및 주거지역과 스리랑카에서 가장 높은 다고바, 의례용으로 사용되었던 목욕탕, 신성한 보리수 등이 남아있어 고대 싱할라 건축과 예술의 시작을 볼 수 있는 곳이다.

초기 불교 미술의 원형을 간직한 아누라다푸라의 역사적 가치와 의미는 1800년대 초 영국의 한 젊은 관리가 우연히 밀림 속에서 유적들을 발견하면서 비로소 잊혔던 왕국의 모습도 다시 깨어났다고 한다.

풍부한 역사 유물을 가진 스리랑카의 문화 중심지, 캔디

콜롬보의 북동쪽 116km 떨어진 곳에 있는 캔디는 ‘센카다가라푸라’ 시로 널리 알려진 불교의 성지다. 스리랑카의 ‘문화 삼각지’ 최남단에 위치한 캔디는 1803년~1807년에 스리 위크라마 라자싱헤가 조성한 인공 호수 근처, 숲이 우거진 깊은 계곡에 건설되었다.

► 거대한 하나의 바위 위에 만들어진 180여m 높이의 성채인 시리가야 락포트에는 현재는 일부만 남아 있는 140m에 이르는 프레스코회랑을 볼 수 있다.

캔디는 싱할라 왕조의 마지막 수도로서, 1815년에 영국이 스리랑카를 점령할 때까지 싱할라 왕조의 후원을 받아 2,500년 이상 디나할라 문명을 꽃피웠다. 1818년에 일어난 반란으로 영국통치가 강화되기 시작된 이후, 급격히 변화를 맞게 되었다. 캔디는 많은 변화를 겪는 동안, 황조의 최후 성채로 남아 있다.

유적지로 알현실, 불치사, 스리 위크라마 궁, 왕비의 저택과 목욕탕, 팔레 와할라, 란 아유다 마두와 등을 포함하는 왕궁유적이 있다. 드왈라, 말와테 승원, 아스기리야 승원도 이곳에 있는 중요한 유적이다.

콜롬보가 교역, 행정의 중심지라면 캔디는 풍부한 역사 유물을 가진 스리랑카 제1의 문화 중심지이다. 캔디는 불교의 정신적 수도로서, 수백만 불교 신도에게 신성도시로 남아있다. 석가모니의 진신 치아가 보관된 불치사가 이곳에서 성지순례 유적지로 유명하다.

싱할라 왕조의 두 번째 수도 플론나루와

폴론나루와는 콜롬보에서 216km, 아누라다푸라에서는 103km, 시기리야에서 103km 떨어져 있는 작은 시골 마을로 아누라다푸라 이후 10세기부터 12세기까지 싱할라 왕조의 수도였다. 11세기 초 촐라 왕조에 의해 수도 아누라다푸라가 폐허가 되었다.

그 후1055년 즉위한 위자야바후1세는 1070년 촐라인을 완전히 격퇴시키고 수도를 아누라다푸라의 남동쪽 폴론나루와로 옮겼다. 이로써 폴론나루와는 스리랑카 싱할라 왕조의 두 번째 수도가 된 것이다. 이후 니상카 말라의 통치시대에 이르기까지 폴론나루와는 최고의 황금기를 구사하며 싱할라 왕조의 중심 무대가 되었다.

► 스리랑카의 동부 항구도시, 트링코말리에 위치한 4성급호텔인 차야불루.

도시 여기저기에 흩어져 있던 아누라다푸라 유적과는 달리 폴론나루와의 유적은 거대한 유적군 안에 조성되어 있어 유적들을 일목요연하고 편안하게 관람할 수 있다.

폴론나루와에서는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불교 유적지들을 만나게 된다. 폴론나루와는 파라크라마 호수로부터 흘러나오는 물길을 끼고 호수에 기대어 직사각형 모양으로 건설되었다. 도시의 중앙에는 거대한 왕궁과 수많은 사원이 건립됐는데 특히 왕궁 바로 옆에는 사원구역인 쿼드랭글이 조성됐다.

쿼드랭글은 사각형이라는 뜻인데 벽으로 둘러싸인 사각형의 정원 안에 12개의 사원이 조성돼 있다. 이곳은 폴론나루와 불교의 중심지였으며 그곳에는 현재 캔디의 불치사에 봉안ehls 부처님의 치아 사리가 캔디로 옮겨지기 전 모셔졌던 사원도 있다. 순례객에게는 매력적인 도시가 아닐 수 없다.

유네스코지정 세계문화유산, 담불라

시기리야 관광의 거점이 되는 작은 마을이며, 석굴사원으로 유명하다. 해발 370m 산 중턱에 있는 담불라는 랑기리 담불라 비하라 혹은 담불라 동굴사원 또는 바위사원이라고도 불린다. 석굴사원은 바위산 중턱에 조성되어 있다. 제1굴에는 열반불과 힌두교의 벽화, 제3·4굴에는 채색된 입불상과 좌불상 등 2,000년이 넘는 유물들이 고스란히 보존되어 있다.

► 캔디에서 남동쪽으로 40㎞ 되는 지점에 있는 누와라엘리야는 높은 고도 때문에 차 생산지역으로 꼽히는 곳이다.

왓타가마니 아브하야 왕은 기원전 103년에 왕위에 올랐으나 타밀 족의 침략으로 아누루다푸라를 빼앗겨 담불라로 피난하였고 천연 요새지인 이 랑기리 바위산에서 14년간을 지낸 뒤 기원전 89년 아누라다푸라를 되찾은 왕은 스님들에 대한 감사의 표시로 하나의 거대한 바위를 이용하여 5개의 석굴사원을 지었다고 한다.

1848년 영국의 침략에 맞서 여기에서 승려들의 무장 봉기가 일어나기도 했다고 한다. 담불라 황금 사원은 성소 5군데와 함께 약 2,200년 간 내려온 신성한 성지 순례 유적지이다. 이 황금 사원은 스리랑카에 있는 석굴 사원 가운데 가장 크고 보존이 잘 되어 있다. 황금 사원 안에서도 넓이 2,100㎡에 이르는 불교 벽화와 157개의 불상과 신상이 특히 유명하다

죽기 전에 꼭 가 보아야 할 곳, 시리기야

폴론나루와로부터 66km 지점에 있는 시기리아는 가파른 경사를 따라 370m의 화강 암반 정상에 자리 잡고 있는 "사자 바위”가 사방으로 둘러싸인 밀림지대 가운데 있다. 기원전 2세기중엽, 스리랑카 남쪽지역인 시기리아는 인도 남쪽 침략자들의 지배 하에 있었다.

기독교가 수립되기 시작하면서부터 서기 4세기 말까지 스리랑카를 "람바카나” 왕조가 이끌었다. 람바카나 왕조의 마하센 왕은 거대한 저수지의 축조를 시작하였고, 이후, 그의 아들 카사파 1세에 의해 죽음을 맞이했던 다투세나 왕 또한, 저수지 축조에 심혈을 기울였다.
왕을 살해한 패륜의 왕 카사파 1세는 사자바위 위에 기원전 475년에 요새 겸 성채를 건축하게 된다. 정상에는 카파샤 왕의 연회장, 목욕실, 왕궁 등의 유적이 남아있다. 내전으로 오랫동안 미지의 땅으로 감춰져 있던 시기리야는 지금은 꽤 유명해져 구미 유럽의 여러 매체에서 ‘죽기 전에 꼭 가 보아야 할 곳’이란 수식이 흔하게 붙는 명소로 알려지고 있다.

가는 길: 인천 콜롬보 구간을 대한항공이 주 3회(월, 수, 토) 운항한다. 소요시간은 9시간.

사진/자료 제공:스리랑카 관광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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