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일 오후 3시 30분 유네스코 제38차 세계유산위원회에서 남한산성이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됐다. 우리나라에서는 11번째 세계유산으로 선정된 남한산성은 임금이 임시로 거주하는 행궁과 해발 500m가 넘는 험준한 자연지형을 따라 둘러싼 성벽으로 나뉜다.
병자호란 때 인조가 47일간 남한산성에서 왕정 펼쳐
남한산성이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된 결정적인 이유는 실제로 병자호란 때 인조가 남한산성에서 47일 동안 성안에서 왕정을 펼친 점이 크게 인정받았다는 후문이다. 그리고 둘레 11.7km(본성 9km, 외성 2.7km)에 달하는 성곽 자체에 4대문, 5개의 옹성, 16개의 암문 등으로 설계된 남한산성의 축조술이 동아시아 도시계획 기술과 부합된다는 점도 크게 작용했다.
남한산성은 서울에서 동남쪽으로 약 24km 떨어진 경기도 광주시 중부면 산성리에 자리 잡고 있다. 지난 18일 본지 취재팀은 유네스코 지정 세계문화유산 등재에 앞서 남한산성의 행궁과 성벽을 탐방했다.
산성터널을 빠져나와 남한산성 도립공원 관리사무소에서 남한산성 행궁을 먼저 찾았다. 매표소 앞에는 '남한산성 세계유산 기원 남한산성 그리기 대회 수상작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남한산성 유네스코 세계 유산 등재를 기원'이라는 제목의 작품이 대상을 차지한 광주광남고등학교 김태연 군의 그림과 함께 20여 점이 오는 9월 30일까지 전시하고 있다.
매표소에서 2,000원의 입장료(청소년 1,000원, 65세 이상 국가 유공자, 장애인은 무료)를 내고 남한산성 행궁으로 향했다. 입구에는 왕이 머무는 행궁의 하궐 앞에 자리한 '한남루'가 이곳을 찾는 관광객을 반기고 있다.
한남루를 지나 외행전 입구 앞에는 남한산성 종각의 천흥사 동종, 수어장대, 서문에서 바라본 풍경 등 옛날 사진이 전시되어 있었다. 외행전에 들어서니 선비 복장을 한 문화해설사가 한 방송 관계자에게 외행전에 대해 설명을 하고 있었다. '외행전'에서는 병자호란 당시 왕이 병사들에게 음식을 베푸는 일을 했는데 이를'호궤'라고 불렀다. 한봉에서 청나라군이 홍이포를 쏘아 포환이 외행전 기둥을 맞추었다는 기록이 있다.
그 뒤로 임금이 잠을 자고 생활하던 내행전이 있다. 가운데 3칸은 대청으로 되어 있고, 좌우 2칸씩은 온돌방과 마루방으로 지금도 예전 그대로의 소품들이 전시되어 임금의 생활 모습을 엿볼 수 있는 공간이다.
내행전에 전시된 소품 중에는 왕과 왕비를 상징하는 해와 달 그리고 다섯 개의 봉우리가 그려진 궁중 장식 병풍인 '일월오봉도 병풍', 장수를 상징하는 십장생도 병풍, 봄, 가을이 그려진 사계산수도 병풍을 비롯하여 보료와 장침, 묵호, 대나무지통, 향료 등이 당시 그대로의 모습으로 재현되어 있다.
내행전을 지나 오른쪽으로 들어가면 좌승당이 나오는데, 이곳은 광주부 유수의 집무용 건물이다. '좌승'이란 앉아서 이긴다는 의미로 반드시 이길만한 계책을 써서 적을 물리친다는 군사적 의지가 담겨있다. 그 뒤편에는 '이위정'이란 정자가 있는데, 순조 17년 광주부 유수 심상규가 활을 쏘기 위해 세운 정자이다.
남한산성 행궁은 전쟁이나 내란 시 후방의 지원군이 도착할 때까지 한양도성의 궁궐을 대신할 피난처로 사용하기 위해 조선 인조 4년(1626) 남한산성과 함께 건립되었다. 실제로 인조 14년(1636) 병자호란이 발생으로 인조가 남한산성으로 피난하여 47일간 항전한 곳이다.
교통편 : 남한산성을 찾는 등산객들은 대부분 남한산성입구 역(8호선)에서 9번, 52번 버스를, 경기도 광주에서는 15-1번을 타고 남한산성을 찾고 있다. 토, 일, 휴일에는 산성역에서 남한산성까지 직행으로 운행하는 9-1번 버스가 있다. 승용차를 이용할 경우 1,000원의 주차요금(선불)을 받는다.
남한산성 세계유산 속살 들여보기 ② 성곽 - 산성 위로는 소나무가 수성을, 아래는 잎새를 앞세워 공격하는 야생나무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