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MZ 여행] 철원, 민통선 마을을 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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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MZ 여행] 철원, 민통선 마을을 가다
  • 조용식 기자
  • 승인 2015.03.30 17:3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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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루미의 쉼터 이길리, 사유재산권에 상처 입은 통일촌 유곡리까지
"잠시 검문이 있겠습니다." 민통선마을을 가기 위해서는 방문 5~6일 전에 통보를 하고, 군의 관할 초소에서 간단한 신원확인을 한 후 출입할 수 있다. 사진 / 조용식 기자
"잠시 검문이 있겠습니다." 민통선마을을 가기 위해서는 방문 5~6일 전에 통보를 하고, 군의 관할 초소에서 간단한 신원확인을 한 후 출입할 수 있다. 사진 / 조용식 기자

[트래블바이크뉴스=철원]  육안으로도 북한을 볼 수 있을 정도로 근거리에 있는 민통선 마을.

지난 2004년 남북정상급회담에서 대북심리전 장비를 철거하기 전까지는 밤이고, 낮이고 울려 퍼지는 대남방송으로 민통선 마을 주민들은 수시로 안보교육을 받아야 했다. 민통선 마을은 1985년 112곳에서 3차례의 조정 끝에 9곳으로 크게 줄어들었다.

멸공 OP에서 바라본 이길리 마을의 전경. 두루미가 자고 가지 좋은 자연환경을 갖춘 평야지대의 모습을 하고 있다.
이길리 마을 박물관 앞의 장독대에 두루미가 한가로운 모습으로 휴식을 취하고 있는 그림.
이길리 마을 박물관에는 마을 풍경, 생활상, 전통, 역사 등에 관한 내용이 사진으로 촬영, 글과 함께 소개하고 있다.
두루미 스토리로드 안내도.
사진 1. 이길리의 마을버스 정류장의 모습. 사진 2. 이길리 마을을 자전거로 돌아보고 있는 관광객의 모습. 사진 3. 14명까지 수용이 가능한 이길리 마을의 전기차. 사진 4. 금강산전기철도로 번화했던 당시 마을에는 새워진 정연역 금융조합금고의 모습. 한국 전쟁 이후 역 주변에 유일하게 남은 건축물이다.

그중 강원도 철원군에는 동송읍 이길리, 갈말읍 정연리, 근북면 유곡리(통일촌), 마현1리, 마현2리 등 5곳의 민통선 마을이 있다. 민통선마을의 방문은 까다로워서 사전에 마을의 이장이나 사무장 또는 마을회관을 통해 방문 요청을 해야 한다.

민통선 마을 방문 5~6일 전에 마을 이장이나 사무장에 통보

사전 통보를 하고 방문을 하는 취재차량도 육군 3사단의 관할 초소를 통과하는 데 적지 않은 시간을 보낼 정도로 출입에 제한을 두고 있다. 3사단의 윤수민 정훈장교는 "민통선 지역은 미확인 지뢰지대와 군 주요 시설에 대한 보안으로 민간인 출입이 까다로운 점을 양해해 달라"고 말했다.

이길리에 거주하는 김일남 문화해설사는 "이길리 마을회관(033-452-3377)을 통해 마을 이장이나 사무장에게 방문 5~6일 전에 통보해 주는 것이 좋다"며, "이길리 마을은 지난해 800마리의 두루미가 잠을 자고 간 곳으로 '두루미 스토리로드'가 3개의 코스로 마련되어 있다"고 설명한다.

두루미 스토리로드의 3개 코스(사진 참조)를 통해 문화제 112호로 지정된 '금강산 철교', 두루미가 머무는 쉼터, 토교저수지, 정연역 금융조합금고, 금강산 철길 다리 등을 둘러볼 수 있다.

이길리 마을은 예전에 길동이라 불렀는데, '길'은 '길하다'의 뜻으로 사람이 살기 좋은 터를 가진 마을을 의미한다. 이길리는 평야 지대에 위치한 전형적인 농촌 마을이다. 마을에서 1km 떨어진 곳에 버들골 농촌체험장이 있다.

천연기념물인 두루미는 3월 중순경이면 러시아로 날아간다. 이길리에서 전기차(14인승)를 타고 유곡리로 이동 중 한 쌍의 두루미를 발견하고, 카메라에 담았다. 넓은 평야지대 빼곡히 수놓은 청둥오리의 모습도 볼 수 있다.

관광객들이 끊어진 금강산전기철도 위를 걸어가며 하루빨리 철도가 이어지기를 바라고 있다.
강원학생통일교육연수원은 정연리의 폐교를 활용한 교육시설로 현장 중심의 평화, 안보 교육을 담당하고 있다.
사진 1. 금강산전기철교 교량에 대한 안내판. 철원에서 내금강까지의 길이는 총 116.6km로 하루 8차례 운행을 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사진 2. 금강산철길 관광객 주의사항이 적혀있는 안내판. 사진 3. 금강산철교를 거닐고 있는 연인의 모습. 남북의 관계자들도 이렇게 다정한 모습으로 걸을 수 있는 날이 하루빨리 오기를 소망해 본다.

1973년 8월 민통선에는 두 곳에 통일촌이 만들어진다. 하나는 경기도 파주의 장단콩 마을이며, 또 하나가 강원도 철원군의 근복면 유곡리다.

기대에 찬 통일촌 입주, 그러나 9.5 조치로 생활터전이 쑥대밭

마침 유곡리 마을회관에 모여있던 부녀회원들로부터 1973년 통일촌이 들어서게 된 배경을 설명 들었다.

"통일촌은 남한도 잘 산다는 걸 북한에 보여주기 위해 정부가 만든 전략촌이다. 당시 통일촌 입주의 절반은 이 지역에서 군 복무를 마친 전역 장병이며, 나머지는 이 지역 원주민들이었다."

지난 1988년 9월 15일 자 한겨레신문도 이 같은 내용을 보도한 적이 있다. 다음은 한겨레신문의 보도 내용이다.

< 당시 유곡리 이장이었던 이희석 씨는 "처음에는 정부에서 경운기 등 농기계와 전화 텔리비전 수상기까지 모두 지급해 준다고 해 큰 기대를 안고 입주, 사채를 털어 땅을 일궜다. 그러나 뒤늦게 땅 주인들이 소유권을 주장하는 바람에 농협빛 550만 원, 사채 400만 원 등 1,200만 원의 빛만 진 채 생활터전을 잃게 될 처지에 놓여있다"고 호소했다.>

사진 출처 / 국가기록원
마을회관에서 통일촌에 들어오게 된 배경과 9.5 조치로 인해 땅을 빼앗기게 된 배경을 설명해 주는 유곡리 부녀회원들의 모습.
유곡리 마을버스 정류장 뒤로 세워져 있는 확성기의 모습에서 남북의 팽팽한 긴장감이 전해온다.
최북단에 위치한 유곡리 마을 놀이터의 모습.
사진 1. 유곡리 마을 부녀회에서 가장 연장자인 할머니의 모습. 사진 2. 통일촌 비석과 그 뒤로 통일촌 교회의 모습이 보인다. 사진 3. 통일촌 비석 하단에는 1973년 통일촌에 입주했던 60가구의 세대주 이름이 적혀있다. 사진 4. 유곡리 마을회관의 모습.

유곡리 부녀회장은 당시를 이렇게 설명했다. 

"당시 정부가 1가구당 3,300평 밭 3,000평 등 6,300평을 조건없이 주는 것으로 믿고 논, 밭을 개간했다. 그런데 1983년 '수복지역 내 소유자 미복구 토지의 복구등록과 보존등기 등에 관한 특별조치법(9.5조치)'으로 주인이 나타나 땅을 내놓으라고 해 큰 피해를 봤다. 돈이 있는 사람은 땅을 살 수 있었지만, 돈이 없는 경우는 소작농으로 일해야 했다."

27년이 지난 지금은 모든 것이 마무리되어 유곡리 특산물을 판매에 주력하고 있다. 유곡리의 특산물은 철원오대쌀과 고추 등이다.

마을 입구에는 1973년 통일촌에 입주한 1세대 주민들의 이름이 세겨져 있는 '통일촌' 비문과 그 뒤로 통일촌 교회가 보인다. 교회 옆으로는 최북단의 어린이 놀이터와 그네가 덩그러니 놓여 있다.

DMZ관광의 장승재 대표는 "민통선마을의 노령인구의 증가로 경제 활력을 잃어가고 있다"며, "지역경제 활성화의 하나로 농특산물 판매 쇼핑몰을 운영하는 방안을 검토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DMZ관광을 활성화로 인해 민통선마을의 체험, 특산물 등을 찾는 관광객의 발길로 모처럼 민통선마을의 주민들이 활짝 웃는 그 날을 기대해 본다.

취재협조 : DMZ관광주식회사(www.dmztourkore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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