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화도] 심도역사문화길 제1코스의 매력

심장부에서 마주하는 고려궁지, 용흥궁, 강화산성, 북장대

2015-04-07     조용식 기자
고려와 조선의 아픈 역사와 문화유산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강화의 심장부에서 시작되는

[트래블바이크뉴스=강화] 강화의 심장부인 강화읍은 고려와 조선의 뼈아픈 역사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곳이다. 강화군은 이 아픈 역사를 새롭게 조성하기 위해 강화 버스터미널에서부터 고려궁지, 용흥궁, 북문, 북장대, 갑곶성지, 갑곶돈대까지를 '심도역사문화길 제1코스'에 포함시켰다.

'심도역사문화길 제1코스'는 강화군의 오랜 역사를 하나하나 마주하는 소중한 곳이다. 여행작가 이동미 씨는 강화도의 지도를 펼치며 이렇게 말한다.

"지도에 녹색으로 표시된 것은 오래전부터 있던 산이고, 그 주위로 감싸고 있는 노란색은 고려 시대 저습지를 간척해서 오늘날 강화군으로 조성된 것이다. 고려 고종이 강화도로 도읍을 옮기면서 사실상 인공평야를 개척하게 된 것이다."

고려궁지를 찾은 학생들이 외규장각 앞에서 고려 고종에서 조선의 역사에 대한 설명을 듣고 있다.
강화유수부 동헌은 조선 시대 강화의 행정 책임자인 유수가 업무를 보던 건물이다. 건물구조는 정면 8칸, 측면 3칸의 팔작지붕 겹처마 단층집이다.
부부로 보이는 관광객이 고려 궁지를 배경으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외규장각은 국가 주요 행사 기록을 담은 의궤 외에도 족보, 도장을 비롯한 왕실 관련 문서가 다수 소장되어 있었다. 외규장각에는 왕의 가마를 중심으로 그려진 의궤(사진)가 전시되어 있다.

그래서 강화 여행의 시작은 고려궁지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고려 고종은 1232년 몽골의 침략으로 수도를 강화로 천도하게 된다. 이후 고려의 궁궐이 건립되고, 대몽항쟁기인 39년간 이곳에서 조정을 돌보게 된다.

그러다 1270년 몽골과의 화친으로 개성으로 환도한 고려는 아쉽게도 몽골의 요구로 39년간 사용했던 '고려궁지'의 궁궐과 성곽을 모두 파괴되고 만다. 조선 시대에는 고려궁궐의 터인 '고려궁지'에 여러 관청건물을 세우지만, 병자호란으로 소실되고 만다.

이후 인조는 왕의 행차 시에 머무는 행궁과 유수부 동헌, 이방청을, 숙종은 장년전, 만녕전을, 그리고 정조는 왕립도서관인 외규장각을 건립하지만, 병인양요로 또다시 불타게 된다. 현재 '고려궁지'는 유수부 동헌, 이방청, 강화동종, 외규장각 등이 복원되어 있다. 

걷는 코스로 따지자면 대한성공회 강화성당과 용흥궁을 먼저 둘러보는 좋다.

조선의 철종이 왕위에 오르기 전에 거처했던 잠저인 '용흥궁'에서 해설을 듣고 있는 부평도서관 여행작가 독서회 회원들.
용흥궁의 별전 앞에 장독대가 세워져 있다.
용흥궁의 사랑채인 외전은 정면 6칸으로 된 팔각지붕으로 만들어졌다.
용흥궁 외전 바로 옆에는 뒤뜰과 외부로 이어지는 돌계단이 놓여 있다.

'용흥궁'은 조선 시대의 철종이 왕위에 오르기 전에 거처했던 잠저(潛邸)로 철종 4년에 지금과 같은 건물을 짓고 '용흥궁'이라고 불렀다. 좁은 골목 안에 대문을 세우고 행랑채를 두고 있어 창덕궁 낙선재와 같이 소박한 분위기를 풍기는 곳이다.

용흥궁 위로 세워진 '대한성공회 강화성당'은 1900년에 지어진 건물로 배의 형상을 한 것이 특징이다. 계단을 올라가면, '천주성전'이라고 적혀있는 성당건물을 마주한다. 이 건물은 사찰양식, 궁궐양식, 양반양식, 성당양식 등 4개의 양식을 모두 갖추고 있다.

사찰양식의 예로는 들어서면 바로 보이는 '천주성전'이다. 사찰에서는 대웅전, 극락전, 미륵전처럼 뒤에 성당이라고 표시하지 않고 '성전'으로 표기했다. 또한, 성전 입구를 들어오면서 지나치는 문은 마치 일주문, 천왕문의 양식을 그대로 빌려왔다. 그리고 성전에 내려쓴 글씨도 사찰양식의 하나이다.

궁궐양식으로는 지붕 위에 용두가 올라가 있으며, 양반집 양식은 벽에 홍살문 문양이 들어서 있으며, 근엄하고 웅장한 모습을 띠고 있는 것에서 알 수 있다. 가장 중요한 성당양식인 바실리카 양식은 성전 내부에 그대로 표현되어 있다.

배의 모양을 한 대한성공회 강화성당의 '천주성전'의 모습.
천주성전 뒤로는 사제단이 기거하는 곳으로 사용되는 건물이 있다.
천주성전은 사찰, 궁궐, 양반, 성당 등 4개이 양식을 모두 갖추고 있다.

천주성전 뒤로는 사제단이 머무는 숙소가 있는데, 이곳은 사람이 거처하는 관계로 깨끗하게 복원된 것을 알 수 있다. 마당에는 초대 교주인 고요한 신부를 포함한 3대 교주의 기념비가 세워져 있다.

강화군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있다면 바로 '강화산성'이다. 심도역사문화길 제1코스에서는 북문과 북장대를 만날 수 있다. 먼저 만나는 북문은 진송루란 현판이 붙어있으며, 그 옆으로 강화산성에 대한 소개가 적혀 있는 안내판이 있다.

이 안내판에는 고려 고종이 도읍을 강화로 옮기면서 궁궐과 함께 도성도 쌓았는데, 당시에는 흙으로 쌓았다가 조선 숙종에 이르러 현재와 같은 석성으로 이루어졌다고 적혀있다.

실제로 본 북문은 새롭게 복원한 흔적이 역력하다. 그 옆으로는 사라진 산성을 복원하기 위해 돌을 다듬는 소리가 한창이고, 복원된 길이는 약 150m 정도여서 아직도 오랜 기간에 걸쳐 복원이 이루어질 것으로 보인다.

강화산성의 찾은 관광객이 북문인 진송루를 지나 걸어가고 있다.
북문을 나오면 강화 나들길이 나온다.
강화산성 북문의 축성은 최근 복원이 이루어지고 있다.
북장대 터에서 멀리 강화의 평야 지대와 조강 그리고 북녘땅을 뒤로 하고 환하게 웃고 있는 부평도서관 여행작가 독서회원들의 모습.

마치 깔딱고개를 올라가듯 가파른 길이 나온다. 거친 숨을 몰아쉬고 올라가면 멀리 강화의 평야 지대와 함께 유유히 흐르는 조강이 보인다. 조강의 동쪽으로는 서울 김포가 북쪽으로는 북한 땅이 보인다. 이곳이 바로 북장대의 자리가 있던 터다.

높다란 석축 위에 세워졌던 '북장대' 터에는 화남 고재형 선생의 '북장대'라는 시가 세워져 있다. 바로 그 옆으로는 '심도역사문화길 제1코스'를 알리는 간판이 함께하고 있다. 심도(沁都)는 강화도의 또 다른 이름으로 고재형 선생이 강화도의 200여 마을을 돌며 기록한 기행문집의 제목에서 유래됐다고 한다.

강화를 처음 방문하는 여행자라면, 강화의 역사와 문화를 다시 느끼고 싶다면 따스한 봄기운과 함께 '심도역사문화길 제1코스'를 찾아 나들이를 떠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