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붕 없는 박물관’ 성북동, 옛 선인들이 반겨주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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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붕 없는 박물관’ 성북동, 옛 선인들이 반겨주네
  • 이혜진 기자
  • 승인 2019.07.30 0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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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골목 따라 뚜벅뚜벅, 성북동의 정체성을 찾아서
찻집으로 운영되는 수연산방은 월북 작가 이태원이 살던 집이다. 한옥의 정취가 물씬 나는 집이다. 현재는 고택을 개조해 카페로 운영하고 있다. 사진/ 이혜진 기자

[트래블바이크뉴스=이혜진 기자] 성북구는 서울의 중심과 동북부 지역을 연결하는 요지다. 일제시대 말기인 1943년 행정구역을 구로 나누는 제도가 실시된 후 6년 뒤 동대문구에서 분리, 서울의 아홉번째 구로 신설됐다. 이름은 문자 그대로 지역이 도성의 북쪽에 위치한 데서 유래했다. 6월 말 행정안전부 주민등록 인구통계에 따르면, 성북구는 현재 인구 44만 명에 20개 행정동을 관할하고 있다.

이곳엔 성격이 다른 두 동네가 있다. 1936년 한국 최초로 근대적 주택단지가 된 성북동과 1960년대 이후 급격한 도시화 속에서 형성된 집창촌 ‘미아리 텍사스’가 있는 하월곡동이다. 29일 오후 서울 성북동을 찾았다. 

29일 오후 소담스러운 마당을 품은 최순우옛집을 찾았다. 잘 관리된 최순우 옛집은 시민들의 성금으로 보전된 시민문화유산 1호다. 사진/ 이혜진 기자

1960년대 후반 성북동 일부 지역엔 재력가와 권력가의 고급주택이 들어섰다. 이에 시인 김지하는 1970년 6월 야당 기관지 ‘민주전선’에 자신의 저항시 ‘오적’을 발표하며 “서울이라 장안 한복판에 다섯 도둑이 모여 살았겄다…. 동빙고동, 성북동, 수유동, 장충동, 약수동…재벌, 국회의원, 고급공무원, 장성, 장차관…”이라고 당대의 ‘도둑’을 비판했다. 강남시대가 열리기 전 한때의 만담이다. 

‘성북동 산에 번지가 새로 생기면서 본래 살던 성북동 비둘기만이 번지가 없어졌다’로 시작하는 김광섭의 시 ‘성북동 비둘기’도 이 무렵 발표됐다. 그러자 성북동은 역설적으로 ‘한국의 베벌리힐스’라는 명성을 얻었다.

서울특별시 민속자료 제10호인 ‘성북동 이종석 별장’. 1900년대 초반 이 집을 집을 지은 이종석의 이름을 땄다. 사진/ 이혜진 기자

하지만 성북동의 정체성은 호화주택에 있지 않다. 이곳의 정체성은 조선시대 만들어진 ‘선잠단’에 있다. 한국정신문화연구원(현 한국학중앙연구원)이 1991년 발간한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 따르면, 역대 왕비들이 손수 누에를 쳐 누에농사의 중요성을 일깨우던 ‘선잠단(사적 83호)’이 성종 2년(1471년) 이곳에 생겼다. 그리고 6년 뒤 중전 폐비 윤씨는 내외명부 부인들과 함께 창덕궁 후원에서 처음 ‘친잠(황색 옷을 입고 누에의 신인 선잠에게 누에농사의 풍년을 비는 의례)’을 한데 이어, 이후 이곳에서 매년 늦은 봄 친히 친잠을 주관했다. 

건너편으로 5분 정도 걸어가자 전 국립중앙박물관장이자 미술사학자인 혜곡 최순우 선생의 집인 ‘최순우옛집(등록문화재 제268호)’이 나왔다. 채동선 가옥부터 만해 한용운 유택 ‘심우장(사적 제550호)’, 조선 말기 거상이었던 ‘이종석 별장(서울특별시 민속자료 제10호)’, 소설가 상허 이태준의 ‘수연산방’까지 성북동 옛집 순례는 역사·건축학도뿐 아니라 일반인들에게도 인기 답사 코스가 됐다.

600년 동안 성북동에 같은 자리를 지켜온 선잠단에선 왕비가 누에 농사의 풍년을 기원하는 조선시대 국가의례 '친잠'을 친히 주관했다. 사진/ 이혜진 기자

그중 시민모금을 통해 지켜낸 시민 유산 1호인 최순우옛집에 먼저 들렀다. 대로변 주택가에 있어 답사하기 편리하다. 집의 원형은 물론 우물, 장독대까지 잘 보존돼 있다. 

최순우옛집 툇마루에 앉아 잠시 머리를 식힌 후 이종석 별장에 갔다. 이종석은 마포에서 젓갈 장사로 시작해 거상에 오른 인물이다. 별장은 1900년쯤 지어졌다. 한때 소설가 이재준이 살아 이재준 가옥으로도 불린다. 

성북동 이종석 별장. 이종석은 장사로 큰돈을 번 상인으로 이곳에 별장을 짓고 여름철에 주로 이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사진/ 이혜진 기자

길 건너 마지막으로 찾은 곳은 수연산방. 소설가 이태준의 옛집을 외종손녀가 전통 찻집으로 개조한 곳이다. 이태준이 작품을 집필했던 공간에서 북악산을 바라보며 오미자차를 마시니 마치 선인과 만나는 기분이었다.

수연산방에서 성북초등학교 쪽으로 내려오다 보니 간송미술관이 나왔다. 일제 수탈에 맞서 우리 문화재를 지키려고 애썼던 전형필이 세운 건물이다. 1년에 딱 두 번, 5월과 10월에 각각 2주 동안만 소장품 가운데 주제를 정해 전시회를 연다. 하지만 박물관에 들어가지 못한 것이 아쉽지만은 않다. 서울의 ‘지붕 없는 박물관’인 성북동에서 세월의 흔적을 오롯이 담아낸 역사 유적과 옛집들을 보며 이곳만의 깊이 있는 풍경과 정서를 마음에 담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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