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 리포트] 외국인 823만 명이 서울에서 5조6000억 원 썼다…'관광객 수'보다 '소비력'이 도시 경쟁력을 바꾸고 있다
-관광객은 21% 늘었지만 소비는 57% 급증…K-콘텐츠·의료·미식·로컬문화가 이끈 서울 관광의 질적 도약 -"얼마나 많은 관광객이 왔는가"보다 "얼마나 오래 머물며 얼마나 소비했는가."
[트래블바이크뉴스=김효설 기자] 세계 관광도시 경쟁의 기준이 바뀌고 있다. 과거에는 연간 방문객 수가 도시의 성적표였다면, 이제는 관광객 1인당 소비와 체류일수, 지역경제 파급효과가 경쟁력을 가르는 핵심 지표가 됐다.
서울시가 발표한 올해 상반기 외국인 관광 통계는 이러한 변화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올해 1~6월 서울을 찾은 외국인 관광객은 823만 명으로 지난해보다 21.3% 증가했다. 하지만 더 눈길을 끄는 수치는 카드 소비액이다. 같은 기간 외국인 카드 소비는 5조6172억 원으로 무려 56.8% 늘었다. 관광객 증가 속도를 훨씬 뛰어넘는 소비 확대다.
이러한 수치는 단순한 회복이 아닌 서울관광의 '질적 전환'으로 해석한다.
숫자가 말하는 변화…서울은 이제 '많이 오는 도시'보다 '많이 쓰는 도시'를 지향한다
관광산업은 코로나19 이후 빠르게 회복했지만, 세계 주요 관광도시들의 과제는 단순한 방문객 회복이 아니었다.
방문객이 지역경제에 얼마나 기여하는지가 더 중요해졌다.
서울의 올해 상반기 성적은 이를 그대로 보여준다.
외국인 1인당 카드 소비액은 지난해 상반기 약 53만 원에서 올해 약 68만 원으로 29.3% 증가했다. 월별 카드 소비도 4월 처음 1조 원을 돌파한 뒤 5월과 6월까지 3개월 연속 1조 원대를 유지했다.
이는 관광객이 서울에서 머무는 시간이 길어지고, 소비 활동도 쇼핑을 넘어 다양한 분야로 확장되고 있음을 의미한다.
관광산업에서는 이를 '고부가가치 관광'으로 평가한다. 단순한 경유형 여행이 아니라 체험과 소비를 결합한 체류형 관광이 정착하기 시작한 것이다.
'쇼핑 도시'를 넘어 '라이프스타일 관광도시'로
서울은 오랫동안 명동과 동대문, 면세점을 중심으로 한 쇼핑 관광의 도시였다.
물론 쇼핑은 여전히 외국인 소비의 46.4%를 차지하는 핵심 분야다. 그러나 소비 구조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변화는 뚜렷하다.
의료·웰니스 소비가 전체의 24.4%를 차지하며 쇼핑과 함께 전체 소비의 70% 이상을 이끌고 있다.
특히 증가율은 더욱 인상적이다.
△대형쇼핑몰 소비 73.2% 증가 △의료관광 소비 63.3% 증가 △외식 소비 54.5% 증가 △뷰티 소비 40.0% 증가 등 이들 업종은 모두 체류시간이 길수록 소비가 커지는 분야다.
과거처럼 면세점에서 물건만 구매하고 떠나는 관광객보다 의료 시술을 받고, 맛집을 찾고, 미용 서비스를 경험하며 며칠 더 머무는 관광객이 늘고 있다는 의미다.
서울 관광의 경제적 가치가 높아지고 있다는 신호이기도 하다.
관광객의 동선이 달라졌다…명동에서 성수, 관광지에서 골목으로
소비 지역도 변화하고 있다.
강남과 중구는 여전히 외국인 소비의 중심이지만, 홍대와 성수를 비롯한 지역으로 관광객 발길이 꾸준히 확대되고 있다.
이는 최근 세계 관광시장에서 가장 주목받는 키워드인 '로컬 경험(Local Experience)과 맞닿아 있다.
이제 외국인 관광객은 유명 관광지를 인증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성수동 골목을 걷고, 연남동 카페에서 시간을 보내고, 망원시장을 둘러보며 서울 시민의 일상을 경험하려 한다.
서울 도보해설관광 참여자 가운데 외국인이 35%를 차지한 것도 이러한 흐름을 보여준다.
관광은 더 이상 명소를 소비하는 것이 아니라 도시의 라이프스타일을 소비하는 산업으로 변하고 있다.
한강의 변신…'경유형 명소'에서 '체류형 관광 플랫폼'으로
서울 관광에서 가장 극적인 변화는 한강이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한강은 사진을 찍고 잠시 머무는 장소에 가까웠다.
하지만 서울스프링페스티벌, 한강 드론 라이트 쇼, 서울달, 수상교통, 공연, 야간 콘텐츠가 더해지면서 한강은 하루를 보내는 체류형 관광지로 변모했다.
서울스프링페스티벌에는 외국인 117만 명을 포함해 총 706만 명이 방문했고, 행사 기간 한강버스 선착장 입점업체 매출은 전년보다 257% 증가했다.
관광 콘텐츠가 주변 상권까지 연결되면서 지역경제를 견인하는 구조가 만들어지고 있는 것이다.
서울 관광의 다음 승부수는 '고부가가치 시장'
서울시는 하반기부터 의료관광과 MICE, 프리미엄 관광을 핵심 성장축으로 삼는다.
의료관광은 진료와 숙박, 관광을 하나로 연결하는 원스톱 플랫폼을 구축하고, 의료관광 통역 코디네이터를 108명에서 1,000명으로 확대한다.
국제회의 참가자를 대상으로는 업무와 여행을 결합한 '블레저(Bleisure)' 프로그램을 확대해 체류일수를 늘릴 계획이다.
또 럭셔리 관광시장 공략도 강화한다. 최근 개최한 '익스플로어 서울 위드 커넥션스'에서는 11개국 바이어와 620건의 비즈니스 상담이 이뤄지며 프리미엄 관광상품의 해외 판로 확대 가능성을 확인했다.
이들 분야의 공통점은 관광객 수보다 1인당 소비가 훨씬 높다는 점이다.
세계 관광도시와의 경쟁, 이제는 '체류와 소비'가 승부처
세계 주요 관광도시들은 이미 관광의 양보다 질을 강조하고 있다.
도쿄는 애니메이션과 미식, 지역 상권을 결합한 체험형 관광을 확대하고 있으며, 싱가포르는 복합리조트와 국제회의 산업을 중심으로 고소득 관광객 유치에 집중한다. 방콕은 미식과 웰니스, 의료관광을 결합해 체류형 소비를 늘리는 전략을 펼치고 있다.
서울도 K-팝과 K-드라마, 뷰티, 의료, 미식, 한강, 골목상권이라는 차별화된 자산을 하나의 관광 경험으로 연결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변화가 지속된다면 서울은 단순한 방문 도시를 넘어 아시아를 대표하는 고부가가치 관광도시로 도약할 가능성이 충분하다.
관광객 숫자보다 중요한 것은 '서울에서 무엇을 경험했는가'
이번 상반기 통계는 서울 관광이 양적 회복을 넘어 질적 성장 단계에 진입했음을 보여준다.
특히 관광객 증가율보다 소비 증가율이 두 배 이상 높았다는 점은 서울이 '많이 찾는 도시'에서 '많이 소비하는 도시'로 전환되고 있음을 의미한다.
그러나 과제도 남아 있다. 현재 외국인 소비의 상당 부분은 강남과 중구 등 특정 권역에 집중돼 있다. 앞으로는 성수, 을지로, 망원, 서촌, 문래 등 개성 있는 지역 상권과 야간관광, 미식, 공연, 웰니스를 더욱 촘촘하게 연결해야 소비가 서울 전역으로 확산될 수 있다.
서울의 경쟁력은 더 이상 랜드마크의 숫자에 있지 않다. 관광객이 서울에서 어떤 하루를 보내고, 얼마나 오래 머물며, 어떤 기억을 가지고 돌아가는지가 도시의 미래를 결정한다.
상반기 5조6000억 원의 관광 소비는 그 변화의 출발점이다. 이제 서울 관광의 다음 목표는 방문객 1,000만 명이 아니라, 세계 어디와 비교해도 경쟁력 있는 '체류형ㆍ고부가가치 관광도시'를 완성하는 데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