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암 종손 이성원, ‘계도(繼道)’ 인생을 걷다
상태바
농암 종손 이성원, ‘계도(繼道)’ 인생을 걷다
  • 사효진 기자
  • 승인 2015.10.29 10:1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기적과 같은 농암 종택의 복원 그리고 개방
농암 이현보의 17대 종손 이성원 선생은 600여 년의 역사를 가진 농암종택을 지키고 있다. 사진/ 사효진 기자

[트래블바이크뉴스] ‘명사와 함께하는 지역이야기’ 다섯 번째 명사, 농암 이현보 17대 종손 이성원(62) 선생을 만나러 안동 도산 가송리에 있는 종택을 찾았다. 이성원 선생은 600여년 전통의 농암 종택을 지키고, 가문을 이끌어가는 종손이자, 농암가의 이름난 로맨티시스트다.

초저녁 종택에서 진행된 ‘토크콘서트’ 무대에 선 이성원 선생은 “살다가, 울다가. 내 인생 이런 날도 있구나”라고 첫마디를 던졌다.

며칠 전 히든싱어(JTBC 예능 프로그램) 김진호 편에서 나온 SG워너비 ‘살다가’의 가사를 읊으며 자신의 인생이 생각났다는 이성원 선생, 그의 한마디에는 종손으로서 살아온 인생의 무게가 느껴지는 듯했다.

농암 종택에서 펼쳐진 '명사와 함께하는 지역 이야기'에는 5번째 명사 종손 이성원 선생이 함께했다. 사진/ 사효진 기자

종손 이성원을 있게 한 3가지 운명 ‘계도(繼道), 은둔(隱遁) 그리고 아내’

이성원 선생은 가난에도 불구하고 오롯이 유학의 길을 가며 종가를 지키는 아버지의 삶과 안동댐으로 흩어진 종택을 보면서 그의 짐을 그대로 짊어져야 한다는 막중한 책임감에 시달렸다.

이 때문에 그는 60일 이상의 결석, 가출을 하는 등 주변을 맴돌았고, 그럴수록 더욱 그의 어깨는 무거워졌다. 하지만 이성원 선생에게 다가온 3가지 운명이 제2막 인생의 문을 열어준다.

관례를 치른 종손에게 집안 어른들은 ‘도를 이어달라’는 뜻의 ‘계도(繼道)’라는 자(字)를 지어주었다. 운명이었을까 이성원 선생은 이때 가슴이 ‘쿵’ 했다고 한다. ‘계도’라는 자 때문인지 신기하게도 농암 종택을 모두 복원하게 됐고, 퇴계 이황, 율곡 이이의 이기철학 등 종손으로서 자신의 길에 대해 공부하는 계기가 되었다.

종택의 안채의 서재에는 종손 이성원 선생의 일생이 담긴 액자들이 있다. 왼쪽 위의 사진은 청년의 이성원이 관례를 치르는 모습이다. 사진/ 사효진 기자

이성원 선생은 매월당 김시습이 수양대군의 폭정으로 은둔에 들어갔던 것처럼 그 또한 방황 끝에 은둔생활을 결심한다. 은둔생활은 그를 사색하게 했고, 사색은 방황했던 그의 삶에 방향을 제시했다.

이후 그는 문학박사 학위를 따냈고, 안동대학교 강사, 국학진흥원의 책임연구원, 도산서원 선비문화수련원 강사, 고택 문화회부 회장, 청량산 문화연구회 회장을 역임하는 등 유가의 삶을 걷게 된다. 

마지막으로 회제 이언적 선생의 자손인 지금의 종부 이원정(56) 씨를 만나 결혼을 하게 된다. ‘아내의 불심이 깊어 조상의 음덕으로 이 자리에 있다’라고 말할 정도로 이성원 선생은 아내에 대한 사랑과 존경심이 지극하다.

이성원 선생은 자신의 지난 경험들을 이야기하면서 “나 자신을 알고, 내가 가야 하는 길을 알아야, 좋은지 나쁜지, 옳은지 그른지를 판단할 것이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답을 얻지 않겠느냐”며 인간이 추구해야 할 목표에 대해 교훈을 전했다.

안동댐 건설로 수몰됐던 농암 종택의 유적은 종손 이성원에 의해 안동 도산면 가송리에 모두 복원됐다.

기적과 같은 농암 종택의 복원 그리고 개방

'이날 나는 그동안 갈망하던 귀거래의 터전을 드디어 발견했던 것이다. 그런 깜짝 놀랄 만한 터전이 때 묻지 않고 고스란히 남아 있음이 정말 꿈만 같았다…댐의 수몰로 오랜 기간 방황하던 나의 영혼에 마치 고향 같은 안식이 한 몸에 안겨왔다. 나는 그때 몇 번이나 ‘아, 아 멋진 마을!’이라고 되뇌었는지 모른다' (이성원의 ‘신 귀거래사’ 일부 발췌)

고등학교 시절 안동댐의 건설로 고향이 수몰되면서 실향민이 된다. 그는 도산서원 가는 길에 그 옆의 고향을 외면할 정도로 그 아픔은 깊고 넓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우연히 1994년 정자도 없고 전부 밭이었던 지금 종택의 부지를 만나 부지를 모두 매입하게 된다. 때마침 경북 유교문화개발사업의 일환으로 국가의 지원을 받아 옛 유적을 다 옮기게 되면서 이성원 선생은 하나하나 기적이라고 해석한다.

농암 종택은 건지산이 뒤에서 감싸 안고, 앞으로는 청량산의 벽력암 아래 태극모양으로 굽이치는 낙동강이 흐르는 명당이다. 사진/ 사효진 기자
농암 종택에는 긍구당이라는 별당이 있다. 긍구당에서는 청량산과 낙동강의 절경을 바로 내려다 볼 수 있다. 사진/ 사효진 기자

현재 농암 종택은 건지산이 뒤에서 감싸 안고, 앞으로는 청량산의 벽력암 아래 태극모양으로 굽이치는 낙동강이 흐르는 명당이다. 특히 가을 새벽의 농암 종택은 울긋불긋 단풍이 스며든 산과 그곳에 내려앉은 안개, 새소리, 물소리가 어우러진 청량함이 머리를 맑게 한다.

농암 종택의 마당에서 이 모든 자연의 풍광에 한껏 심취해 있노라면 “내가 세계 최고 부자다”라는 이성원 선생의 말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이성원 선생은 종택의 개방 이유에 대해 “나는 향기 나는 분을 만나곤 한다. 그러면 나도 닮아가게 되더라”라고 설명했다.

또한, 이성원 선생은 “농암 선조께서 나에게 준 교훈은 ‘명예를 갖지 말라’였다”며 명예 없이 가난했지만 모범적으로 정직하게 살아온 조상의 뜻을 본받아 “큰돈을 바라지 않고 도산의 아름다움과 안동의 유교문화를 알리면서 종택을 유지할 것이다”고 덧붙였다.  

국악밴드 '나릿'의 공연이 농암 이성원의 토크콘서트의 마지막을 장식했다. 사진/ 사효진 기자

국악밴드 ‘나릿’과 함께한 고품격 고택 음악회

농암 종손 이성원 선생의 토크콘서트를 마친 뒤 마지막을 장식한 국악밴드 ‘나릿’의 소리 공연이 있었다. 해금, 피리, 태평소, 생황 등의 전통 악기와 아름다운 우리 소리는 서늘한 종택의 가을밤에 온기를 더했다.

이번 토크콘서트의 사회를 맡은 송세진 여행작가는 “아름다운 고택을 즐기려면 그 집의 이야기, 그 집에 살았던 그리고 살고 있는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라”라고 말한다. 농암 종택에서 듣는 종손 이성원 선생의 스토리와 국악으로 듣는 농암 이현보의 ‘어부가’는 여행자들에게 더욱 특별하게 느껴진다.  

국악밴드 나릿은 “전통의 뿌리가 더 단단히 나려라”라는 바람으로 국악에 지역의 스토리를 더한 차별화된 퓨전국악 곡으로 관객과 소통하고 있다. 대표곡으로는 대구 약령시의 스토리가 담긴 ‘令(령)바람’, 이상화 시인의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에 곡을 입힌 ‘봄의 염원’, 개고리 타령에 ‘놀아라 놀아라 늙어지면 못 노나니’ 가사를 인용해 “시절을 노래하며 즐겁게 살아보자”라는 나릿의 마음을 담은 ‘놀路(로)’ 등이 있다.

Tag
#N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