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영혁의 여유작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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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영혁의 여유작작
  • 차영혁
  • 승인 2014.03.25 1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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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의 주인공 이름이 모티브가 된 센삐로 폭포의 웅장한 풍경. 이하 사진 / 차영혁
영화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의 주인공 이름이 모티브가 된 센삐로 폭포의 웅장한 풍경. 이하 사진 / 차영혁

가고시마에 가면 7,200살 된 나무가 있다! 이게 무슨 얼토당토 않은 소린지...

최근 대한항공 리무진 버스 외벽에 등장한 문구다. 많은 것이 생략된 이 문구는 일본 규슈 남부 가고시마현의 섬 야쿠시마 중심 산속에 생존해있는 삼나무 ‘조몬스기’를 말하는 것이다.

‘야쿠시마’(屋久島)를 아는 한국인은 소수다

일본애니메이션의 거장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명작 ‘원령공주’의 배경지인 시라타니운수계곡이 있는 곳이라고 하면 혹시 “아 거기”라고 할 사람도 많지 않으니, 당연히 가본 사람은 손에 꼽을 정도다. 일본을 잘 아는 이들은 야쿠시마를 일본 여행의 종결지라고 부른다. 

일본 최남단 규슈에서 60km 떨어진 ‘그 섬’은 가고시마항에서 쾌속선으로 1시간 45분이면 닿는다. 인천공항에서부터 계산하면 불과 3시간 좀 넘기면 도달할 수 있는 곳이다. 하지만 물리적 거리에 비해 심리적 거리는 상당히 멀다. 일본 본토인들에게도 마찬가지라고 한다.

► 가고시마항 매표소에서 표를 구입하는 여행자들.

► 7,200살 된 노인 삼나무 조몬스기는 11km나 떨어진 해발 1,300m의 산속에 있어 부지런히 걸어도 왕복 9시간이 걸린다.

야쿠시마는 제주도의 5분의 1 크기로 산림이 90%이고 해안선을 따라 주민들이 살아가고 있다. 1993년 일본 최초로 유네스코 세계 자연유산으로 등록됐다.

둘레 130km에 지름이 30km에 불과한 이 섬의 중앙부에 1,000m가 넘는 고봉이 30여 개가 포진해 있다. 그 덕에 산 정상 부근은 연평균기온이 8도 정도이며, 해안부근은 20도 수준을 유지한다.

이 작은 섬이 2,000km에 달하는 일본 전역의 자연환경을 간직하고 있음이다. 이것이 가능케 하는 원인 중 하나는 연 강수량이다. 해안부는 3,000mm이고 섬 중심 고지대로 갈수록 강수량이 증가하는데 산악부는 8,000∼10,000mm 이상을 기록하고 있다.

가고시마시의 연 강수량은 약 2,000mm이고 서울이 겨우 1,300mm라는 걸 고려하면 대충감이 온다. 그러니 ‘일주일에 8번, 한 달에 35번 비가 온다’는 말이 헛소리는 아니다.

야쿠삼나무 이야기

야쿠시마는 섬 전체가 커다란 화강암이다. 그 위에 모래와 이끼가 생기면서 토양이 되었고 섬의 평균 토양은 겨우 30cm 정도라고 한다. 그 척박함이 ‘야쿠스기’(屋久杉)라고 하는 야쿠삼나무의 생존 비밀이다. 

► 태고의 신비를 간직한 길을 여행객이 걸어가고 있다.

태생적 한계로 인해 그 몸집을 마음대로 키울 수가 없었다. 뿌리를 깊이 내리지 못하는 숙명은 적은 양의 영양분으로 스스로 왜소화의 길을 걷는 것뿐이었으리라. 그래서 다른 곳의 500년 된 삼나무보다 2000년 된 야쿠스기가 더 작고 볼품이 없어 보일 수 있다.

하지만 1년에 겨우 0.1mm만 나이테를 키우며 생존을 유지해 온 이 삼나무는 그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독특함을 자아낸다. 그래서 야쿠스기라는 말은 1000년 이상 된 삼나무에만 해당된다. 그 이하는 작은 삼나무라는 뜻의 ‘고스기’(小杉)라고 부른다. 가고시마 에비노고원에서는 500년 된 삼나무가 보호수 대접을 받고 있는데 여기서는 그냥 흔하다. 

조몬스기를 만나다

초대형 극장판 스크린을 통해 항공촬영된 야쿠시마 자연 다큐멘터리(심지어 한국어 자막도 있는)의 파노라마를 감상할 수 있고 섬의 역사와 식생, 동식물 등을 자세히 알 수 있는 ‘환경문화촌’과 야쿠스기의 모든 것을 체득할 수 있는 ‘야쿠스기 자연관’을 둘러 사전공부를 했다.

쓰러진 삼나무에서 다시 삼나무가 자라고 있는 모습.

► 야쿠삼나무 박물관에는 조몬스기에서 부러진 줄기가 전시되어 있다.

► 여행가이드가 환경문화센터의 야쿠시마 섬 모형을 보며 설명해 주고 있다.

7,200살 현존 최고령의 삼나무 ‘조몬스기’(繩文杉ㆍ신석기시대부터 생존한 나무란 의미)는 11km 떨어진 해발 1,300m의 산속에 있다. 부지런히 걸어도 왕복 9시간은 족히 걸린다. 조몬스기는 상당히 가파른 산비탈에 자생하고 있는데 그것을 보러오는 사람들이 늘어서 나무 주위 흙이 유실, 고사 우려로 산비탈에 나무 계단을 만들고 나무로 스테이지를 만들어 관람하게 하고 있다. 

조몬스기에게 나는 한갓 스쳐 가는 바람 같은 존재이리라! 셀 수 없이 많은 인간과 동물, 비바람과 눈보라가 그 앞에 같이 머물지 못하고 사라져 버렸다. 그 노인은 미동도 하지 않고 그 모든 것의 흥망성쇠를 지켜보았으리라 생각하니 불현듯 삶을 다시 되돌아보게 된다.

잘린 나무 위에서 새나무가, 쓰러진 나무 위에서 이끼들이 살고 있었다. 인간의 시간과는 다른 시간이 흐르는 것 같은 야쿠 섬. 나무가 좋은 점은 언제나 그 자리에 머물고 있다는 거다. 

사람 3만, 원숭이 3만, 사슴 3만이 살고 있다는 노래가 울려 퍼지는 야쿠시마는 여행종결지가 맞을 것 같다. 여기를 갔다 온 다음 다른 곳의 풍광과 자연을 마주하면 어쩐지 시시해져 버리는 편견의 마음이 품어질 것만 같기 때문이다.

이후의 여행을 허무하게 만드는 그 심각한 전염병에 물들지 않기 위해서라도 야쿠 섬은 최후의 여행지여야 한다는 데 동의하며 섬을 벗어났다.

야쿠시마 여행 팁

야쿠시마 여행을 계획했다면 송일곤 감독이 배우 박용우와 함께한 영화 ‘시간의 숲’과 KBS 영상 ‘산’ 프로그램의 야쿠시마 편을 먼저 보는 게 좋다. 대중적인 여행지가 아니라서 여행상품이 없었는데 최근 한진관광, 여행박사, 엔타비 등에서 취급하기 시작했다. 현지 사정에 대한 자세한 정보가 궁금하면 시간의 숲과 산의 현지코디네이터인 스토리투어(02-598-2952)로 문의하면 된다.

글 / 사진 = 차영혁 컬럼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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