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회 자벌레여행기] 꿈틀상 - 아들의 스트레스를 제주에 떨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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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회 자벌레여행기] 꿈틀상 - 아들의 스트레스를 제주에 떨구다
  • 김현정
  • 승인 2015.02.10 1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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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밖으로 보이는 제주의 풍경. 사진 / 김현정
창밖으로 보이는 제주의 풍경. 사진 / 김현정

[트래블바이크뉴스] 제2회 자벌레여행기 꿈틀상 김현정  겨울이 무르익어 개학을 앞둔 어느 날 둘째아이와 군고구마를 먹으며 내년부터 겪어내야 할 고등학교 생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공부가 전부인 양 살아가는 이 시대 학생들로 키우지 않기 위해 무던히 애를 써왔는데 입학을 앞두니 어쩔수 없이 부담감이 밀려왔다.

“에이, 걱정되네.“

아이의 한마디는 엄마인 나의 가슴에 비수처럼 꽂혀서 쿵 하고 내려 앉는다. 한참동안 둘은 말없이 고구마만 삼키다가 "우리 여행이나 갈까? 시원한 바람이나 쏘이고 오자”며, 바로 짐싸서 공항으로 출발했다.

► 한라산이 멋지게 보이는 거문오름 전망대.

► 바닷가와 등대가 있는 풍경.

언제나 여행은 미리 준비하고 움직여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는 나이기에 충동적으로 떠나는 게 살짝 걱정도 되었지만 아들과 둘만의 여행이 주는 기대감이 용기를 주었다. 비행기의 출렁거림과 동시에 맑고 파란 하늘과 진한 돌담이 한눈에 들어 온다.

“아, 제주다.”

아이는 비행기에서 벌써 제주를 맞이한다.

조금은 특별한 하이브리드 렌트카를 타게 되었는데 무슨 홍보차량인양 쳐다봐서 사람들의 시선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었지만 너무나 조용한 차여서 클래식 음악의 선율을 제대로 즐길 수 있었다. 때를 놓쳐 허기진 배를 길가 김밥집에서 산 김밥 한 줄과 사이다로 채우며 동부산간에 있는 숙소로 달리는데 오랜만에 맡는 제주 공기에 코평수가 저절로 넓혀진다.

“야호~!”

숙소에 짐을 던져놓고 바로 조천으로 달렸다. 삼나무가 빽빽이 들어차 있어 하늘도 길어지는 길, 무슨 광고에 나왔었던 길을 달려 도착한 조천읍 교래리는 토종닭으로 유명한 곳이다.

제주도에 사는 친구가 권해준 식당 (성미가든)으로 찾아 들어가니 벌써 식당엔 손님들이 가득하다. 백숙 한 마리를 시켰는데 독특하게도 닭샤브를 먼저 내온다.

배추를 뚝뚝 잘라 넣은 깔끔한 국물에 얇게 저민 살코기를 담가 먹다보면 푹 삶아진 닭이 또 통째로 나온다. 구수한 녹두죽으로 마무리가 되는데 둘이 먹기에 벅찰만큼 많은 양이다. 오가는 차량이 없어 스산하기까지 한 시커먼 밤을 뚫고 되돌아 가야하는 부담이 있었지만 근사한 저녁이었다.

► 빨간 기차를 타고 도는 에코랜드.

► 제주여행의 애마 하이브리드 렌터카.

둘째날 아침, 평소같으면 늦잠을 잤을 법한 시간인데 일찍 일어난 걸 보니 아들도 책임감이 드나보다. 전날 사온 조천 보리빵과 귤로 아침을 해결하고 밖으로 나오니 바람이 차다.

남쪽 지방이라지만 겨울인지라 바람이 덜한 곳을 찾다가 눈에 들어 온 ‘에코랜드’ 소박하지만 낭만적인 기차를 타고 제주숲의 일부를 돌아보는 곳이다.

빨간 클래식한 기차를 타고 제주의 허파라는 곶자왈을 도는 곳인데 역마다 내려 산책도 하고 연못가에 앉아도 보고 발걸음에 따라 들리는 명랑한 돌소리도 들으며 둘만의 셀카도 찍고 투명한 하늘을 배경으로 돌고 있는 풍차도 보고 두어 시간을 우리만의 온전한 시간으로 보낼 수 있었다.

휴게소에서 커피를 마시며 앉아있는데 나이가 지긋한 어르신께서 “흰눈이 머리에 내렸는데 마음엔 시원한 바람이 분다” 며, 흐뭇해 하신다. “세월이 사람을 시인이 되게 하는가 봐” 아이의 마음에도 듣기 좋은 말씀이셨나 보다. 아이도 나도 여행이 주는 여유로움에 흠뻑 취할 수 있었다.

두 번째 목적지는 ‘4.3 평화기념관’. 숙소와 가까운 곳에 있어서 이기도 했지만 전부터 가보고 싶었던 곳이었는데 마침 아이와 함께여서 더 좋은 기회가 될것 같았다. 하지만 첫 인상은 너무나 어두운 동굴로 시작되어 마음을 움츠려 들게 하였다.

좁은 동굴에 갇혀 타버린 모습을 바라볼 땐 그들이 느꼈을 공포감이 고스란히 전해왔다. 역사적인 배경같은 건 중요치 않았다. 그냥 마음이 아려왔다. 분노조차 느끼지 못할 만큼 절박했던 시간이었으리라. 저항할 힘도 없고 싸울 의지조차 없는 사람을 상대로 사람이 저지르는 일이 이리도 잔인할 수 있는 건지...

아이도 엄마도 눈시울이 젖는다. 치유되지 않은 상처들이 얼른 아물길 바라며 밖으로 나와 추모공원으로 올라가니 넓은 공원 전체에 까마귀들이 까맣게 날아다닌다. 이렇게 많은 까마귀들은 처음이다. 구천을 떠도는 영혼들이 까마귀가 되었을까?

► 들려볼만 한 제주세계자연유산센터.

► 일출봉이 한 눈에 들어오는 광치기 해변은 사진촬영 장소로 각광받고 있다.

► 엄마와 아들(사진)이 서로 보호자가 되어서야 한다는 암묵적인 약속이 저절로 생겨났다. 

셋째날은 제주에 도착하자마자 예약해 둔 ‘거문오름’이었다. 세계자연문화유산에 등재된 정식 명칭은 -거문오름을 포함한 동굴계-이다. 해설사를 동반한 여정인데 다양한 동식물이 공생하는 곳이다.

“입을 닫고 귀를 기울이면 들리고 보이는 것들이 많습니다”로 시작해서 찬바람 맞으며 새도 찾아보고 나무도 찾아보며 걷는 길이 만만치는 않았지만 전망대에서 보이는 한라산의 모습에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무심코 밟는 나무 뿌리도 아프지 않겠냐고 미안해하자는 말씀, 쾅쾅거리는 사람의 발걸음 소리가 동물들에게는 대포소리처럼 공포스러울 수 있다는 해설사의 말씀에 나를 뒤돌아보게 되었던 귀중한 시간이었다.

해설사분이 알려주신 고기국수집에 들러 먹은 고기국수도 별미였다. 제주시에 있는 맛집이라고 소문난 곳에서 먹어 본적이 있는데 돼지냄새가 너무 나서 먹다 말았던 기억이 있어서 처음엔 꺼려했는데 아이도 정말 맛있다며 감탄을 해댔다. 제대로 된 고기국수로 꼭 드셔보시길.

점심을 먹었으니 아이에게 드라이브를 시켜주겠노라고 하여 성산 일출봉쪽으로 내려 달렸다. 오름들이 좌우로 펼쳐진 길인데 너무나 근사하다. 다랑쉬 오름, 용눈이 오름...이름도 알수없는 봉긋한 오름들이 펼쳐진 길을 달리는 기분은 정말 환상적이다. 하늘을 향해 달리는 기분이다. 아이도 탄성이 절로 나온다.

이제는 돌아가야 할 시간. 일출봉을 눈으로만 훑고 해녀의 집에서 전복죽을 한그릇 비우고는 해안도로를 타니 에머랄드빛 바다가 펼쳐진다. 멀리 우도도 보이고 내가 평소에 좋아하는 종달리도 나온다. 왠만한 해외 어디보다 제주도가 얼마나 근사한지를 알수 있는 곳이다.

가도가도 끝이 없을 듯이 펼쳐진 바다, 잠시 쉬어 바라보는데 아이도 “가슴이 뻥 뚫린다”며 좋아라 한다. 해녀 불턱도 보고 무밭과 어우러져 더욱 견고해 보이는 별방진은 숨은 명소였다.

새로운 출발을 걱정하는 아들을 위해 무작정 출발한 여행이어서 걱정도 되었지만 서로가 보호자가 되어야 한다는 암묵적인 약속이 저절로 생겨났다. 아이는 책임감이 드는지 엄마를 챙기고 스케줄을 챙겼다. 엄마는 왠지 든든하고 뿌듯하다.

차디찬 바닷바람과 맞설 줄도 알게 되고 동행의 의미도 알게 되었다. 무엇보다 좋은 점은 긴 시간을 오롯이 둘만이 있다 보니 서로를 이해하는 마음이 넓어졌다. 사춘기가 절정에 달해 언성을 높이게 되는 날엔 이번 여행의 추억을 꺼내놓으며 마음을 달래면 될 것 같다. 진학을 앞둔 시기에 접한 부담감도 어느 정도는 작아졌으리라.

아이는 이번 여행 내내 너무나 즐거워했다. 보고 있는 엄마 맘은 말해 무엇하랴. 둘만의 여행, 오길 잘했다.

“아들아, 지치고 힘든 시간이 오면 다시 한 번 오자꾸나!”

심사평

엄마와 아들이 서로 보호자가 되어야 한다는 암묵적인 약속. 이 글이 주는 가장 크고 흐뭇한 메시지입니다.

그런데 글 속에 여행 중 서로 보호자가 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했는지, 그 노력 중에 있었던 재미난 이야기가 있었는지 그런 내용들로 글을 채웠으면 내용이 더 풍부했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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