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시 달린 흑장미의 앙탈 - 애증의 여행지 담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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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시 달린 흑장미의 앙탈 - 애증의 여행지 담양
  • 최진선
  • 승인 2014.10.10 15:2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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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꿔왔던 담양 여행. 메타세쿼이아 길을 걷고 금성산성의 노을을 본 담양에서의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 본다. 사진 / 최진선
꿈꿔왔던 담양 여행. 메타세쿼이아 길을 걷고 금성산성의 노을을 본 담양에서의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 본다. 사진 / 최진선

오랜 날을 담양을 꿈꾸었습니다. 쭉쭉 뻗어 올라간 메타세쿼이아 길을 걷고 싶었고. 금성산성에 올라 담양호에 걸린 노을을 보고 싶었습니다.

대나무 사이로 불어오는 바람, 댓잎 부딪는 사이로 아스라이 쏟아지는 햇살을 머금고 싶었으며, 호수 곁에 오뚝하니 서 있는 정자를 감싸 안곤 꿈결처럼 아련히 피어올린 배롱나무꽃으로 물든 명옥헌원림을 애타게 보고 싶었습니다. 물론 대나무 통 밥이니 떡갈비니 시장의 국수까지 먹을거리는 또 얼마나 눈에 아른거리던지요.

드디어 화창하고 날씨 좋은 어느 주말 담양으로 출발했습니다. 교통체증과 뙤약볕에 불타오르는 아스팔트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여느 날처럼 휴게소에 들러 음식을 먹고 냉커피에 피로를 씻으며 긴긴 차량의 숲을 헤쳐 내려갔습니다.

► 대나무 사이로 불어오는 바람, 댓잎 부딪는 사이로 아스라이 햇살이 머금어 온다.

► 시원스레 펼쳐지는 죽림원의 댓잎 소리에 도시의 스트레스를 날려 버리게 된다.

담양에 도착하자마자 덕인관 떡갈비를 게걸스레 먹어치웠습니다. 노릇노릇 익은 떡갈비로 찌든 피로와 갑갑함을 벗어던질 수 있었습니다. 늦은 감이 있긴 했지만 꿈에도 그리던 금성산성으로 발길을 옮겼습니다.

담양 온천을 지나 길을 잘못 들었을 때엔 너무 늦은 것이 아닌가 하는 마음에 조급하기도 했지만, 길을 물어가며 금성산성 입구에 다다랐습니다. 사람들 사이에 끼어 잠시만 오르면 금세 산성이라는 말만 믿고 네 식구는 들뜬 맘으로 산을 오르기 시작했습니다.

땀을 씻으며 얼마를 올랐을까. 작은 녀석은 업어달라고 조르기 시작합니다. 큰 녀석은 더 이상 올라가지 못하겠다며 앙탈을 부립니다. 해가 저물고 있었기 때문에 서둘지 않으면 산성의 일몰을 보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서둘러야 했습니다.

얼마를 올랐을까요. 드디어 힘겨운 고생 끝에 햇살에 불타오르는 금성산성을 마주 볼 수 있었습니다. 바위 위로 멋지고 근사한 산성이 산등성이에 우렁차게 들어앉은 모습이 얼마나 근사하던지요. 저녁노을에 물든 산성이랑 담양호에 젖어드는 노을의 풍경은 그야말로 고생의 선물처럼 후련했고 감동적이었답니다.

‘그래 바로 이 맛이야.’ 이런 설렘 이런 감동을 위해 여기까지 땀을 흘리면서도 포기치 않고 올라온 두 아이가 장하고 대견하였습니다. 이때까지야 얼마나 행복하고 뿌듯하던지요.

그런 황홀감도 잠시, 노을이 지고 난 산등성이는 매정하리만치 순식간에 어둠에 휘감겼습니다. 금세 감동은 두려움으로 바뀌고 제대로 된 등산 장비나 물통 혹은 랜턴도 준비못한 네 식구는 산성에 버려진 신세가 되었습니다.

► 사람들 사이에 끼어 잠시만 오르면 금세 산성이라는 말만 믿고 네 식구는 들뜬 맘으로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 해가 저물고 있었기 때문에 서둘지 않으면 산성의 일몰을 보지 못할까봐 서둘러 올라갔다.

주위를 둘러보니 인적은 없고 오로지 우리 식구뿐이었습니다. 어린아이 둘이랑 등산이라곤 해본 적도 없는 아내. 내려가는 길은 돌투성이에 암석으로 울퉁불퉁하여 잘못 디디면 미끄러지기에 십상이었습니다. 결국, 작은 아이는 등에 업고 큰 아이는 어미 손을 잡고 어두운 밤길을 등목이라도 한 듯 온몸이 땀에 젖은 채 기다시피 내려왔습니다.

어둠과 고요만이 가득한 산길에 서니 온갖 두려움이 꿈틀거립니다. 혹시 못된 사람들을 만난다면, 멧돼지라도 출몰하면 어떻게 하지? 부스럭 소리만 나도 등줄기엔 식은땀이 흘렀습니다.

노래도 하고 서로서로 무서움을 잊기 위한 이야기를 나누며 얼마를 내려왔을까요. 길고 험난한 암흑의 터널 끝에 도달한 것처럼, 멀리 가로등 불빛이 보입니다. 겨우 안심하고 아이를 내려놓으니 다리는 이리저리 할퀴고 까진 상처로 따끔거리고. 아이를 업고 내려온 덕에 어깨 허리 팔은 그야말로 마비가 된 듯 욱신거립니다.

그럼에도 무사히 내려왔다는 안도감은 더할 나위 없는 평안함을 가져다줍니다. 이후로 해 질 녘의 산은 두려움의 존재로 남게 되었습니다.

피로와 허기에 지친 우리는 배를 채우기 위해 어두운 밤거리를 뒤졌으나 한밤중이라 식당가는 모두 문을 닫았습니다. 가로등만 외로운 골목길을 헤맨 끝에 겨우 사정사정하여 늦은 저녁을 먹게 되었습니다. 코로 들어갔는지 입으로 들어갔는지도 모르리만큼 허둥지둥 야식인지 저녁인지를 마무리합니다.

꿈에 그리던 포근하고 따스하며 안락한 방. 바비큐 파티를 벌이며 와인도 한 잔 곁들여 행복한 저녁을 먹은 후 대나무 숲이랑 메타세쿼이아 길을 거닐겠다는 야무진 꿈은 피워보지도 못했습니다. 대신 땀에 전 모습으로 쉰 냄새를 풀풀 풍기며 잠자리를 찾으러 자정이 다된 야밤에 지지리 궁상맞은 모습으로 어두운 담양의 밤거리를 이 골목 저 골목을 헤매야 했습니다.

► 시내 모든 숙박시설이 만원이었습니다. 자정이 훨씬 넘은 시각이 되어서야 겨우 모텔 방을 잡을 수 있었다.

► 자정이 다된 야밤에 지지리 궁상맞은 모습으로 어두운 담양의 밤거리를 이 골목 저 골목을 헤매야 했다.

배가 부르니 피곤이 몰려오며 두 눈은 자꾸만 감기고 아무 데고 곯아떨어져야 할 터인데 주말의 담양은 방 구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였습니다. 시내 모든 숙박시설이 만원이었습니다. 자정이 훨씬 넘은 시각이 되어서야 겨우 모텔 방을 잡을 수 있었습니다.

그나마 방이 넓은 것이 고생의 보상인 듯해서 아주 마음에 들었습니다. 땀에 절은 식구들은 차례로 샤워하고 침대며 방바닥에 참으로 처량한 모습으로 널브러졌습니다. 그런데 이 피곤에도 도무지 잠을 이룰 수가 없었습니다. 여기 따끔 저기 따끔 윙윙 붕붕. 깜짝 놀라 불을 켠 순간 경악하지 않을 수 없었으니.

벽의 여기저기엔 핏자국이 난무했고 곁엔 무수한 주검이 들러붙어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말만 한 모기들의 사체였던 것입니다. 불을 켜자마자 윙윙거리며 날아다니는 모기들은 그야말로 파리처럼 통통했고 시커먼 것이 공포 그 자체였습니다.

더구나 아내는 모기에 물리면 벌에라도 쏘인 듯 붓는 체질이라 모기라면 더없이 두려워하는 터였습니다. 우리 부부는 더 이상 참을 수 없었습니다. 피곤을 무릅쓰고 벌떡 일어서 방석이니 안내책자를 마구 휘두르며 모기와의 전면전을 치르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방이 얼마나 넓은지 서너 마리 잡은 후로는 도무지 어디에 녀석들이 숨었는지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불을 끄면 달려들고 불을 켜면 쏜살같이 숨어버리는 하이에나 같고 미꾸라지 같으면서도 흡혈귀 같은 괴물들. 우리 네 식구는 그날 모기의 제물이 되어 대나무 아래를 거니는 해맑은 꿈결 사이사이로 흡혈귀에 물어뜯기는 악몽에 시달리며 비명을 질러대곤 했습니다.

그뿐이랴 창가에 설치된 에어컨 실외기 소리는 얼마나 우렁차던지 마치 탱크 지나가는 소리에 금방이라도 망가질 듯 울어대는 굉음으로 그토록 피곤한데도 도무지 잠을 이룰 수가 없었습니다. 모기는 물어대고 실외기는 울어대는 가운데 새벽 깊은 어느 모퉁이에서야 비몽사몽 간에 탱크 소리는 자장가 소리로 모기의 물어뜯음은 안마처럼 느껴질 즈음에서야 지쳐 쓰러져 혼미한 꿈에 이르게 되었답니다.

세월이 어디로 가든 여행지의 일들은 이따금 흘리고 지나는 농담처럼 잊히게 마련입니다. 그래선지 이튿날의 여행은 더없이 싱그럽고 아름답기 그지없었습니다. 메카세쿼이어길에서의 자전거 타기랑 아름드리나무 사이를 거니는 기쁨. 맑은 공기 사이로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쭉쭉 뻗은 나무들은 얼마나 이국적이며 통쾌하던지요.

관방제림을 거닐며 세월을 흡입하고 시원스레 펼쳐지는 죽림원의 댓잎 소리 대나무 사이를 비집고 내려앉은 한 모금 해맑은 빛깔 사이를 거니는 달달한 맛. 꿈결처럼 펼친 채 절정을 맞은 명옥헌원림의 연못과 정자를 뒤덮은 배롱나무꽃까지 가슴 저리게 아름답고 경이로운 풍경. 소쇄원의 맑은 물과 청아한 냇물, 정자와 가사문학의 아름다움이 스민 담양은 이제껏 느껴보지 못한 행복이었고 경이로움이며 찬란한 자랑거리였답니다. 그런 담양의 마지막 가시가 또 나타날 줄이야.

► 언젠가는 럭셔리하게 다가서서 포근하게 담양을 꼭 안아줄 날을 기다리고 있다.

담양을 떠나기 전에 우리는 담양에 온 것을 기념하는 대나무 기념품을 사고자 하는 생각에 담양 시내로 들어갔습니다. 시내를 돌아보던 중 방금 지나친 아주 예쁜 기념품 상점을 다시 살펴보려고 뭣에 홀리기라도 한 듯 후진을 하다가 뭔가 부딪치는 느낌에 차를 세웠답니다. 뒤따라오던 차량을 후진하며 들이받은 것입니다.

부리나케 차에 내려 뒤로 가보니 택시기사 아저씨가 목덜미를 잡고 내리십니다. 흠집도 없이 살짝 부딪혔건만 나이 지긋한 아저씨는 ‘하루 일당 다 날렸다느니, 오늘 운전하긴 다 글렀다느니’ 하며 위아래를 훑어봅니다. 아무리 사정을 해도 매정한 아저씨는 하루 일당과 수리비를 달라십니다.

결국, 아내 말대로 이만하길 또 다행이라 여기며 지갑을 내보이며 집에 돌아갈 여비를 탈탈 털어주고야 말았습니다. 담양이라는 흑장미의 가시는 끝까지 매서웠습니다. 어찌 되었건 깜짝 놀란 아이들을 달래기 위해 사고를 내게 한 예쁜 상점에 들어갔습니다.

큰 아이는 물레방아처럼 빙글빙글 돌아가는 대나무 호루라기를, 작은 아이는 대나무 활을 샀답니다. 사정을 모두 보신 주인아주머니께선 몇 푼을 깎아주시며 위로해 주십니다.

그 물건이 지금도 딸아이 방에 대롱대롱 매달린 것을 볼 때면 쓴웃음이 나곤 한답니다. 어떻게 올라왔느냐고요?

휴게소에선 물로 배를 채우고 남들 음식 먹는 모습이랑 고소한 냄새에 군침만 삼키다간 별 없는 밤하늘 한 번 쳐다보곤 집까지 미친 듯 달려왔답니다. 하지만 정자와 대나무 아름다운 산성이랑 메타세쿼이아 푸름에 둘러싸인 담양은 비록 가시를 지닌 흑장미처럼 까칠할지라도 아직 우리 가족 가슴 어느 곳엔가 매콤달콤하게 남아있답니다. 애증이 가득한 여행은 설렘으로, 아련한 그리움으로 가슴 한편을 차지하게 마련이랍니다.

언젠가는 럭셔리하게 다가서서 포근하게 담양을 꼬~옥 안아줄 날이 오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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