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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은 덤, 자녀와 떠나는 광복절 역사투어 (1)독립운동의 성지 ‘안동’경상북도독립운동기념관, 내앞마을, 임청각, 이육사문학관 등
임요희 기자 | 승인 2019.08.09 14:45
일제강점기 독립운동이 발화한 곳은 서울 종로지만 가장 많은 숫자가 독립만세를 외친 곳은 ‘독립운동의 성지’ 안동이다. 사진/ 안동시

[트래블바이크뉴스=임요희 기자] 일제강점기 독립운동이 발화한 곳은 1919년 3월 1일 서울 종로이다. 그러나 가장 많은 숫자가 독립만세를 외친 곳은 '독립운동의 성지’라 불리는 안동이다.

종로에서 시작된 만세의 함성은 3월 13일, 경북 안동에 이르러 정점을 찍었다. 안동에서는 보름간, 14회에 걸쳐 약 1만여 명이 조국의 광복을 부르짖었다. 정확히 100년 전의 일이다.

안동 경상북도독립운동기념관을 방문하면 당대 독립운동사를 살펴볼 수 있다. 사진/ 한국관광공사

많은 사람이 독립운동에 나서다 보니 안동은 전국에서 독립유공자(약 350명)가 가장 많은 지역으로 꼽힌다. 안동 경상북도독립운동기념관을 방문하면 당대 독립운동사를 살펴볼 수 있다.

안동 경상북도독립운동기념관은 1894년 갑오 의병부터 1945년 광복까지 줄기차게 독립운동을 이어갔던 안동과 경북에 대해 소개하고 있다.

해설사 프로그램을 이용하면 당대 의병 항쟁과 대구의 국채보상운동, 만주 지역의 항일 투쟁, 의열단과 광복군 전투 등을 쉽게 이해할 수 있어 추천된다.

안동은 학자의 도시로 의병 활동이 실패한 뒤에는 혁신 유림이 신학문을 들여와 연구한다. 사진/ 한국관광공사

안동은 학자의 도시로 의병 활동이 실패한 뒤에는 혁신 유림이 신학문을 들여와 연구한다. 혁신 유림은 국권 침탈 이후 만주로 건너가 항일 투쟁을 이어간 이들이다. 당시 이들을 따라 망명한 마을주민이 1911년에만 2500명이 넘은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물심양면 독립군을 도운 이들이 없었다면 만주의 항일 투쟁은 더욱 어려웠을 거라는 게 현대 역사연구가들의 지론이다. 이곳에는 도쿄에서 법정투쟁을 벌인 박열 지사에 대한 문헌도 보존되어 있다. 박열의 고향은 문경이다.

의열단 김시현은 영화 ‘밀정’에서 의열단 리더 김우진(공유 분)의 모티프가 된 인물로 안동이 고향이다. 영화 ‘암살’의 여주인공 안옥윤(전지현 분)도 영양 출신 독립운동가 남자현을 모델로 하고 있다.

아이들은 기념관에서 진행하는 다양한 체험 프로그램에 참여할 수 있다. 사진/ 한국관광공사

남자현은 1933년 하얼빈 감옥에서 풀려난 직후 숨을 거두는데 “독립은 정신으로 이뤄진다”는 말을 남겼다.

아이들은 기념관에서 진행하는 다양한 체험 프로그램에 참여할 수 있다. 감방체험을 비롯해 독립선언서 등사하기, 비밀 요원이 되어 미션 수행하기 등의 프로그램이 준비되어 있다.

기념관 야외에는 독립유공자 추모벽이 있다. 전국의 독립 유공자 1만 5000여 명 가운데 경북 출신이 약 2160명이다. 추모벽에 끝없이 새겨진 이름이 당대 독립운동가들의 고통과 외로움이 뼛속 깊이 스며든다.

김대락의 집에 건설된 협동학교 ‘백하구려’ 전경. 사진/ 한국관광공사

경상북도독립운동기념관 인근에 의성 김씨 집성촌 내앞마을이 있다. 지금은 한적한 시골마을에 불과하지만 당시 내앞마을은 안동 지역 애국 계몽운동의 산실인 협동학교가 처음 열린 곳이었다. 신학문을 가르치고 민족의식을 고취한 독립운동가의 요람이었던 만큼 안 들르고 갈 수 없다.

내앞마을 주민 가운데 ‘만주벌 호랑이’로 불린 김동삼이 있다. 그는 일가를 데리고 만주로 망명했다. 내앞마을에는 일송 김동삼의 생가가 잘 보존되어 있다.

같은 내앞마을 주민 김대락은 자기 집을 내주며 협동학교를 후원했다. 김대락도 나라를 잃은 뒤 만주로 떠났는데, 이때 마을사람 150여 명이 그를 따랐다고 한다. 《백하일기》는 김대락이 남긴 만주 독립운동의 기록이며, ‘백하구려’는 김대락의 집에 건설된 협동학교이다.

일본이 임청각 앞마당을 가로질러 중앙선 철도를 놓으면서 대문과 행랑채 등 수십 칸이 강제 철거됐다. 사진/ 한국관광공사

안동의 독립운동 명소 중 빼놓을 수 없는 곳이 임청각이다. 임청각은 ‘국무령 이상룡 생가’이자 고성 이씨 종택이다. 석주 이상룡은 대한민국임시정부 초대 국무령을 지낸 분으로 3대가 독립 투쟁에 나섰다. 이 집에서만 독립유공자 10명이 배출됐다.

임청각 내 군자정에는 퇴계 이황이 쓴 현판과 독립유공자 증서가 나란히 걸려 있으며 이상룡과 그 가족이 걸어온 험난한 여정도 자세히 살펴볼 수 있다.

임청각은 원래 99칸 가옥이었지만 지금은 절반가량만 남아 있다. 일본이 집 앞마당을 가로질러 중앙선 철도를 놓았기 때문이다. 이때 대문과 행랑채 등 수십 칸이 강제 철거됐다. 현재 정부 차원에서 임청각 복원이 결정되었다.

500년 역사가 살아 숨쉬는 임청각 고택에서 하룻밤 묵어가보자. 사진/ 한국관광공사

독립운동가의 집이자 500년 역사가 살아 숨쉬는 임청각 고택에서 하룻밤 묵어가보자. 전통 한옥의 고풍스러움이 마음을 편안하게 해준다. 가장 인기 있는 객실은 이상룡 선생이 태어난 사랑채.

아침 일찍 임청각 뒤쪽 담장을 따라 이어지는 ‘소담길’을 걸어도 좋을 것이다. 무궁화가 곱게 핀 길을 걷다 보면 이상룡 선생의 강인한 정신과 신념이 가슴 깊이 파고든다.

안동댐 아랫자락 월영교는 ‘원이 엄마 편지’로 알려진 절절한 사랑이야기가 살아 숨 쉬는 곳이다. 사진/ 안동시

밤에는 월영교 산책을 추천한다. 안동댐 아랫자락 월영교는 ‘원이 엄마 편지’로 알려진 절절한 사랑이야기가 살아 숨 쉬는 곳이다.

이 일대 택지조성 중에 무덤 하나가 발견되었는데 무려 400년이나 된 미라 상태의 시신과 함께 한글 편지가 간직되어 있었다. 이 편지에는 병든 남편을 떠나보내는 아내의 슬픔이 빼곡히 적혀 있어 뭇 사람에게 감동을 주었다.

이육사문학관은 저항시인이자 독립운동가인 이육사 선생을 기념하는 곳이다. 사진/ 한국관광공사

도산서원과 이육사문학관을 방문도 추천한다. 도산서원은 조선의 대표적인 유학자 퇴계 이황을 모신 곳으로 낙동강이 유유히 흐르는 한가로운 풍경 속에 그림처럼 자리 잡고 있다. 도산서원 현판을 쓴 이가 명필가 한석봉이라고 하니 꼼꼼히 둘러볼 일이다.

도산서원에서 멀지 않은 곳에 이육사문학관이 있다. 저항시인이자 독립운동가인 이육사 선생은 민족정기를 일깨우는 시편이 널리 알려져 있다. 이곳을 방문하면 교과서에 실린 ‘청포도’ ‘광야’를 비롯해 주옥같은 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

임요희 기자  travel-bik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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