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황방문] 천주교의 요람 ‘솔뫼성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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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방문] 천주교의 요람 ‘솔뫼성지’
  • 김대성
  • 승인 2014.08.11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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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뫼성지는 한국의 첫 사제인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의 탄생지다. 교황 방문을 계기로 김대건 신부의 명예와 솔뫼성지의 종교적 가치는 더욱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 사진 / 김대성 기자
솔뫼성지는 한국의 첫 사제인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의 탄생지다. 교황 방문을 계기로 김대건 신부의 명예와 솔뫼성지의 종교적 가치는 더욱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 사진 / 김대성 기자

오는 15일 오후, 프란치스코 교황이 ‘솔뫼성지’를 찾는다. 방한의 가장 큰 목적인 천주교 아시아 청년대회를 위해서다. 이곳에서 아시아 젊은이 8천여 명을 만나 특별한 메시지를 전달하게 된다. 특히 솔뫼성지는 한국의 첫 사제인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의 탄생지라는 점에서 그 의의가 더 크다고 할 수 있다. 프란치스코 교황 방문에 앞서 충청남도 당진시 우강면에 위치한 '솔뫼성지'를 찾았다.

천주교의 요람이자 한국의 베들레헴 '솔뫼성지'

‘솔뫼’는 소나무로 이루어진 산, 즉 송산(松山)을 뜻한다. 천주교 성지가 많은 내포지역의 한가운데 자리한 국내 제1의 가톨릭 성지다. 우리나라 최초의 신부가 태어나 신앙의 지표를 싹 틔운 곳으로 '한국의 베들레헴'으로 불린다.

► 솔뫼아레나는 야외 미사와 음악회 연극 등의 행사를 할 수 있는 원형공연장으로 12사도상이 둘러싸고 있다.

► 기념전시관에는 박해당하는 모습을 인형으로 재현해 놓았다.

► 기념전시관에서는 라틴어로 쓴 친필편지와 중국어 일기 등을 볼 수 있다.
 
솔뫼성지 입구에는 산을 형상화한 문이 세워져 있다. 견고한 모습의 돌문은 세상의 모든 욕심을 내려놓고 마음을 비워내야 들어갈 수 있을 것만 같다. 안으로 들어서면 웅장함보다는 차분하고 부드럽게 펼쳐진 공간이 발걸음마저 조심스럽게 한다.

가장 먼저 시선을 끄는 것은 ‘솔뫼아레나’다. 야외 미사와 음악회, 연극 등의 행사를 할 수 있는 야외 공연장으로 12사도상이 둘러싸고 있다. 가톨릭교회가 12사도로부터 이어져 왔다는 김대건 신부의 마지막 회유문의 정신을 본받고 있음을 보여주는 듯하다.

순교의 피를 상징하는 붉은색 외벽의 기념관에서는 김대건 신부의 생애와 당시 한국 교회의 상황을 엿볼 수 있다. 이와 함께 21편의 친필 편지와 박해보고서, 일기, 초상화 등이 전시돼 있다. 5개 국어에 능통했던 것으로 알려진 김 신부의 라틴어 편지와 중국어로 쓰인 일기가 인상적이다.

김대건 신부 집안은 4대에 걸쳐 11명의 순교자 배출

소나무 숲을 따라 이어진 ‘십자가의 길’은 순례자가 편안하게 기도할 수 있도록 조성되었다. 그리스도의 수난과 죽음에서 일어난 14개 사건을 묵상하며 거니는 길 끝에서 김대건 신부의 동상을 만나게 된다. 도포와 갓을 갖추고 영대를 두른 동상 뒤로 성모의 모습을 의미하는 하얀 탑이 감싸고 있다. 순교 100주년을 맞이하며 세워진 순교기념비와 성인비가 동상 옆으로 함께 세워져 이곳이 성지임을 다시 한 번 깨닫게 한다.

► 도포와 갓을 갖추고 영대를 두른 김대건 신부 동상 뒤로 성모의 모습을 의미하는 하얀 탑이 감싸고 있다.

► 십자가의 길 입구에는 15m 높이의 예수십자가상이 순례객을 맞이한다.

► 십자가의 길은 각각의 의미를 지닌 14처로 조성돼 있다.

숲길을 돌아내려 오면 김대건 신부의 생가가 있다. 생가터에서 발굴된 기와 조각과 정확한 고증에 의해 2004년 복원된 곳이다. 현재 성체조배실로 개방하고 있으며, 김대건 신부의 초상화가 자애로운 모습으로 순례자를 반겨준다. 야트막한 언덕 위로 그가 태어나기 전부터 솔뫼마을을 굽어보았던 소나무가 여전히 자리를 지키며 역사를 보듬고 있다.

1821년 솔뫼에서 태어난 김대건은 15세 때 마카오로 유학하여 신학을 공부하고, 1845년 상해에서 사제품을 받게 된다. 그 후 천주교 탄압이 심했던 조선으로 돌아와 온갖 핍박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고난의 길을 걸었던 인물이다. 선교활동에 전념하다 1846년 9월 새남터에서 군문효수형을 받고 순교한다. 이때 그의 나이 26세로 사제 생활 1년 1개월 만의 일이다.

그 후 1925년 교황 비오 11세에 의해 복자로 선포되고, 1984년 5월 6일 한국천주교 200주년을 기념해 방한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로부터 성인품에 오르게 된다.

► 생가 앞에는 한복을 입고 비녀를 꽂은 성모상이 눈길을 끈다.

► 솔뫼성지에는 김대건 신부의 생가가 복원되어 있다. 1998년 충청남도는 성 김대건 신부 생가터를 충남도 지방문화재 제 146호 기념물로 지정했다.

► 생가 뒤 야트막한 언덕위로 그가 태어나기 전부터 솔뫼마을을 굽어보았던 소나무가 여전히 자리를 지키고 있다.

이번 8월 16일 진행되는 광화문 시복 미사에서는 김대건 신부의 증조할아버지와 작은할아버지도 복자품에 오른다. 이에 앞서 1984년 김대건 신부와 함께 성인으로 시성된 그의 아버지까지 김대건 신부 집안은 4대에 걸쳐 11명의 순교자를 배출한 천주교 신앙의 명가로 이름을 알리고 있다.

솔뫼성지는 김대건 신부의 발자취와 생애를 한눈에 확인할 수 있는 곳으로 순교자의 고향으로 여겨진다. 그의 순교를 추모하고 가톨릭 정신을 계승하기 위해 순례자의 발길이 쉴 새 없이 이어지고 있다. 교황 방문을 계기로 그의 명예와 솔뫼성지의 종교적 가치는 더욱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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