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 역사의 도시, 중국 북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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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년 역사의 도시, 중국 북경
  • 김효설
  • 승인 2014.02.06 1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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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이 춤을 추는 듯 아름다워 관광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만리장성의 길이는 총 8851.8㎞이다.
용이 춤을 추는 듯 아름다워 관광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만리장성의 길이는 총 8851.8㎞이다.

[트래블바이크뉴스=북경] 김효설 기자  중국의 중심 베이징(北京, 북경)은 원(元), 명(明), 청(淸) 3개 왕조를 거쳐 오늘에 이르기까지, 중국의 수도로 그 위치를 굳건히 하고 있다.

웅장하고 화려한 중국의 문화와 역사의 자취가 도시 곳곳에서 오롯이 느껴지는 건 이 때문이다. 세월의 축적과 개혁개방 이후 가속화된 산업화는 베이징을 전통과 현대가 공존하는 문명의 전시장으로 만들었다.

이를 대변하듯 구시가지 골목인 후퉁(胡同)과 첨단 건축물의 조화는 베이징 특유의 풍경으로 자리잡았다. 베이징에는 중국 문화의 찬란함과 웅장함이 집약되어 있다. 이 집약된 매력을 풀어헤쳐줄 베이징의 핵심 명소들을 소개한다.

구석구석 황제의 흔적이 가득한 도시

베이징의 제일가는 명소는 톈안먼(天安門, 천안문) 광장. 세계 최대 규모의 시내 광장으로 관광객들이 베이징 입성 인증 촬영을 가장 많이 하는 장소다. 1919년 5•4운동을 비롯해 중국 현대사의 주요 사건들은 이곳을 무대로 삼아왔다.

톈안먼은 중국의 상징적인 건물로 1420년 완공 당시에는 ‘승천문(承天門)’이라고 불렀다. 지금의 톈안먼은 전란으로 소실된 것을 1651년에 복구한 것이다. 1949년 10월 1일 마오쩌둥(毛澤東, 모택동)은 이곳에서 중화인민공화국의 수립을 공식 선언했다.

이화원의 아름다움은 곤명호와 만수산에서 절정을 이룬다.

톈안먼과 함께 중국 상징에 있어 다른 한 축을 구성하는 것은 쯔진청(紫禁城, 자금성)이다. 명•청대의 궁전으로 중국에서 가장 뛰어난 건축물로 평가 받는다. 현재는 고궁, 즉 오래된 궁궐이라 부른다. 15세기 초 명의 3대 황제인 영락제가 난징(南京)에서 베이징으로 천도할 때 원대(元代)의 고궁 유적을 기초로 세웠다.

이러한 쯔진청이 세계적인 관광지가 된 데에는 영화 ‘마지막 황제’의 공이 크다. 화려하고 웅장한 황궁의 모습과 마지막 황제 푸이(溥儀)의 굴곡 많은 인생을 조명한 이 영화는 쯔진청에 대한 대중적인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계기가 됐다.

쯔진청의 중심에는 태화전(太和殿), 중화전(中和殿), 보화전(保和殿)이 자리하고 있다. 이 세 곳은 황제가 국가의식을 거행했던 장소로 베이징의 중심이기도 하다. 태화전은 중국 최대 목조 건축물로 특유의 화려함 때문에 금란전(金棄殿)이라고도 불린다.

베이징 서북쪽에는 황실의 정원이었던, 이허위안(顊和園, 이화원)이 있다. 여름 궁전으로도 불리는 이곳의 매력은 쿤밍후(昆明湖, 곤명호)에서 절정을 이룬다. 여기에 완서우산(萬壽山, 만수산)의 멋이 더해져 이허위안은 산색과 물빛이 어우러진 아름다움을 자아낸다.
 
완서우산은 높이 60미터 정도로 위엄 있는 자태 속에 화려함을 가득 품고 있다. 산세에 기대어 건물을 지은 장인들의 솜씨는 기이할 정도다. 한걸음 한걸음 올라갈 때마다 쿤밍후는 매번 새로운 모습으로 눈에 비치고, 보는 이들은 이 절경에 자연스레 매료된다.

베이징 북부 외곽의 바다링창청(八達嶺長城, 팔달령장성)은 만리장성에서 가장 대표적인 구간이다. 흔히 만리장성(萬里長城)이라고 부르나 중국에서는 그냥 장성(長城)이라고 한다.

북방 민족의 침략을 막기 위해 진나라 시황제 때부터 축조하기 시작했고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된 것은 명나라 때 이르러서다. 팔달령장성은 베이징에서 80킬로미터 정도 밖에 떨어지지 않은데다 용이 춤을 추는 듯한 아름다운 능선 때문에 관광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스차하이(什刹海, 십찰해)는 베이징의 색다른 매력을 느낄 수 있는 곳. 원나라의 세조 쿠빌라이 칸은 스차하이를 중심으로 베이징에 호수를 파고 운하를 연결했다. 이 호수와 운하는 국가의 세금을 베이징으로 가져오는 중요한 길이었다.

호수를 중심으로 들어선 중국의 전통 가옥들은 그림 같은 풍경을 연출한다. 전통의 고즈넉함과 호수의 고요함을 함께 누릴 수 있는 베이징의 명소다.

북경시의 중심에 위치한 명·청대의 황궁인 자금성에는  태화전, 중화전, 보화전이 있다

베이징 특유의 골목길을 뜻하는 ‘후퉁’은 원래는 몽골 말이다. 도시계획의 일환으로 원나라 때부터 조성되기 시작했다. ‘유명한 후퉁은 360개, 그리고 이름 없는 후퉁은 머리카락만큼 많다’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후퉁의 수는 매우 많다.

옛 사찰, 오래된 골목길, 명인들의 옛집 등 다양한 매력이 곳곳에 가득하다. 그 중 베이징의 전통가옥 쓰허위안(四合院, 사합원)을 둘러보는 골목길 여행은 필수 코스다.

베이징의 젊음을 느끼고 싶다면 싼리툰(三里屯, 삼리둔) 거리가 제격이다. 이곳에는 이국적인 노천 카페와 바가 즐비하다. 한국의 이태원 같은 곳이다. 불빛과 연주, 개성 넘치는 인테리어 그리고 몽롱한 분위기에 묻힌 채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들의 모습은 싼리툰의 단상이다.

달에서도 보인다는 만리장성

기원전 3세기에 이미 진시황은 북쪽 기마민족의 침략을 막기 위해, 막 정복한 군주들의 영토 사이에 상존하고 있던 성벽을 체계적인 성채로 증축하는 작업을 시작했고, 수백 년의 세월이 흐르면서 그 규모는 더욱더 커졌다.

이 성은 처음에는 흙벽과 나무 방책 그리고 쌓아 올린 바위덩이로 이루어진 방어 체계였다. 지금과 같이 긴 장벽은 몽골족을 물리치고 권력을 잡은 명나라 때 쌓은 것이다.

초원의 아들들은 13세기에 중국의 남쪽과 서쪽으로 영향력을 확대해 나갔으며, 마침내 한족이 다시 황제에 오르기까지 유라시아 대륙의 광활한 지역을 지배했다. 놀랄 만한 일도 아닌 것이, 이제 중국인들은 ‘북쪽의 야만족’을 막기 위한 튼튼한 장벽을 쌓은 것이다.

그 뒤로 길이가 차츰차츰 늘어나서 5만 킬로미터에 이르는 장성을 쌓았다고 하는데, 물론 이 길이는 정확히 확인된 수치는 아니다.

진시황이 장성을 건설할 때 범죄자, 병졸과 강제로 징용한 백성을 수용했던 거용관.

또 만리장성은 중요한 통신체계이기도 했다. 심지어는 병사들이 그 위에서 말을 타고 이동했는데, 주위의 험악한 지형을 따라 달리는 것보다는 훨씬 빨랐다. 게다가 탑에서 탑으로 이동하며, 낮에는 깃발로 밤에는 횃불로 전령을 넘겨받았다.

이런 이유로 지금도 오지에 가면 서로 멀리 떨어진 성채들 사이의 연락 기능을 맡았던 봉화대의 폐허를 찾아볼 수 있다.

중국어를 정확하게 옮기면 긴 성(長城, 장성)이라고 하는 이 커다란 성의 길이는 얼마일까? 이에 대해서는 추측만이 난무한데, 그 까닭은 장성 가운데 이미 상당 부분이 붕괴돼 버렸기 때문이다. 달에서도 만리장성이 보인다는 주장이 계속 나왔지만, 달에서 그 길이를 잴 수는 없다. 왜냐하면 달에서는 이 장성이 실제로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만리장성은 그 규모가 엄청나지만 대기권에서 보면 희미한 줄로 보일 뿐이다. 어떤 역사학자들은 길이가 만 리라고 하는데, 그렇다면 약 4천 킬로미터 이상일 것이다. 대부분의 연구가들은 6천 킬로미터가 넘는다고 보고 있다.

베이징의 인사동 류리창은 중국 문인들의 자부심

천안문, 고궁(자금성), 명 십삼릉, 장성(만리장성), 룽칭샤(龍慶峽), 왕푸징 등은 베이징에 발을 디딘 이상 놓칠 수 없는 공식 관광 코스다. 그러나 여기서 여로를 접는다면 아무래도 아쉬움이 남는다.

좀더 중국적인 분위기를 맛보고 싶은 이들에게 권하고 싶은 곳이 류리창과 판자위안이다. 베이징의 인사동이라 할 수 있는 류리창은 천안문 남서쪽 난신화자(南新華街)와 십자를 그리며 동서로 뻗은 거리를 말한다.

류리창(琉璃廠)은 ‘유리공장’이란 뜻이다. 묵향 그윽한 중국화와 아취 어린 도자기로 가득 찬 문화거리에 왜 ‘유리공장’이란 이름이 붙었을까 하는 게 처음 드는 의문일 것이다. 명나라와 청나라 초기까지 이곳엔 유명한 유리기와 가마가 있었다.

기와의 윗부분에 유약을 입혀 유리처럼 반질반질한 기와를 유리기와라고 한다. 자금성이 바로 이 황금빛 유리기와로 머리를 얹은 황궁이다. 이 유리기와 가마는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갔으나 그 이름은 이사를 가지 않아 오늘날까지 ‘류리창’이라 불린다.

류리창 한가운데에는 베이징에서 가장 오래된 문화의 중심거리라는 자부심이 흐른다. 청나라 건륭 황제 때 중국의 역대 서적을 집대성한 방대한 ‘사고전서(四庫全書)’를 편찬하면서 전국의 문인들이 베이징에 집결하게 되는데, 이때부터 문인들이 서로 사귀고 책과 그림을 사고 파는 장소로 번창하기 시작했다.

당시 기록에 따르면 책과 그림은 물론이고 인장, 도자기, 문방사우, 금석문, 골동품 등이 이곳으로 모여들었다고 한다.

중화인민공화국의 상징인 천안문은 북경의 중심에 위치해 있다.

류리창은 조선 영•정조 시기와 개화기 한국의 역사와도 깊은 인연을 맺고 있는 곳이다. 청나라 말엽 사신 일행으로 중국에 온 조선의 지식인들이 반드시 들르는 곳 가운데 하나가 류리창이었기 때문이다. 당시 조선에서 구하기 힘든 책을 류리창에선 얼마든지 구할 수 있었다.

조선 후기 실학자인 유득공(柳得恭)은 건륭 연간 두 차례나 청나라에 사신단 일행으로 따라와 류리창에서 책을 사 모으면서 오류거(五柳居), 취영당(聚瀛堂) 등 몇 곳의 서점 사장과 친분관계를 맺었다는 기록을 남기고 있다.

오늘날 류리창은 왕푸징 주변의 웅장한 현대식 건물에 비하면 조금 쇠락한 느낌이 없지 않지만 여전히 옛 책과 그림, 도자기, 도장, 골동품의 본산이다. 골동 취미가 있는 여행자라면 빠뜨릴 수 없는 곳이다. 희귀한 진품들도 거래되지만 온갖 모조품도 대량으로 나돈다. 가령 당대 중국 대가들의 작품을 달라고 하면, 가짜임을 전제로 몇 백 위안에서 몇 천 위안까지 수준이 다양하다.

서민들의 생활상을 엿볼 수 있는  벼룩시장 판자위안

베이징 남동쪽의 판자위안(潘家園)은 류리창보다 좀더 서민적인 문화 장터라 할 수 있다. 베이징의 황학동이라고나 할까? 1997년 7월 재래식 시장을 개조한 판자위안은 베이징의 벼룩시장이라 할 수 있다. 1만 평 규모의 넓은 장터에 다기, 찻상, 그릇, 베갯잇 등 생활공예품에서부터 도자기, 목재 소품, 청동상, 서화, 장신구, 가면 등 온갖 잡동사니가 모이는 곳이다.

국가문물국의 기술 지원으로 비교적 정교하게 모방한 은•주 시대 청동기 유물에서부터 복제 도자기와 청동 조각, 낡은 축음기와 목제 불상, 문화대혁명 시절의 정치 포스터에 이르기까지 온갖 것들이 다 모여들어 류리창보다 ‘물건’의 폭이 더 넓다고 할 수 있다.

수집 취미가 있는 이들은 한번 들를 만한 곳이다. 베이징 사람들은 ‘말’을 즐기고 말의 ‘맛’을 중시하는 사람들이다.

물건값을 흥정할 때도 깎아줘야 하는 그럴듯한 이유를 대면서 끈질기게 포기하지 않으면 적절한 값에 물건을 구할 수 있다. 한국사람은 대체로 성마르고 급하게 결정을 내리는 편이지만 베이징 사람들은 어찌 보면 이런 설왕설래를 장시간 나누는 걸 매우 즐기는 것처럼 보인다.

아직 수집 취미를 찾지 못한 이라 할지라도 류리창과 판자위안에서 이곳 저곳 기웃거리며 걷는 일만으로도 중국 사람들의 삶과 자긍심과 땀 냄새에 조금 더 다가갈 수 있을 것이다.

황제가 하늘과 소통했던 천단공원

황제가 하늘과 땅의 신에게 제사를 지내던 신성한 공간, 천단공원. 원래는 천지단(天地壇)이라고 불렀다. 1530년 베이징 북쪽 근교에 또 다른 지단(地壇)이 세워지면서 이곳에선 하늘에 풍년을 축원하는 제사만 지내게 됐고 이름도 천단으로 변경됐다. 황제는 매년 음력 동지, 정월 초하루 그리고 음력 4월이면 천단에서 성대한 제사를 거행했다.

천단공원은 하늘에 제사를 지내던 신성한 곳으로 기년전, 원구단, 재궁 등으로 이뤄져 있다.

중국에는 전통적으로 ‘하늘은 둥글고 땅은 네모지다(天圓地方)’는 사상이 있었다. 이를 반영해 땅을 상징하는 남쪽의 담장은 네모난 모양이고, 하늘을 상징하는 북쪽의 벽은 반원형이다.

또한 하늘을 상징하기 위해 천단공원의 건물은 원형으로 지어졌고 기와는 푸른색을 사용했다. 기년전(祈年殿)의 지붕은 3층으로 되어 있다. 모두 푸른 하늘빛을 상징하는 짙은 청색 유리 기와로 덮여 있다. 전각 안에 들어서면 웅대한 기운이 느껴지고 선연한 색채를 볼 수 있다.

이곳은 하늘에 인간사를 전하는 ‘천궁(天宮)’과 이어져 있다고 여겨진다. 대전은 28개의 거대한 금빛으로 장식된 원형의 금사남목(金絲楠木) 기둥이 바치고 있다.중심에 있는 가장 굵고 큰 네 개의 기둥은 사계절을, 주변에 두 개의 원을 이루고 있는 24개의 기둥은 24절기를 의미한다.

안쪽 원에 있는 12개의 기둥은 열두 달을, 바깥쪽 원에 있는 12개의 기둥은 하루의 12시진 및 밤하늘을 순환하는 별자리를 뜻한다.

원구단(園丘壇)은 동지(冬至) 때 황제가 하늘에 제사를 지내던 곳이다. 하늘의 정원을 의미한다. 3층으로 되어 있고 각층의 바닥 돌과 사방의 난간 개수, 그리고 계단의 수까지 모두 아홉 개 또는 9의 배수이다.

옛 중국인들은 ‘9’를 양수 중 최고의 수로 생각해 황제를 상징하는 수로 여기기도 했다.천단공원의 또 다른 매력은 신기한 메아리에 있다. 원구단의 상층 중심에 천심석(天心石)이라는 둥근 대리석판이 있다.

이곳에 서서 소리를 내면 지층 깊은 곳에서 돌아오는 맑고 깊은 메아리를 들을 수 있다. 그 소리가 마치 땅속 깊은 곳에서 오는 것 같기도 하고, 하늘에서 내려오는 것 같기도 하다 해서 천심석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원구단의 사방은 모두 0.9미터 두께의 벽으로 둘러져 있는데 벽의 한 편에 서서 말을 하면 벽의 다른 편에서 아주 선명하게 그 말소리를 들을 수 있다. 이곳이 바로 회음벽(回音碧)이다. 이 신기한 벽을 향해 호기심을 가진 많은 관광객이 몰려와 소리를 지르기도 하고 또 듣기도 한다.

사진/자료제공: 중국 국가관광국 서울지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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