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래블바이크뉴스=제주/ 이혜진 기자] 제주는 하나의 섬이 아니다. 뭍에서 보면 제주의 시작은 가장 북쪽에 있는 추자도다. 물론 널리 알려진 섬은 아니다. 행정구역상으로는 제주도에 있지만 거리는 육지와 더 가깝다. 구체적으로는 제주에서 45km, 전남 해남에서 35km 떨어져 있다. 이런 위치 때문에 추자도는 조선시대부터 전라도와 제주도에 번갈아 속해 있었다. 그러다가 1946년부터 계속 제주도에 속해 있다.
지난 9일 추자도에 갔다. 제주도와 전라도의 두 매력을 품고 있는 추자도 길을 걷기 위해서다. 구체적인 행선지는 지난해 10월 제주관광공사가 소개한 ‘주민이 직접 꼽은 관광 명소’ 중에서 선정했다.
이날 추자도에 가기 위해 제주항 연안터미널에서 오전 9시30분에 출항하는 퀸스타 2호를 탔다. 도착하는데만 족히 1시간 이상은 걸렸다. 여행 성수기지만 항구는 조용했다.
추자도는 하추자도(3.5㎢)와 상추자도(1.5㎢)로 나뉜다. 하추자도가 상추자도보다 세 배 더 넓다. 하지만 걸어보니 그나마 사람이 모여 사는 곳은 상추자도였다. 선착장과 면사무소 등 주요 시설이 몰려있기 때문이다. 또 하추자도는 상추자도 사람들에게 거센 바람을 막아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두 섬은 추자대교로 연결돼 있다.
우선 항구 근처 면사무소 옆길의 추자초등학교 운동장을 지나갔다. 봉글레산의 최영 장군 사당에 가기 위해서다. 전설에 따르면 최영 장군은 1374년 ‘목호의 난’을 진압하러 제주로 가는 길에 심한 풍랑을 만나자, 추자도에 머무르면서 주민들에게 그물을 만들어 고기 잡는 방법을 가르쳐줬다고 한다. 사당은 최영 장군을 기리기 위해 만들어졌다.
산 정상에서 내려와 길을 걷다보니 후포해변이 보였다. 경상도에 있는 후포해수욕장과는 다른 곳이다. 여기서 20분 동안 걸으니 나바론 절벽이 나왔다. 절벽 위 길은 나바론 하늘길이라고 부른다. 과거 배낚시를 왔던 이들이 깎아지른 절벽이 마치 나바론 요새처럼 난공불락으로 보인다고 해서 지은 이름이다. 거의 직각에 가까운 절벽이 바다와 어울려 수려한 풍광을 자랑한다.
추자도를 거쳐간 이 가운데, 다산 정약용의 맏형인 정약현의 딸 정난주(정마리아)와 그의 아들 황경한(‘황경헌’이란 설도 있다) 이야기도 흥미롭다. 서명숙 제주올레 이사장에 따르면 천주교 신자였던 정난주는 신유사옥 때 남편 황사영을 잃고 자신은 탐라도로 유배돼 관노로 살았다. 유배 갈 때 2살 난 아들 황경한을 추자도 예초리 물쌩이끝 바위에 내려놓았는데, 주민이 발견해 키웠다고 한다. 황경한의 묘가 예초리 산자락에 있다. 어머니 정난주의 묘가 있는 대정읍 11코스와 마주하고 있다. 묘 아래엔 ‘황경한의 눈물’이란 샘이 있는데, 어머니를 그리며 흘린 그의 눈물을 닮아 마를 날이 없다는 전설이 전해져 온다.
먼 바다의 섬들이 대개 애틋한 정이 담긴 이름을 갖듯, 추자도의 새끼섬들도 그렇다. 푸랭이섬, 섬생이, 악생이, 미역섬, 밖미역섬, 납덕이, 큰보름섬, 덜섬, 검은가리, 사자섬, 쇠머리섬…. 한 올레꾼은 이런 추자도의 새끼 섬들을 ‘동물농장’이라고 표현했다. 사자섬은 갈기 세운 사자를 빼닮았고, 고릴라나 악어를 닮은 섬도 있단다. 이런 풍경은 추자도 최고의 전망대 돈대산에 서면 한눈에 담을 수 있다. 먼 바다로 향한 신양항의 자태가 장쾌하고, 하추자도 끝자락 예초마을은 바다 위에 뜬 꽃봉오리처럼 어여쁘다. 배로 한 시간 거리의 완도 보길도나 제주 한라산도 손 뻗으면 닿을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