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천 닭갈비·막국수 생각보다 맛없는 이유?
상태바
춘천 닭갈비·막국수 생각보다 맛없는 이유?
  • 이혜진 기자
  • 승인 2019.06.20 13:0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언론·정치·경제가 만들어낸 닭갈비·막국수 메카
'춘천 막국수 닭갈비 축제'에서 먹은 춘천막국수. 해당 업체에선 평소 꿩고기 고명이 올라간 막국수를 8000원에 판매하고 있다. 그러나 이날 축제에선 다른 업체와 레시피, 가격(7000원)을 비슷한 수준으로 바꿔 판매했다. 사진/ 이혜진 기자

[트래블바이크뉴스=이혜진 기자] 지역마다 대표 음식이 하나씩 있기 마련이다. 부산은 돼지국밥, 제주도는 갈치구이 이런 식이다. 그런데 이런 것은 누가 정했을까. 지난 16일 ‘춘천 막국수 닭갈비 축제’에서 문득 궁금증이 생겼다. 

16일 축제를 찾은 이유는 역설적이었다. 춘천에 갈 때마다 맛있는 닭갈비를 먹지 못했기 때문. 이날도 결국 ‘춘천닭갈비’ 맛집을 찾는데 실패했다. 유명 맛집 평가서에 나온 식당도, 방송에 나온 곳도 ‘서울닭갈비’만 못했다. 

지난 16일 '춘천 막국수 닭갈비 축제'에서 먹은 닭갈비 2인분(1인분 11000원). 주최 측은 개별 업체의 조리 도구와 가격 등 다양한 요소를 균일화했다. 해당 업체는 2016년 MBC '생방송 오늘 저녁'에 출연한 바 있다. 사진/ 이혜진 기자

맛, 가격 비교 우위↓ 현지인 방문 드물어

가격은 착할까. 이날 현장에 참여한 모든 닭갈비 식당의 1인분 가격은 11000원이었다. 비싼 가격은 아니다. 하지만 한 곳을 제외하곤 2인분부터 판매했다. 참고로 부산에 본점이 있는 국내 최대 닭갈비 프랜차이즈 ‘ㅇ 닭갈비’의 1인분 가격은 8500원이다. 

그래서일까. 정작 도민들은 춘천닭갈비를 즐겨먹지 않는 것으로 조사됐다. 실제로 지난해 춘천시청, 강원도청, 춘천시의회, 강원도의회가 공개한 업무추진비 내역(2004년 ~ 2019년 4월)에 따르면, 해당 지역 공무원들이 업무추진비를 사용한 닭갈비 식당은 ‘ㅁ 닭갈비’ 단 한 곳인 것으로 나타났다. 그마저도 그리 즐겨 찾는 집은 아니었다. 해당 식당은 경기도, 충청도, 경상도 등 전국 각지에 직영점이 있어, 굳이 본점까지 찾아갈 필요는 없다. 

'춘천 막국수 닭갈비 축제' 현장에서 도보로 10여분 거리에 850억 원을 들여 준공한 레고랜드 진입교량(춘천대교)이 있다. 지난해 7월 개통됐다. 하지만 관련 사업이 계속 지연되며 아직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 사진/ 이혜진 기자

막국수, 춘천보다 타지에 미식가 더 몰려

‘춘천막국수’ 역시 마찬가지. 같은 자료에서 ‘공무원 맛집’은 춘천교대 인근에서 막국수를 6000원에 파는 ‘ㅇ 막국수’ 한 곳인 것으로 조사됐다. 이곳은 다른 집보다 1000원~2000원 저렴하면서 양도 푸짐해, 맛보다 가성비로 유명한 식당이다. 

다만 16일 축제 현장에 참여한 막국수 전문점들은 순메밀로만 면을 만든 막국수를 판매했다. 춘천막국수협의회에 소속된 업체들이기 때문. 그러나 이 같은 장점은 경기도 용인시 고기리 등 다른 ‘막국수의 고장’에서도 쉽게 찾을 수 있는 요소다. 미식가들은 이미 막국수를 먹으러 춘천이 아닌 용인으로 떠난 지 오래됐다.  

'춘천 막국수 닭갈비 축제' 현장에서 외국인 무용수들이 민속 의상을 입고 전통 무용을 선보이고 있다. 축제 현장 정문 입구 위엔 '문화특별시 춘천'이라는 슬로건이 쓰여 있다. 사진/ 이혜진 기자

양계장 많아서 유명? 통계청 발표 보니…

그렇다면 춘천의 닭갈비와 막국수는 왜 유명해졌을까. 

닭갈비의 경우 많은 관공서와 언론 보도에선 춘천, 홍천 등 강원도 곳곳에 유독 양계장이 많기 때문이라고 보도했다. 하지만 양계장 수와 닭갈비집의 인기엔 큰 관계가 없다. 실제로 지난 4월 통계청이 발표한 ‘농림어업조사 - 가축사육농가’에 따르면, 강원도엔 총 5404개의 양계장(육계, 산란계 포함)이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전라남도엔 7143개가 있다. 

‘춘천닭갈비’라는 단어가 처음 생긴 1995년엔 어땠을까. 같은 기관에서 당해 발표한 ‘닭 사육규모별, 용도별 농가 및 마리수’에 따르면 강원도에선 12,714 가구, 전라남도에선 15,936 가구가 닭을 사육한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두 지역 닭갈비 전문점의 수는 8배 이상 차이난다. 

20일 현재 전라남도의 닭갈비 전문점 수는 100여 곳, 강원도의 닭갈비 전문점 수는 850여 곳이다. 이 중 홍천, 강릉, 속초를 제외하면 춘천에만 840여 곳의 전문점이 몰려있다. 2019년 현재 양계장 수가 0곳으로 조사된 대구광역시와 제주도엔 닭갈비 전문점이 곳곳에 널려 있다. 특히 제주시엔 전국에서 내로라하는 유명 닭갈비집이 있다.   

'춘천 막국수 닭갈비 축제'에 참여한 한 닭갈비 매장에 고용된 아르바이트생이 음식을 조리하고 있다. 축제에 참여한 전 업소에서 부스당 평균 5인 이상의 직원을 상주시켜, 원활한 서비스가 진행됐다. 사진/ 이혜진 기자

‘춘천닭갈비’ 단어 처음 생겨난 해 “닭갈비집 돌풍” 언론 보도 

춘천닭갈비의 유명세는 광고와 관련이 깊다. 옛날 종이 신문을 검색할 수 있는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에서 확인한 결과, 1995년 당시 주요 일간지엔 기존엔 볼 수 없었던 ‘춘천닭갈비’라는 단어가 들어간 프랜차이즈 가맹점 모집 광고가 30회 이상 등장했다. 

뉴스도 힘을 실어줬다. 같은 해 매일경제는 ‘닭갈비 전문점 급속 확산’이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통닭집이 닭갈비 체인점으로 속속 전환하는 등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고 보도했다. 

'춘천 막국수 닭갈비 축제'에 참여한 관계자 및 관광객들이 막국수를 먹고 있다. 오른쪽 위에 관련 협회에서 순메밀만 사용함을 알리는 홍보 문구가 안내되어 있다. 사진/ 이혜진 기자

독재 정권이 급조한 지역별 대표 음식

또 다른 명물, 춘천막국수가 유명해진 이유는 뭘까. 원인은 독재 정치에 있다. 

지난 1981년 전두환 정부는 광주민주화운동 후 악화된 여론을 잠재우기 위해 서둘러 관제축제 ‘국풍81’을 기획, 진행했다. 이때 축제현장에 등장한 음식이 바로 춘천막국수다. 당시 매일경제의 보도에 따르면, 막국수는 무려 2500그릇이 팔려 인기 메뉴에 등극했다. 

이외에도 이때 정부에 의해 각 지역을 대표하는 음식으로 전주비빔밥, 순창고추장, 대구따로국밥, 함흥냉면, 통영충무김밥, 서울설렁탕, 천안호두과자가 새로 선정됐다. 특히 이중 함흥냉면은 함흥 출신 탈북자들에 의해 실제 함흥냉면과 크게 차이가 있는 음식으로 드러났다. 

과거 전두환 정권이 조선일보 출신 고 허문도씨와 진행했던 문화 축제 '국풍 81'의 공식 포스터. TV조선 '인생다큐 마이웨이'에서 최근 충남 지역 일간지 '중도일보'의 사진 자료를 인용해 관련 내용을 방영했다. 사진/ 이혜진 기자

‘닭갈비+막국수’ 환상 궁합? 광고 문구일뿐

의문점은 하나 더 있다. 사실 닭갈비와 막국수는 맛이 썩 어울리지 않는다. 그런데 왜 춘천엔 이 둘을 묶어 파는 식당이 많을까. 

정답은 프랜차이즈 본사에 있다. 닭갈비가 갑자기 떠오른 1995년, 관련 프랜차이즈 업체에선 닭갈비와 막국수를 같이 먹어야 하는 음식이라며 대대적으로 광고했다. 그리고 소비자들은 이를 받아들였다. 

한편 춘천 막국수 닭갈비 축제 폐막 3일째인 19일 오후, 약 8만여 명의 팔로워를 거느린 페이스북 페이지 ‘페북 춘천’엔 “(축제장이) 쓰레기 매립장 같다”며 “오물은 땅을 파서 버려야 하는지..”라는 내용의 글이 올라왔다. 이와 함께 축제장 옆 부대행사장에 상품을 담던 종이 박스와 물병 등이 쌓여있는 사진에 공개됐다. 

해당 게시물의 댓글 중 가장 많은 추천을 받은 글의 내용은 “현지인들은 (춘천 막국수 닭갈비 축제에) 안 간다. 닭갈비 골목도 안 간다”이다.  

Tag
#N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