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서 놀자] 놓칠 수 없는 명소 ‘덕수궁서 조선말기 체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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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서 놀자] 놓칠 수 없는 명소 ‘덕수궁서 조선말기 체험’
  • 윤서연 기자
  • 승인 2020.01.24 01:3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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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특한 건물들 많고 얽힌 이야기들 다양
덕수궁은 창경궁, 창덕궁, 경복궁에 비해 작은 부지를 차지하고 있다. 조선 목조건물과 함께 서양식 석조건물이 함께 남아있어 다른 고궁과는 조금 다른 느낌이 들기도 한다. 사진/ 서울관광재단
덕수궁은 창경궁, 창덕궁, 경복궁에 비해 작은 부지를 차지하고 있다. 조선 목조건물과 함께 서양식 석조건물이 함께 남아있어 다른 고궁과는 조금 다른 느낌이 들기도 한다. 사진/ 서울관광재단

[트래블바이크뉴스=윤서연 기자] 조선의 역사가 살아 숨 쉬는 덕수궁 나들이로 의미 있는 시간을 보내보는 것은 어떨까.

덕수궁은 조선 말기, 조선에 대한 서구 열강들의 이권 다툼이 치열할 당시 고종황제가 거처하던 곳이다. 고종이 대한제국을 선포하고 황제의 자리에 올라 조선이 자주 독립국임을 대외에 분명하게 밝히고자 했던 그 시기에 머문 공간인 것이다.

하지만 고종의 이러한 의지는 일본에 의해 무너졌고, 결국 일본의 강압에 의해 왕위에서 물러나며 승하할 때까지 덕수궁에 억류되었다. 황제의 거처, 즉 고종의 집이었을 그 공간은 고종이 왕위에서 물러난 뒤 독살의 위협으로 가득 찬 감시의 공간이 되었다

덕수궁은 창경궁, 창덕궁, 경복궁에 비해 작은 부지를 차지하고 있다. 조선 목조건물과 함께 서양식 석조건물이 함께 남아있어 다른 고궁과는 조금 다른 느낌이 들기도 한다.

덕수궁에 입장한 뒤에는, ‘가이드 투어를 해보는 것을 권한다. 한국어, 중국어, 일본어, 영어의 총 4개 국어로 안내되고, 덕수궁 관리소, 우리 궁궐 지킴이, 궁궐 길라잡이에서 안내한다. 덕수궁은 독특한 건물들이 많고 건물에 얽힌 이야기들이 다양해서, 해설을 들으며 건축물을 보면 그냥 걷는 것보다 훨씬 더 재밌게 덕수궁을 이해할 수 있다.

1897년 대한제국이 선포된 후 조선의 국가체제는 서양식 관제를 공식적으로 사용하게 되었다. 궁궐 내 의식주는 완전히 바뀌었으며 덕수궁 역시 대대적인 정비에 들어가게 되었다. 덕수궁 함녕전 뒤뜰 후미진 곳에 있는 정관헌은 이 당시 건축된 궁궐 내부에 지어진 최초의 서양식 건물이라고 한다. 난간은 서양식 철제 양식이지만 문양은 소나무, 사슴, 박쥐 등 우리나라의 전통문양을 사용하여, 전통과 근대의 어우러짐을 느낄 수 있다.

이곳은 고종이 다과를 즐기거나 손님을 접견하기 위해 지은 건물이라고 하는데, 그래서인지 더욱 궁궐 안 작은 카페 같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다.

석조전은 서양식 건물을 본떠서 만든 대표적인 건물로, 건물 자체의 크기는 서양의 유명 건물들에 비해 왜소한 느낌이지만 당시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는 새로운 존재로서 깊은 인상을 남겼다고 한다. 특히 석조전은 황제의 권위를 드러낸 상징물로 그 의미가 남달랐다고 한다. 이곳은 고종이 업무를 보기 위한 편전과 침전으로 사용하기 위해 건설되었으며,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미술관, 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영국인 건축가의 손을 통해 설계된 까닭에 건물 자체부터 건물 앞 정원까지 영국식 정원 풍이 많이 묻어난다.

덕수궁 중화전 및 중화문은 덕수궁의 중심 건물, 정전으로서 왕의 즉위식, 신하들의 하례, 외국 사신의 접견을 받거나 국가 행사를 거행하던 곳이다. 또한 이곳은 고종 황제가 대한제국의 탄생을 선포하고 순종의 대리청정 의식이 거행된 장소이기도 하다.

처음에는 중층으로 지었으나 1904년 불에 타 버려 지금 있는 건물은 1906년에 다시 지으면서 단층으로 축소되었다. 덕수궁 가장 중앙에 자리하고 있어 정전으로서의 위상을 느낄 수 있으며 화려하면서도 단아한 느낌의 단청이나 추녀마루의 잡상 등은 왕실 건축에서만 볼 수 있는 조선 건축의 특별함이 가득하다. 현재 중화전은 중화문과 함께 보물 819호로 지정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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