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래블바이크뉴스=이혜진 기자] ‘한라산 명물’ 노루 무리가 사라졌다. 멸종위기에서 보호운동, 개체 수 증가, 유해동물 지정 등으로 운명이 계속 바뀐 탓이다.
지난 4일 오전 한라산 중턱의 제주마방목지에 갔다. 하지만 이곳에선 어쩌다 한두 마리의 노루만 보였다. 같은 날 이곳을 들른 ㄱ씨는 “유튜브에 올라온 다큐멘터리에서 노루들이 한라산에 여러 마리 있는 모습을 봤는데 막상 와보니 썰렁하다”고 말했다.
차로 10분 거리인 한라산 노루생태관찰원에서도 노루가 전보다 적게 보였다. 지난해엔 100마리가 넘었지만 현재는 20여 마리 뿐. 이날 이곳을 찾은 ㅂ씨는 “노루의 천적은 멧돼지가 아니라 사람”이라고 일침했다.
실제로 제주 노루의 개체 수는 급감했다. 지난 2월 제주도 세계유산본부가 발표한 ‘제주노루 행동·생태·관리’ 보고서에 따르면, 노루 개체 수는 2009년 1만2800마리에서 2013년 노루 포획이 승인된 후 9000여 마리가 감소했다. 구체적으로는 2015년 8000마리, 2016년 6200마리, 2017년 5700마리, 2018년 3900마리다. 세계유산본부가 밝힌 적정 노루 개체 수는 6100마리. 하지만 이젠 적정 개체 수의 약 60%만 남아있다.
한라산의 노루도 급감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2004~2008년엔 1㏊에 1200여 마리였지만, 지난해엔 400여 마리로 줄었다. 제주조릿대(대나무의 일종)가 한라산 전역을 덮게 되면서 노루의 서식 환경이 나빠져서다. 노루는 조릿대를 먹지 않는다.
앞서 3월 세계유산본부는 한라산의 특성을 반영하는 상징적인 야생 동·식물 중 하나로 노루를 꼽은 바 있다. 그러나 그동안 포획된 7023마리의 노루에 대한 자료는 장소와 숫자 등만 보고된 것으로 알려졌다. 포획된 노루 대부분은 자체 소비됐다.
이에 제주도는 지난 5월 “노루가 유해야생동물로 지정된 후 개체 수가 감소함에 따라 유해야생동물 지정을 한시적으로 해제한다”고 밝혔다. 실제로 지난 1일부터 노루 포획이 금지됐다. 기간은 1년. 또 인근 5·16도로 구간에 오는 2022년까지 로드킬 차단시설을 설치할 예정이다.
지역 환경운동단체는 더 강력한 조치를 요구했다. 제주환경운동연합은 지난 5월 성명을 내고 “농가 피해가 크게 줄지 않는 등 노루 포획 효과는 확인되지 않고 있다”며 “노루와 농가가 공생하는 정책을 마련해 노루를 유해동물에서 영구적으로 해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최근 한라산 내 골프장들이 노루의 은신처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제주노루 행동·생태·관리’ 보고서에 따르면, 골프장 내 평균 노루 개체 수는 ㏊당 0.265마리(1108마리)로 해발 500~600m 중산간 목장지대 다음으로 많이 분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골프장은 일반인 출입과 야생동물 포획 등의 행위가 제한돼 있기 때문. 인공 연못이 노루의 물 공급원 역할을 하고 있기도 하다.
다만 농약 등 화약약품이 노루에게 악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 향후 노루의 생태·행동·관리에 대한 연구가 더 진행돼야 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