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래블바이크뉴스] 필리핀해 동쪽, 사이판에서 약 8km 떨어진 티니안 (Tinian). 사이판에 비해 인지도는 떨어지지만 그만큼 조용하고 깨끗해서 여행자들끼리는 쉬쉬하며 방문하는 휴양지이다.
사이판에서 경비행기로 10분 거리에 있는 천혜의 휴양지, 북 마리아나 제도 티니안으로 길을 떠나 보자.
제주도 10분의 1크기지만 티니안은 볼거리가 진진한 섬이다. 티니안 공항이 있는 중부 인근부터 둘러보기로 하자.
티니안은 스페인, 독일, 일본 등 열강의 침입으로 인해 꽤 긴 시간 식민지로 있었다. 일본은 1914년, 한국인 징용군을 이리로 끌고 와 전쟁의 총알받이로 사용했는데 당시 숨진 한국인을 추모하는 위령비가 티니안 공항 남쪽에 세워져 있다.
티니안 도처에는 신사, 방공호 같은 일제의 잔재가 여전히 남아 있어 가는 곳마다 눈에 뜨인다. 티니안은 이것을 깨끗하게 걷어내는 대신 역사의 일부로 받아들이고 있다. 이 역시 자연스럽게 관광자원의 하나로 굳어져 가는 중이다.
티니안 중부 광활한 목초지에는 수천 마리의 젖소, 고기소가 흩어져 방목된다. 목초지는 북 마리아나 제도에서 가장 큰 목장인 MDC 목장 소유로 일본인이 경영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섬 전체가 관광 명소지만, 남서부의 산호세 마을 인근이 해양레저스포츠로 이름이 높다. 타총나 비치의 경우 수심이 얕고 투명도가 80m에 이르러 다이빙과 스노클링에 적합하다.
운이 좋으면 지름이 1m에 달하는 대형 바다거북과 눈인사를 할 수도 있다.
타총나 비치에서 약간 위쪽으로 올라가면 타가 유적지가 나온다. 타가 지역은 마리아나 제도에서 가장 큰 고대 왕조인 타가 왕조의 근거지로, 현지민들도 많은 찾는 관광 코스다. 이 외에도 타가 지역은 북 마리아나 제도의 상징인 타가 스톤으로 유명하다.
그 외 출루 비치, 치겟 비치, 케머 비치 등 남서부는 이름 높은 해양스포츠 지역을 다수 거느리고 있다.
산호세 마을에서 빼놓을 수 없는 곳이 하나 더 있다. 티니안 교회 정원에 자리 잡은 스페인 식민 시절의 종탑이다. 17세기 말엽에 세워진 이 종루에는 태평양 전쟁 당시 포탄 피해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이 종탑의 이름은 ‘벨 타워’로 어느덧 티니안의 아픈 역사를 반영하는 상징물이 되었다.
섬 남단에 있는 ‘자살절벽’은 전쟁의 상흔을 가장 아프게 간직한 곳이다. 이곳은 태평양 전쟁 말기, 포로가 되기를 거부하던 일본인이 뛰어내려 자살한 절벽으로 사이판의 만세절벽을 떠올리게 한다.
1944년 6월 당시 티니안 인구 구성을 보면 군인, 민간인을 합쳐 일본인이 15,700명이나 머물고 있었다. 이는 조선인 2,700명이 포함된 숫자다. 이들 대부분이 전쟁의 포화 속에 쓰러졌지만 살아남은 사람의 상당수는 이렇듯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티니안 남단에는 캐롤리나스 라임스톤 포레스트 트레일이 있어 여행자로 하여금 정글 탐험의 기분을 느끼게 한다. 때 묻지 않은 자연환경에서 진귀한 동식물을 관찰하는 일은 티니안 여행의 빼놓을 수 없는 목록이다.
섬 북동쪽에 있는 블로우 홀(물총 해안)은 티니안 최고의 관광지로 산호초 바위에 구멍이 뚫려 있어 고래의 분수공처럼 물길이 솟구쳐 오른다. 10m 가까이 솟아오르는 바다 분수를 보기 위해 일부러 티니안을 찾는 여행객이 적지 않다.
태평양 전쟁 당시 티니안 섬 북부에는 마리아나 제도에서 가장 큰 공항이었던 하고이 비행장(ハゴイ飛行場)이 있었다. 이곳은 일본군의 중요한 기지였으나 미군이 1944년 7월 북부 츄로 해안으로 상륙하면서 비행장과 섬 전체를 점령해버렸다.
그후에 미군은 하고이 비행장을 확장하여 중부에 웨스트필드 비행장(현 티니안 국제공항)을 건설하였다. 드디어 1945년 8월 이곳에서 폭격기 ‘에놀라 게이’가 원자폭탄을 탑재한 후 히로시마로 날아가게 된다.
전쟁은 끝나고, 티니안은 일부 휴양지를 제외한 섬 전체가 전쟁기념관이 되었다.
이곳에 가려면 사이판을 경유해야 한다. 인천공항에서 사이판까지 4시간, 사이판에서는 경비행기를 이용해 10분간만 날아가면 티니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