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천에서 놀자'의 저자 양소희 작가는 "길이 너무 예쁘고, 사색하기가 좋아 20여 차례 산책길을 걸었다"며 추천한 화천 향교의 산책길. 녹음이 울창한 벚꽃나무가 터널을 만들어 시원한 바람이 불어온다. 멀리 터널의 끝자락에는 단아한 기와지붕과 태극문양이 조선시대의 학교 역할을 한 '화천 향교'임을 알려준다.
7월 그 어느 때보다 무더위가 일찍 찾아온 덕에 화천에도 소나기가 한차례 퍼붓고 지나갈 태세를 하고 있다. 30여 분간 천둥소리가 끊이지 않아 살짝 긴장하며 화천 향교로 발걸음을 옮겼다. 인적이 없는 이곳을 찾은 이유는 단지 산책로를 걷기 위해서만은 아니다. 조선 시대의 유교사상, '빠름'만을 찾는 도시를 벗어나 느긋하고 여유로운 선비 정신을 느껴보기 위해서다.
'빠름'만을 찾는 도시인, 향교에서 느긋하고 여유로움을 찾아
화천향교는 조선 초기에 낭천향교로 창건이 되었다가 1738년(인조 14년)에 현감 김시민이 증건하였다. 그러나 한국전쟁 때 완전히 소실된 것을 1975년 완공을 한 후, 1985년 1월 17일에 강원도 문화재 자료 제102호로 지정된 곳이다.
'이곳에는 공자, 증자, 자사, 안자, 맹자의 5성과 우리나라의 18선현을 모신 대성전이 있으며, 강론을 펼치던 명륜당, 내삼문, 외삼문, 제기고 등이 자리하고 있다. (중략) 과거 조선 시대에는 화천 지역 유생들이 활발하게 드나들며 책 읽는 소리로 분주했을 모습이 선하지만, 지금은 적막감만 흐르고 있다.' 화천에서 놀자(저자 양소희) - '화천 향교' 편에서
계단을 따라 명륜당으로 들어섰다. 화려하지 않으며, 단정하고 깔끔한 모습을 한 외관은 발걸음도 조심스럽게 만든다. 안을 들여다보니 매년 양력 5월 11일과 9월 28일 지내는 석전제(공자(孔子)를 모신 문묘(文廟)에서 선성(先聖)•선사(先師)에게 지내는 제사)를 지내기 위한 도구들이 보관되어 있었다. 화천 향교는 6·25 전쟁 당시 불에 타 보관 중인 문서가 모두 소실됐기 때문이다.
뒤편 계단을 따라 올라가 태극문양의 대문을 열어보니 대성전이 보인다. 명륜당과 분위기는 다르지 않고, 정적만이 자리하고 있다. 때마침 내린 소나기로 처마 밑에서 멀리 화천 시내를 내려다보았다. 화천 대교, 화천 군청, 시외버스터미널이 있는 시내는 빗줄기에 가려 뿌옇게 보였지만, 여행자에게는 운치를 주는 멋진 풍경을 자아내고 있다.
화천 향교로 가는 길은 화천 버스터미널에서 화천 교육청 뒷길로 경사진 길을 따라 올라가면 나지막한 언덕 위에 자리한 화천 향교가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