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회 자벌레여행기] 장려상 - 새하얀 세상위에 선 겨울의 낭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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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회 자벌레여행기] 장려상 - 새하얀 세상위에 선 겨울의 낭만
  • 전혜영
  • 승인 2015.02.09 18:2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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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의 민낯을 보여주는 한라산의 설경. 사진 / 전혜영
겨울의 민낯을 보여주는 한라산의 설경. 사진 / 전혜영

[트래블바이크뉴스] 제2회 자벌레여행기 장려상 전혜영  제주는 여느 때 찾아도 신비스러운 섬입니다. 특히 제주의 겨울 한라산은 더 그렇습니다. 산 위는 온통 흰 눈으로 덮여 설국의 장관을 이루고, 낮은 곳에선 작은 풀들이 싹을 틔우고 있습니다. 산에 오르면 탁 트인 겨울이고, 내려오면 아지랑이 봄이 느껴집니다.

이맘때 한라산은, 단지 ‘아름답다’ 는 말만으로 형용하기 어려운 환상적인 설경의 장관이 펼쳐집니다. 눈이 수북이 쌓인 등산길을 걸으면 한라산이 우리나라 유일의 세계자연유산으로 지정된 이유를 알 것 같지요.

한라산, 겨울을 일찍 마중하고 느지막이 배웅하는 산

제주의 한라산은 다른 곳보다 겨울을 일찍 마중하여 품었다가 느지막이 겨울을 배웅해 보내는 산입니다. 한반도 정기의 가장 남쪽에 있는 산이건만 손에 잡힐 듯 가까이 보이는 은하수와 조우할 수 있을 정도로, 한반도 남녘 가장 높다란 봉우리의 산이기 때문입니다.

► 새하얀 세상 위에서 겨울 낭만을 발견하다.

1월이 되어 부쩍 포근해진 제주의 날씨에, 떠나보낼 계절에 대한 연민의 정이라도 생긴 걸까요. 한동안 날이 확 풀어졌다가 다시 한파가 몰아치니, 또 추위냐는 불평보다는 아직 겨울이 다 가지 않았다는 안도의 기분이 먼저 떠오릅니다.

그렇게 떠나는 겨울을 붙잡기 위해 한라산을 찾았습니다. 한라산 꼭대기에서만이 내려다볼 수 있는 제주의 가장 찬란한 겨울을 만나기 위해서입니다. 사위의 바다에서 피워 오른 수증기가 눈구름이 되어 겨우내 한라산을 뒤덮고 있고. 구름 위로 봉우리가 수줍게 모습을 드러내기도 하지만 금세 너울거리는 눈구름이 산자락을 뒤덮어 버립니다.

그래서 한라산 곳곳에 피어난 눈꽃은 겨울 내내 지지 않고, 매일 새로이 도톰히 피어납니다. 한라산을 둘러싸고 있는 눈구름은 한라산의 수려한 설경을 신성하게 지켜내는 보호막의 역할도 하는 것이지요.

몽중한을 경험하듯 완벽히 빼어난 백설의 장관은 전국의 산을 사랑하는 많은 산악인들이 매년 겨울이면 제주 한라산을 그리워하는 이유이기도 할 것입니다. 한라산에 눈이 와 눈꽃과 상고대가 제대로 피었다는 소식이 전해지면 다시금 도진 그 상사병을 못 이기고 찾게 되는 산이 한라산인 것이지요.

영실, 구름도 제 몸 씻고 쉬어가는 아름다운 비경

이번 한라산 산행은 영실코스로 잡았습니다. 버스에서 내려 20여 분 찻길을 따라올라 영실휴게소에 이르렀습니다. 이제부터 본격 산행입니다. 발목에 스패츠를 두르고, 등산화에 아이젠을 걸쳤습니다. 고개를 들어 마주한 하늘은 티끌 없이 파랗습니다.

► 이름모를 행성의 모습을 보여주는 듯한 광경.

► 자연이 만든 겨울 작품.

고대했던 영실기암의 설경을 만날 생각에 가슴이 두근거립니다. 휴게소 지붕에서 깍깍대는 까마귀 소리마저 반갑게 들립니다. 겨우내 쌓인 눈 위로 산길은 높게 다져 있고. 영실소나무숲을 알리는 안내판도 눈 속에 푹 파묻혀 겨우 그 끄트머리만 모습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숲을 한자락 돌고 나서 미끄러운 능선길로 올랐습니다. 경사가 꽤 되는 오르막입니다. 숨은 찼지만 넓어지는 시야에 가슴은 더 시원해졌습니다. 오백나한이 우뚝 선 영실기암이 당찬 모습으로 눈앞에 서 있습니다. 구름도 제 몸 씻고 쉬어간다는 한라의 신들의 거처 영실의 아름다움에 오르막의 힘겨움마저 잊게 됩니다.

사위는 쥐 죽은 듯 조용합니다. 온 세상이 하얗습니다. 복슬복슬 복스럽게 쌓인 눈이 소복합니다. 아무도 밟지 않는 숫눈에 찍히는 숫발자국. 뽀드득뽀드득! 눈 밟는 소리가 날것 그대로 귀속에 날아와 박힙니다.

눈 지르밟는 아삭아삭 잔물결 파동이 발치에서 온몸으로 짜릿하게 퍼져 나갑니다. 발바닥 가운데에 은근히 부풀어오는 물렁한 촉감. 사각사각! 야릇하고 간지럽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맨발로 비닐공기방울 ‘투∼욱 툭’ 터뜨리는 느낌이 이럴까요. 그 느낌이 참으로 청량하게 다가옵니다.

눈꽃이 이 골짝 저 기슭 다발로 피어 있습니다. 산 곳곳에 눈 휘감은 나무가 온몸에 눈꽃을 매달고 상고대로 우뚝우뚝 자리하고 있습니다. 문득 눈꽃 덩어리가 제 무게를 못 이겨 스르르 통째로 떨어지기도 합니다.

부잣집 맏며느리처럼 후덕하고, 높되 험하지 않고, 낮게 누운 이등변삼각형의 밋밋하고 느릿하게 웅장하면서도 어머니 포근한 품처럼 그 품이 아늑한 한라산. 아이젠, 스패츠 등 간단한 장비만 갖추면 누구나 쉽게 오를 수 있는, 누구나 열린 품으로 품어주는 후덕한 어머니의 품 같은 산, 한라산입니다.

► 한 겨울 눈과 나무의 만남.

► 한 줄기 바람이 스처가는 신비로운 눈 언덕.

한라산 정상은 얼음꽃 세상입니다. 나뭇가지마다 역시 얼음꽃이 덕지덕지 매달려 있습니다. 상고대가 반짝반짝 수정처럼 빛나고 있습니다. 마른 나뭇가지엔 얼음꼬마전구가 주렁주렁 매달려 있기도 합니다. 금방이라도 깜박깜박 전깃불이 들어올 것만 같습니다. 나뭇가지 꼭대기에는 아예 ‘얼음꽃 모자’ 가 깊숙이 눌러 쓰여 있기도 합니다.

상고대는 나무서리입니다. 나뭇가지에 매달린 물방울이 얼어붙은 것이 상고대입니다. 겨울나무의 눈물꽃 같이 보이기도 하지요. 그 모습은 마치 멍울멍울 은구슬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나뭇가지들은 겨우내 상고대를 피우며 ‘얼었다 녹았다’ 를 되풀이하곤 합니다. 살은 갈라지고, 껍질은 트다 못해 얼어 터지기도 합니다.

한라산의 상고대는 영락없는 ‘얼음꽃 크리스마스트리’ 의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붉은 열매, 붉은 껍질에 늘 푸른 바늘잎. 살아 천 년, 죽어 천 년 그리고 땅바닥에 허허롭게 쓰러져서 천 년. 무려 3천 년 동안 얼음꽃을 피워내고 있습니다. 한라산엔 토종 구상나무가 우렁우렁 상고대를 매단 채 검푸른 제주 바다를 내려다보고 있습니다.

상고대는 해가 뜨면 녹기 시작합니다. 동틀 때 보는 상고대가 가장 황홀합니다. 이 장관을 보려고 저마다 앞다퉈 이른 새벽에 설산을 오르는 이유이기도 하지요. 햇살에 반짝이는 수정 얼음꽃. 바람이 불면 우수수 온갖 색이 버무려져, 아롱아롱 무지갯빛을 뿜어냅니다.

눈꽃은 촉촉해야 더욱 아름다워집니다. 밤새 찬바람 맞은, 마른 눈꽃은 어딘지 까칠합니다. 햇살에 살짝 녹아야 아이스크림처럼 푸근해집니다. 동녘의 말갛고 붉은 해가 한 뼘쯤 솟았을 때가 바로 그 찰나입니다. 나뭇가지의 눈꽃 숭어리가 우우우 기지개를 켭니다. 눈꽃 속의 은싸라기들이 초롱초롱 반짝입니다.

겨울나무는 얼음꽃을 수없이 피운 뒤에야, 비로소 새봄 황홀한 꽃을 피워 올립니다. 봄을 그리는 겨우내 움츠렸던 언 땅의 새싹도 그렇게 올라옵니다. 맑고 향긋한 꽃봉오리 등불도 겨울이 가면 화르르 불을 켜 틔워낼 것입니다. 지상 위 모든 푸른 생명은 겨울을 배웅하며 그렇게 울컥울컥 활기 머금은 생명을 비로소 토해낼 것입니다.

사람도 그렇지 않을까요. 묵은지처럼 오래오래 곰삭는 겨울의 시간을 지내야지만이 비로소 향내 나는 꽃을 틔워낼 수 있는 지상 위 모든 만물처럼, 인고의 시간을 견디며 준비한 자는 반드시 찬란한 봄을 맞이하여 인생을 더불어 사랑할 수 있다는 사실을, 대지를 품은 한라산의 드넓은 자연생태를 조망하며 배우게 됩니다.

심사평

겨울 한라산의 설경, 상고대 등 자연의 아름다움을 잘 표현한 작품입니다. 사진과 글이 보통 수준을 넘습니다. 그러나 사진과 글 모두 작가 내면의 감성을 드러내려는 의욕이 너무 과했다는 느낌입니다.

전달하려는 메시지가 강한 반면 주제에 대한 몰입도는 떨어져, 독자 입장에서는 글의 초점이 한라산인지, 상고대인지, 봄을 기다리는 제주인지 종잡을 수 없었습니다. 글 속에 선택과 집중, 독자와 감성의 소통이 더 있었다면 좋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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