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한옥마을] 그윽한 옛 정취 풍기는 도심을 거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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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한옥마을] 그윽한 옛 정취 풍기는 도심을 거닐다
  • 김대성
  • 승인 2014.11.21 10:2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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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한옥마을 전경. 느긋한 걸음으로 걷다 보면 전통문화도시 전주의 매력에 푹 빠지게 된다. 사진/ 김대성 기자
전주한옥마을 전경. 느긋한 걸음으로 걷다 보면 전통문화도시 전주의 매력에 푹 빠지게 된다. 사진/ 김대성 기자

[트래블바이크뉴스=전주] 김대성 기자  천천히 다가갈수록 더 많은 것을 느낄 수 있는 곳, 전주한옥마을. 북촌한옥마을과는 또 다른 느낌이다. 북촌처럼 도심 속에 자리하고 있지만, 분위기는 조금 다른 듯하다.

전통과 현대가 어우러진 풍경 속에 넌지시 녹아든 사연이 마음을 적셔온다. 가을의 끝자락에서 얘깃거리 가득한 전주한옥마을을 거닐어 본다.

전주한옥마을에 가면 먼저 오목대에 오르자

10분 정도면 오를 수 있는 나지막한 언덕, 그곳에 특별한 정자가 있다. 바로 오목대다. 언덕 위 아늑하게 자리한 오목대는 조선의 처음과 마지막 심정이 고스란히 담겨있는 곳이다.

고려 우왕 6년인 1380년, 이성계가 이곳을 다녀갔다. 남원 황산에서 왜구를 정벌하고 개선하는 길, 본향인 전주에 들러 종친들과 전승축하잔치를 벌였던 곳이다. 이성계는 그 자리에서 한나라 유방이 불렀다던 대풍가를 읊었는데, 자신의 새로운 나라를 세우겠다는 뜻을 나타낸 것이었다. 훗날 조선왕조를 개국하고 이곳에 정자를 짓고 오목대라 이름 붙인 것이다.

전주한옥마을은 전통과 현대가 조화롭게 어우러진 곳이다.

좁은 골목 사이사이에 스며든 옛 정취가 정겹게 다가온다.

오목대는 이성계가 남원 황산에서 왜구를 정벌하고 개선하는 길에 종친들과 전승축하잔치를 벌인 곳이다.

이곳에는 고종황제의 친필이 새겨진 비석도 함께 세워져 있다. 태조가 잠시 머물렀던 곳이라는 뜻의 ‘태조고황제주필유지’라는 비문을 보고 있자니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한 왕조의 막을 내리는 황제가 그 나라의 문을 연 선조가 머물렀던 자리에 글을 새기는 심정은 어땠을까.

새로운 나라에 대한 야망과 쇠퇴해 가는 왕조를 중흥시키고자 했던 간절한 마음이 담겨있는 낮은 언덕이 처연하게 다가오는 듯하다. 오목대는 흐릿해져 가는 역사의 향기가 가슴 깊이 스며드는 곳이라 할 수 있다.

오목대는 한옥마을 풍경을 한눈에 담을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언덕 중턱에 설치된 조망대에 서면 기와지붕과 처마 곡선이 만들어내는 아름다움이 마음을 사로잡는다. 도심 한복판에 의연하게 자리 잡은 한옥마을의 풍경을 오롯이 느낄 수 있다.

태조로를 따라 역사가 흐른다

오목대에서 내려오면 한옥마을을 관통하는 태조로를 만나게 된다. 태조로를 따라 풍남문 방향으로 400m 정도 가면 경기전에 도착한다. 경기 전 정문 앞에는 두 마리의 사자가 위풍당당하게 서 있다. 하마비(下馬碑)다.

경기전 본전에는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의 초상화가 모셔져 있다.

경기전 내에 있는 어진박물관에서는 개관 4주년을 맞이해 조선 태조 어진 진본을 오는 23일까지 특별 전시한다.

전동성당에서 동쪽으로 100여m 떨어진 곳에 풍남문이 우뚝 서 있다. 옛 전주부성의 성문 가운데 유일하게 보존되고 있는 보물이다.

계급의 높고 낮음과 신분의 귀천을 떠나 이곳을 지날 때는 누구라도 말에서 내려야 하며, 잡인들의 출입을 금한다는 내용이 담겨있다. 특히 이곳의 하마비는 여느 하마비와는 다른 모습이다. 한 쌍의 사자가 판석을 받치고 있고, 그 위에 비를 세워놓았다. 경기전이 조선왕조를 건국한 이성계의 어진을 봉안한 곳이기에 수문장으로서 하마비의 위용이 남다르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경기전에는 태조의 어진(왕의 초상화)을 모신 본전 외에도 전주 이씨 시조 이한과 시조비 경주 김씨의 위패를 봉안한 조경묘가 함께 있다. 그뿐만 아니라 조선왕조실록 등을 보관했던 전주사고, 예종의 탯줄을 묻은 태실 그리고 어진박물관 등이 자리한다. 어진박물관에는 태조의 어진을 비롯해 세종, 영조, 정조, 고종, 순종 임금의 초상화가 전시돼 있어 가까이에서 용안을 마주 대할 수 있다.

특히 오는 23일까지 어진박물관에서 ‘태조 어진 진본 특별전’이 열린다. 어진박물관 개관 4주년을 맞아 모사본이 아닌 진본이 전시되는 것이다. 태조 어진 진본을 비롯해 어진 뒤에 놓였던 일월오봉도, 의식구인 용선과 봉선 진본도 함께 만나볼 수 있다. 경기전 태조 어진은 현존하는 태조 이성계의 유일한 초상화로 지난 2012년 국보 317호로 승격됐다.

경기전 맞은편의 전동성당도 빼놓지 말자. 우리나라에서 아름답기로 손꼽히는 성당 중 하나다. 호남지역 서양 건축물 중 가장 규모가 크고 오래된 것으로 로마네스크 양식의 웅장함을 보여준다.

하지만 아름다움 속에 아픈 역사도 함께한다. 한국 천주교의 첫 순교자가 나온 장소이기 때문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집전한 124위 시복식의 대표 순교자 윤지충 바오로가 바로 이곳에서 참수되었다.

전동성당은 호남지역 서양 건축물 중 가장 규모가 크고 오래된 것으로 로마네스크 양식의 웅장함을 보여준다.

전동성당에 세워진 '한국 최초 순교터' 비석이 씁쓸하게 다가온다.

전동성당은 순교자들의 피로 물든 성벽의 돌들을 가져다 주춧돌로 사용했다고 한다. 지하에서 성당을 떠받치고 있는 돌에는 얼마나 많은 사연이 스며들었을까. 성당 앞 ‘한국 최초의 순교터’라는 비석이 씁쓸하게 다가온다.

오목대에서 경기전으로 이어지는 태조로를 걸어왔다면, 이제 한옥마을의 남북을 가로지르는 은행로를 걸어볼 차례다. 수령 600년이 넘는 은행나무가 버티고 선 은행나무 길에는 조그마한 실개천이 흐르며 발동무가 되어준다.

사부작사부작 거닐며 전시관과 문학관, 체험관, 박물관 등을 찾아다니는 재미가 쏠쏠하다. 골목을 따라 조금 더 들어가면 또 다른 세상이다. 좁은 골목 사이사이 스며든 세월의 향기가 옛 정취를 고이 간직한 채 기다린다. 돌담 너머 누군가의 살림집 마당을 염치도 없이 훔쳐보게 된다.

민족의 자긍심을 품고 있는 한옥마을

전주한옥마을은 어떻게 조성되었을까. 그 역사적 배경을 알고 떠난다면 더 의미 있는 여행이 되지 않을까 싶다. 전주는 후백제의 마지막 수도이자 조선왕조의 발상지로 역사의 중심이 되어온 곳이다. 그 오랜 세월 속에 녹아든 역사는 가늠할 수 없을 만큼의 깊이를 지니고 있다.

풍남동과 교동 일대에 걸쳐 700여 채의 한옥이 옹기종기 모여 한옥마을을 이룬다.

그 역사의 중심에 한옥마을이 있다. 하지만 우리가 만나는 한옥마을은 1930년을 전후로 조성된 한옥촌이다. 일제 강점기 자긍심의 표출로서 지금의 마을을 이루게 된 것이다.

1905년 일본이 강제로 을사늑약을 체결한 이후 전주에도 일본인들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전주성 바깥쪽 전주천 언저리에 거주했으나, 양곡 수송을 위한 전군가도가 개통되며 성곽이 강제 철거되었고 일본인들이 성안으로 진출하게 된 것이다. 그렇게 세력을 확장한 일본인들이 전주 최대의 상권을 차지하고 만다.

이에 대한 반발로 1930년을 전후해 교동과 풍남동 일대에 전통가옥을 짓기 시작한 것이다. 점점 늘어나는 일본식 건물에 맞선 항일의식의 표현이라 볼 수 있다. 전주한옥마을은 조선왕조의 뿌리이기도 하지만 암울한 시대를 헤쳐나가려는 저항의 상징으로도 여겨진다.

찬란한 역사를 이어가고 있는 전주한옥마을. 전통과 현대가 어우러진 풍경 속에 수많은 이야기가 흐르고 있다. 전주한옥마을에서는 서두르지 말고 조금 천천히 걷자. 그래야 더 많은 것을 보고 느낄 수 있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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