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와 혁명을 꿈꾸는 체 게바라의 발자취, 쿠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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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와 혁명을 꿈꾸는 체 게바라의 발자취, 쿠바
  • 박민성
  • 승인 2015.12.03 14:0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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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 여행자를 반기다
올드 아바나 지역의 주요 관광명소인 플라사 떼 까떼드랄. 식민지 시대의 건물을 그대로 간직한 대성당 주변은 관광객이 가장 많이 모이는 곳이기도 하다. 사진 /트래블바이크뉴스 DB

[트래블바이크뉴스] 여행 중 만난 친구가 쿠바는 사회주의 국가라 하더라도 비자만 받으면 들어갈 수 있고 수도인 아바나는 여자 혼자 여행 다녀도 안전하다고 말하기 전까지 우리의 일정에 쿠바는 포함되어 있지 않았다.

체 게바라가 우리를 유혹하긴 했지만, 초등학교 때 ‘무찌르자 공산당!’ 포스터를 그렸던 경험이 공산권 국가에 대한 무의식적 거부감을 주었나 보다.

우리는 쿠바에 대한 선입견을 떨쳐버리고 쿠바행 티켓을 끊었다. 우리를 쿠바로 데려다줄 티켓을 손에 쥐자 쿠바에 가면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재즈와 오버랩 되는 사회주의라니.

드디어 쿠바의 아바나 입성하다

혁명광장 옆 내무부 건물 벽에 체 게바라의 철제 얼굴 모습과 그의 어록 “영원한 승리의 그날까지”라고 쓰여 있다. 사진/ 트래블바이크뉴스 DB

여행을 다니면서 그 나라 사람들의 표정을 결정하는 가장 큰 요소는 날씨라는 사실을 발견했다. 하루 종일 비가 오락가락하는 영국 사람들의 표정은 왠지 서늘했고. 너무 더운 동남아 사람들의 표정은 뭔가 너무 늘어져 있었다.

쿠바의 날씨는? ‘쨍하다.’ 나로서는 이 단어 말고는 쿠바의 햇빛을 표현할 방법이 없다. 조금만 눈을 들어 올려도 실명할 것 같은 태양. 이 작열하는 태양이 초록 나무를 더 진하게, 붉은 택시를 더 빨갛게, 푸른 강물을 더 새파랗게 바꾼다.

자유와 혁명을 꿈꾸는 체 게바라의 발자취를 느낄 수 있는 올드 아바나의 국회이사당 건물. 사진/ 트래블바이크뉴스 DB

쿠바 사람들의 표정이 밝은 이유는 이 색깔의 선명함이 한몫하는 것 같았다. 그들은 어디서나 눈이 마주치면 웃었고, 인사를 건넸다. 내가 생각했던 사회주의 국가의 사람들과는 다른 얼굴이었다.

여행에 실망을 주는 것이 여행지에 대한 기대라면, 여행에 감동을 주는 것은 아무 기대가 없던 여행지에서 만나는 친절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1492년 콜럼버스가 남미대륙에서 처음 쿠바를 발견하고 “인간의 눈이 보았던 가장 아름다운 땅”이라고 했다는데 그도 아마 이 태양과 색감에 매료되었던 것 같다.

올드 아바나 구 국회의사당 앞으로 차선도 없는 도로 위를 달리고 있는 올드카. 사진/ 트래블바이크뉴스DB

어딜 가나 눈에 띄는 ‘영원한 승리의 그날’까지라는 표어만 아니라면 이곳은 사회주의국가라기보다는 가난한 유럽 같았다.

진한 커피 향기로 지나가던 사람을 잡는 노천카페, 스페인어를 조금만 더 잘했다면 반드시 책을 골랐을 가판대 중고서점, 돈을 주면 그제야 사람이라고 알려주는 동상 퍼포머들, 아무렇게나 비닐로 둘둘 말았지만 색감이 너무 예뻐 결국에는 한 다발 사 들었던 할머니가 파는 꽃다발. 그 어디에서도 내가 상상했던 사회국가의 이미지는 찾아볼 수 없었다.

시가를 문 우수에 찬 얼굴의 체 게바라에 반하다

쿠바에서 꼭 해보고 싶던 것 중 하나는 시가 담배를 물어보는 것이었다. 비록 코히 바가 아닌 몬테크리스토였지만 체 게바라처럼 시가를 물어봤다. 사진/정준연

쿠바에서 꼭 해보고 싶던 것 중 하나는 시가 담배를 물어보는 것이었다. 내가 체 게바라에게 반했던 것은 그가 혁명군이어서가 아니라 시가를 물고 있는 우수에 찬 그의 잘 생긴 얼굴 때문이었으니까.

물론 우리가 시가를 피운다고 그런 느낌이 나올 리는 절대 없겠지만 그래도 쿠바에 왔으니 시가 정도는 물어야 하지 않겠는가?

시장에 들어서자 “올라 아미고(안녕 친구)”라며 반갑게 말을 거는 시가 판매상들이 몰려들었다. 어리바리한 관광객처럼 보이고 싶지 않았던 우린 관광책자에서 강력하게 추천했던 시가 "코히 바"를 외쳤다.

사고 싶은 책이 정말 많았던 분위기 있는 노상서점. 스페인어를 몰라 돌아섰다. 사진/ 정준연

우린 줄기차게 코히 바를 외쳤으나 결국 ‘몬테크리스토’를 샀다. 호객꾼이었던 카를로스는 "관광객들은 다 코히 바를 사고 싶어 하지만 가격 대비 가장 좋은 시가는 몬테크리스토"라고 강력하게 추천했다.

그와 실랑이를 벌이다가 그의 진짜 직업은 초등학생들을 가르치는 선생님이라는 걸 알게 됐다. 초등학교 교사가 호객꾼이라니. 이 말도 안 되는 상황은 사회주의국가의 어려운 경제 상태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모든 것을 국가가 제공하겠다는 이상은 대부분의 상점의 진열장을 텅텅 비게 만들었고, 점점 지하경제만 발달하여 어떤 것도 로비에 의하지 않고는 살아갈 수 없는 기형적인 상황을 낳았다. 화려한 색감의 도시 뒤에는 어려운 현지인들의 삶이 존재하고 있었다.

어디선가 들리는 재즈 음악을 들으며 아바나 시내의 오비스포 거리를 천천히 걷는다. 사진/정준연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몬테크리스토는 세계 3대 시가 중 하나란다. 멋지게 쓰고 싶어서 하는 말이 아니라 실제로 시가에서는 낙엽 태운 냄새가 났다.

담배를 못 태우는 나도 그 향이 좋아 몇 번을 더 피워댔다. 있는 돈을 모두 털어 한국에 있는 친구들에게도 보내주고 싶었지만 우리의 여행은 아직 한참 남았고, 주머니 사정은 너무 알량했다. 어쩔 수 없이 우리만 즐기고 가서 멋들어지게 자랑해야지.

“너희들이 현지에서 태우는 시가의 맛을 알아? 마치 내가 대부의 주인공 같았다고!”

나중에 한국에 들어와서 보니 몬테크리스토는 편의점에서도 팔고 있었다.

최고의 음악을 선사한 올드 아바나의 버스커

시장에서 나와 다시 올드 아바나 거리를 걷는다. 아까도 이리로 걸어왔고, 이곳을 지나 아침을 먹으러 갔었는데 저녁이 돼서 다시 걸으니 또 다른 풍경이 펼쳐져 있다.

아르마스광장과 연결된 오비스포 거리에서 만난 시가를 문 쿠바노. 사진 / 트래블바이크뉴스 DB

좀 전까지 없던 거리 연주가들이 기타 선율과 봉고 소리로 거리를 가득 채워 거리는 즉석 공연장이 되어있었다.

쿠바 음악은 스페인 식민지 시절 아프리카 흑인 노예들의 이주로 아프리카의 영향을 받았다. 아프리카의 리듬과 라틴아메리카의 열정이 합쳐진 룸바와 콩가, 미국 재즈의 영향으로 만들어진 맘보와 차차차를 듣고 있자니 쿠바의 음악은 듣기 위한 음악이 아닌 춤을 추기 위한 음악에 가깝다는 생각이 든다.

잠시나마 착각에 빠지게 하는 살아있는 동상. 사진/ 정준연

길 가던 사람들은 그 자리에 서서 춤을 췄고, 음악이 클라이맥스로 치달을 때마다 휘파람을 불며 열광했다. 결국 나 역시 쑥스러움을 내던지고 그들에게 환호했다. 물론 그들은 우리에게 손 키스를 날리며 돈을 받아 갔지만 나는 우리에게 최고의 기분을 선사했던 그들이 정말 고마웠다.

걷다가 다리가 아파 2층짜리 시티투어 버스를 탔다. 꼭 가고 싶던 곳이 없던 우리는 다른 관광객들이 내려도 그대로 앉아있었다.

말레꼰이라 불리는 방파제가 펼쳐지는 해변은 아바나를 찾는 여행객이라면 반드시 들르는 명소이다. 사진/ 정준연

아바나 시내를 내려다 보는 것만으로도 좋았으니까. 하지만 말레꼰 해변에 도착하자 그 풍광에 이끌려 저절로 버스에서 내리고 말았다.

‘방파제’라는 뜻을 가진 말레꼰 해변은 아바나 도시를 따라 8km 이상 뻗어 있어 아바나 어디에서도 쉽게 눈에 띈다. 해변에는 영원을 맹세하며 키스하는 연인들과 벌거숭이로 해변을 뛰어다니는 꼬마들로 시끌벅적 했는데 그들은 모두 바다 노을을 받아 온통 붉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여행은 떠나온 일상이 의미 있고 소중한 지를 깨닫게 해준다

처음 여행을 꿈꿀 때 나는 일상을 벗어나고 싶다는 욕망이 강했다. 일상을 떨쳐내고 여행을 떠나면 스펙터클이 기다리고 있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여행을 시작하자 다시 이런저런 사람들의 일상들이 내게 다가왔다.

20세기 초 재즈의 전성기를 이끈 사교 클럽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을 만날 수 있는 쿠바의 아바나에서 저녁식사 중 갑자기 나타난 악사들. 역시 이곳이 재즈의 고향 아바나 라는걸 실감한다. 사진/ 정준연

매일 똑같이 친절할 게 분명한 시가 파는 청년의 눈웃음이나, 딱 한국에 있는 조카만 한 아이들이 깨 벗고 노는 장면 같은 것 말이다. 그들은 내게 ‘네가 떠나온 일상이 얼마나 의미 있고 소중한 것이었는지’를 말해주고 있었다.

공원 벤치에 앉아있는 우리에게 자기들끼리 서로 ‘네가 말하라’며 미루다가 사진 한 장만 같이 찍어도 되겠냐고 수줍게 묻는 소녀들과 같이 사진을 찍으면서 이 소녀들에게 나와의 기억이 행복한 일상으로 남아있기를 빌었다.

가까운 곳에서 재즈 색소폰 선율이 울렸다. 색소폰 선율에 카리브 해의 바람이 실려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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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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