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산에서 ‘유신로드’를 걷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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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산에서 ‘유신로드’를 걷다
  • 이혜진 기자
  • 승인 2019.06.07 1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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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 인권유린...‘부끄러운 역사’ 속으로
지난 11일 N서울타워를 찾았을 때도 많은 외국인 관광객이 북적였다. 형형색색 자물쇠로 가득한 난간 앞에서는 연신 카메라 플래시가 터졌다. 사진/ 이혜진 기자

[트래블바이크뉴스=이혜진 기자] 남산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뭘까. 어떤 이에겐 케이블카, 다른 이에겐 ‘남산 위에 저 소나무’라는 애국가 구절일 것이다. 

하지만 옛 중앙정보부(이하 중정·국가정보원의 전신)가 먼저 떠오르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역사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라면 말이다. 남산 중정은 고 박정희 전 대통령이 유신(장기집권을 목적으로 단행한 초헌법적 비상조치)을 선포한 해인 1972년 기존에 동대문구 이문동에 있던 청사를 옮기면서 시작됐다. 이후 1996년 서초구 내곡동으로 이사 갈 때까지 24년 동안 남산에 있었다. 이처럼 역사의 어두운 과거를 찾아 지난 5일 남산 ‘유신로드(서울시 중구 퇴계로 26길)’를 걸었다. 

지난 5일 오후 서울 중구의 남산의 N서울타워에 올랐다. N서울타워는 송파구의 롯데월드타워와 함께 서울을 대표하는 전망 명소로 꼽힌다. 사진/ 이혜진 기자

남산에서 첫 번째로 찾은 곳은 ‘고문 공장’이자 ‘정치 공작소’였던 옛 중정 터. 1972년 문을 연 이곳에서 고 김대중 전 대통령과 고 신영복 성공회대학교 교수 등 수많은 피고인들이 죽음의 문턱을 넘나들었다. 죽거나 행방불명되거나 자살한 사람도 부지기수였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이젠 서울시민의 안전을 책임지는 서울시 소방재난본부(옛 중앙정보부 사무동)와 학생들의 꿈을 키우는 서울유스호스텔(옛 중앙정보부 본관) 등으로 바뀌었다. 또 체육관은 남산창작센터, 경호원 숙소는 산림 문학관으로 옷을 갈아입었다. 이와 관련해 지난 2009년 박원순 변호사(현 서울시장) 등 일부 지식인들은 옛터를 ‘인권교육을 위한 역사공간으로 활용해야 한다’며 반대했다. 하지만 재산처분권이 있는 서울시가 유스호스텔 건설계획을 강행했다. 

퇴계로 26길 일대는 과거 유신 독재정권 시절의 옛 터와 흔적이 곳곳에 남아있어, '다크 투어리즘'의 명소로 꼽힌다. 사진 속 서울유스호스텔은 과거 안기부의 본관으로 쓰였던 건물. 사진/ 이혜진 기자

다음으로 찾은 곳은 소릿길 터널. 서울시청 남산 1별관에서 남산창작센터 사이에 길이 84m로 난 터널이다.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가 지난해 발간한 자료에 따르면, 중정이 있던 당시 이곳의 통로 끝에는 대형 철제문이 달려있어 터널을 지나가는 예비 고문 피해자들의 공포감을 극대화했다. 현재 철제문은 철거된 상태. 굴길로 걸어 들어가자 철문 소리, 타자기 소리, 물소리 등 고문 피해자들이 들었던 소리를 생생히 체험할 수 있었다. 

이어 방문한 곳은 ‘문학의집 서울’. 널따란 정원이 딸린 2층 단독주택을 지난 2001년 개조했다. 유신정권 당시엔 중정부장(안기부장)들의 공관이었다. 김재규, 김형욱, 이후락, 장세동 등이 이 공관을 사용했다. 원래 내부가 보이지 않게 하던 담이 있었는데, 개발 과정에서 허물어 누구나 정원으로 들어올 수 있도록 했다. 정원에 들어서자 국내 유명 시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현재 이곳은 문학인들과 일반 시민들을 위한 문화공간으로 기능하고 있다. 

지난 5일 오후 서울 중구 퇴계로의 '문학의집 서울'을 찾았다. 이곳은 과거 유신정권 당시 중정부장(안기부장)들의 공관으로 사용됐다. 사진/ 이혜진 기자

옛 주자파출소 터도 ‘유신로드’에서 빼놓을 수 없다. 이 터는 고문 피해자들의 부모들이 달려와 자식들의 소재를 확인하기 위해 울부짖었던 곳이다. 일반인들이 최대한 가깝게 고문 현장으로 접근할 수 있는 곳이기 때문이었다. 자식이 인권유린을 당했음에도 변호사 접견마저 할 수 없었다. 소수의 경우에만 중구청 옆 대공 상담실에서 면회가 이루어졌다. 참고로 파출소 이름인 ‘주자’는 글자를 주조한다는 의미로, 조선 태종시절 파출소 건너편 극동빌딩 자리에 주자소가 설치되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한편 ‘유신로드’인 퇴계로 26길에서 8분 정도 더 걸어가면 서울시 소파로 148-10길에 중정 6국 터가 나온다. 다른 곳보다 다소 눈에 덜 띄는 곳에 있어, 가장 극악한 고문이 자행된 것으로 알려졌다. 민주화 운동에 앞장섰던 대학생들이 주로 끌려왔다. 2~3층에서 조사를 받다가 원하는 대답이 나오지 않으면 지하 1층에서 고문을 당했다. 중정이 훗날 안기부로 이름이 바뀐 뒤에도, 민주화운동 인사들에 대한 고문과 취조가 진행됐다. 그래서 이곳 터 위엔 ‘세계인권선언문’이 놓여있다. 서울시는 지난 2017년 해당 건물을 철거하고, 인권전시실 조성계획을 세워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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